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의 겨울’ 시작 되는가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8.07.2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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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사이트를 상대로 한 여권의 전방위 압박이 거세지면서 포털의 위상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포털의 힘이 점차 위축되리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일부 네티즌들은 ‘사이버 공안 정국’이라며, 해외 사이트로의 ‘망명’도 벼르고 있다.

포털 사이트에 대한 여권의 압박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국세청은 지난 4월 말 ‘야후코리아’를 시작으로 ‘다음’과 ‘파란’ 등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이는 서막에 불과했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지난 5월 독과점을 남용하고 자회사를 부당하게 지원한 혐의로 국내 최대 포털인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에게 시정 명령을 내리고 과징금을 부과했다. 7월20일에는 대형 포털업체들이 공정위로부터 무더기로 철퇴를 맞았다. 네티즌의 게시물과 개인정보를 마음대로 사용하도록 되어 있는 약관이 불공정하다며 네이버·다음·네이트·엠파스·파란·야후 등 여섯 개 대형 포털들에게 시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포털 압박의 결정판은 7월22일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내놓은 ‘인터넷 정보보호 종합 대책’이었다. 이 대책의 주요 골자를 보면 △포털은 명예훼손 피해자가 해당 게시글에 대해 삭제를 요청할 경우 즉각 블라인드(임시 삭제)를 설치해야 하며 △하루 평균 방문자가 30만명 이상인 대형 인터넷 사이트에 적용되었던 인터넷 실명제를 10만명 이상으로 확대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법무부도 ‘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해 인터넷에서 욕설을 할 경우 처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처럼 여권이 포털을 강하게 압박하는 것은 미디어로서 영향력이 커질 대로 커진 포털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언론 지형을 유리하게 바꾸기 위해서는 포털을 손 볼 필요가 있다고 보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특히 우호적인 조선·중앙·동아일보(조·중·동) 등 이른바 메이저 신문들이 장악했던 의제 설정 기능이 그렇지 않은 방송과 인터넷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판단도 여권의 이런 움직임을 재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밑바탕에는 그동안 인터넷 붐을 타고 공룡 기업으로 성장하며 새로운 권력 지형을 형성한 포털 자체의 여러 부작용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깔려 있다. 지난 6월 만난 여권의 한 관계자는 “지금 실질적으로는 대선이 끝나지 않았다. 방송과 인터넷은 반대 세력들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여권 인사들의 이런 인식에 확신을 준 대표적 사례가 촛불 집회였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방송과 인터넷, 특히 포털의 파워가 갈수록 커지는데 이들의 입장은 정부를 비판하는 쪽으로 정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정부는 ‘통제’한다는 욕을 듣더라도 이런 상황을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포털은 영향력이나 신뢰도 면에서 이제 기성 매체들을 제치고 선두권에 올라섰다. 최근 몇몇 조사 결과를 보면 네이버의 영향력은 2006년 8위에서 올해 3위로, 다음은 7위에서 4위로 뛰어올랐다. 신뢰도에서도 네이버는 8위에서 3위로, 다음은 9위에서 5위로 성큼 올라섰다. 특히 네이버는 신문사 가운데 1위인 조선일보를 영향력과 신뢰도에서 크게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포털들, 뉴스 편집권 포기, 일부 IP 공개 등 서비스 개편 나서

▲ '인터넷 정보보호 종합 대책'이 발표된 7월22일 국무회의에 참석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연합뉴스
수용자들로부터 이 정도의 인정을 받는 매체라면 당연히 권력화할 수 밖에 없다. 매체의 힘은 곧 수용자의 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포털은 그동안 영향력을 키워오면서 '편파적'이고 '일방적'이며 '독단적'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미디어로부터 공급받은 뉴스를 놓고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편집권을 행사함으로써 스스로 의제 설정을 해가며 언론 역할을 한다는 지적도 받았다. 실제로 대선 과정에서 네이버는 이명박 후보 편을 들었다해서 눈총을 받았고, 다음은 지금 정권측으로부터 야당 편을 든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자신들의 입맛대로 의제를 변형시켜가며 사안마다 색깔을 드러낸다면 이는 단순한 포털이 아니라 거대한 언론 권력이다.

이런 비난과 지적이 끊임없이 제시되자, 포털들은 7.22 대책이 발표되기 전에 중립성 유지를 위한 자구책들을 내놓았다. 네이버는 '뉴스 편집권'을 포기하고 개개인이 직접 초기 화면을 구성할 수 있는 '오픈 포털'로 변신하겠다고 선언했다. 다음도 '아고라'에 게시글의 IP주소 일부를 공개하기로 했다. 엠파스 등 다른 포털들도 뉴스 서비스 개편에 나섰다. 하지만 정부의 포털 규제 조치는 이미 시동을 걸고 구체적인 실천 작업에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여권의 전방위 압박을 받고 있는 포털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선 포털업계의 반응을 들어보자. 포털업계에서는 정부의 7.22 대책에 대체로 공감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포털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포털 등 인터넷 운용과 관련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취지에 공감한다. 다만, 세부적인 정책 방안에 대해서는 좀더 검토를 해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포털업계에서는 일단 정부 대책을 따르겠다는 분위기다. 그래서 별도의 '대책팀'을 꾸리지는 않고 있다.

▲ 7월9일 한나라당 주최로 열린 '건강한 인터넷 문화를 위한 토론회'. ⓒ연합뉴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포털의 위상이 어떤 형태로든 달라지지 않겠느냐는 견해를 조심스럽게 내놓는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 아래 게시판을 장식해던 각종 글과 댓글에 대해 포털에 어느 정도 책임이 부여되고, 경우에 따라 사법 처리까지 되는 상황에 이른다면 포털의 운신이 이전과 달리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승승장구했던 포털업계는 빙하 시대로 접어들었다. 누려왔던 '권리'가 상당 부분 즐어드는 대신 '의무'는 더 늘어났다.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국세청이나 공정위, 검찰 등 공권력에 제재를 받아야 한다. 포털업계의 전반적인 위축은 불가피하다.

7.22 대책이 발표되자 네티즌 사이에는 "사이버 공안 정국을 피해 해외 사이트로 옮겨가자"라는 소리가 강해지고 있다. 사실상 인터넷 실명제가 확대 실시되어 빠르면 올해 말부터 실명을 밝혀야 하고, 인터넷에서 욕설만 해도 처벌을 받게 되는 만큼 차라리 정부가 간섭할 수 없는 외국 사이트에서 '자유롭게' 발언하자는 것이다. 정부 정책이 시행되는 올해말 쯤에는 국내 포털을 떠나는 네티즌들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 또한 국내 포털의 위기를 의미한다. 포털의 방문자 수(UV)와 페이지뷰(PV)가 줄어들면 광고 단가가 낮아지고 이는 곧 매출로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네티즌들의 이런 '망명 운동'이 앞으로도 계속 되리라는 것이 포털업계와 학계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간섭할 수 없도록 "해외에 새로운 서버를 만들자"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 해외에 서버를 둔 새로운 포털을 만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국내 포털들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인터넷 규제가 적은 해외에 서버를 둔 포털과 상대적으로 규제가 강화된 국내 포털이 경쟁할 경우 누가 승자가 될지는 뻔하기 때문이다.

'뉴스 편집권'에서 손을 떼는 포털이 점점 늘어나면서, 포털의 미디어 기능도 상당히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인터넷에 호의적이었던 노무현 정부와 달리 강한 규제 정책으로 밀어붙이는 이명박 정부에서 포털의 파워는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학계의 대체적인 견해이다.

 법안 통과 순조로울까

 방통위는 지난 7월22일 ‘인터넷 정보보호 종합 대책’ 등을 내놓으면서 오는 9월 임시국회에 해당 개정 법률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7·22 대책이 시행되기까지는 방통위 내부에서도 적지 않은 진통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방통위의 한 관계자는 “7·22 대책이 마련되는 과정에서 방통위 내부에서 논란이 있었다. 실명제의 확대 적용 등과 관련해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앞으로 법률 개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상당한 논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정부측에서 법률 개정안이 마련되면 야권의 반대가 있다 해도 국회를 통과하기는 어렵지 않아 보인다. 한나라당은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데 필요한 과반 의석보다 많은 1백72석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정된 법률안이 확정된다 해도 넘어야 할 산이 있다.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사유로 헌법 소원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정부가 실명제를 확대 적용하겠다고 하는 것은 언론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 정부의 강제적이고 일률적인 규제가 아니라 포털의 자율적인 규제가 우선해야 했다. 앞으로 인터넷 실명제가 확대되면 사회적으로 민감한 정보나 내부 정보를 공개하기는 힘들어질 것이다. 향후 정부가 추진하려고 하는 인터넷 정책과 관련된 법률 개정안이 나오게 되면 위헌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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