관 속에 누워 소원을 빌다
  • 이재현 기자 (yjh9208@sisapress.com)
  • 승인 2008.07.22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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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사람들의 죽음 체험과 공포… 나의 불운과 병이 사라지네

장마 전선이 오락가락하면서 무더위가 사람들을 짜증나게 하고 있다. 불쾌지수가 80을 넘으면 대다수 사람들이 ‘불쾌’를 느낀다. 살과 살이 맞닿는 것이 싫어 누구든 슬슬 피하면서 사는 시기다. 이럴 때면 시골 마당의 평상이 간절해진다. 모깃불 피워놓고 찐 옥수수에 감자와 수박 한 덩이면 잠 못 이루는 여름밤도 낭만이 된다. 수다를 떨다가 화제가 떨어지면 나오는 얘기가 있다. 바로 귀신이다. 하얀 소복을 입고 입가에 피가 흐르는 처녀 귀신은 사연이 많다.

그녀는 장화와 홍련이고, 사람이 되고 싶어서 밤마다 울부짖는 구미호다. 귀신은 아시아에만 있다. 서양에는 귀신이 없는 대신 살아 있는 시체, 좀비가 있거나 드라큘라 같은 실물이 있다. 아니면 전기톱을 들고 다니는 살인마가 있든지.

소원은 이루었지만 공포도 얻었다

태국 공포물이 국내에 들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귀신이 살아나는 <셔터> 가2005년에 들어왔고, 최근 제시카 알바가 주연한 <디아이>도 원래는 태국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으로 국내 개봉 당시 크게 히트를 했었다. 일본의 <링>처럼 아시아 공포물이 국내에 수입되는 이유는 싼 맛에 있다. 정서가 비슷하고 흥행에 실패해도 큰 타격을 입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다.

<카핀>은 태국에서 100년 전통으로 내려오는 카핀(관) 의식을 영화화한 것이다. 1만 개의 관에서 한 날 한시에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장례식을 치른다. 거대한 불상 앞에 관이 놓이면 돈을 치른 사람들이 차례로 들어가 눕는 것이다. 그들은 누워서 소원을 빈다. 간암에 걸린 엄마를 낫게 해달라든지 헤어진 연인을 만나게 해달라든지 하는 염원을 하면 실제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갖고 눕는다.

불교 국가인 태국에서 환생과 윤회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주로 미국이나 유럽 공포물에 익숙한 우리에게 태국 공포영화는 친숙하게 다가온다. 귀신이 있기 때문이다.

결혼을 앞두고 폐암에 걸린 사실을 안 수(막문위 분)는 어느 날 우연히 TV에서 카핀 의식을 보고 태국으로향한다. 삶에 대한 마지막 희망을 카핀에 건 것이다. 태국인 크리스(아난다 에버링엄 분)는 의식 불명인 여자 친구 마리코를 위해 역시 카핀 의식을 찾는다. 그후 수의 종양은 깨끗이 사라지고 마리코 역시 깨어난다. 하지만 그때부터 크리스와 수의 눈에 알 수 없는 존재가 보이기 시작한다.

<카핀>은 영화 시작 후 한 시간이 다 되도록 관객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과거와 현재, 가상과 실상을 넘나들어 무엇이 사실인지 헷갈리게 하는 것이다. 서양 공포물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별로 무섭지도 않다. 영화 전반에 ‘슬픔’이 깔려 있기는 한데 심금을 울리기에는 역부족이다. 7월2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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