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모시기 멍석 깔았나
  • 김영화 (한국일보 기자) ()
  • 승인 2008.07.29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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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최고위원ᆞ중진 연석회의에서 ‘이상득 역할’ 주목
▲ 지난 5월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영화 시사회에 참석한 이상득 의원(오른쪽)이 박근혜 전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지난 7월23일 박희태 대표가 이끄는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는 주목되는 결정을 하나 내렸다. 바로 당 지도부와 중진 의원들이 참석하는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를 부활하기로 한 것이다. 매주 수요일 개최될 이 회의는 최고위원 일곱명 및 원내대표, 정책위의장과 4선 이상 중진 의원 13명 등 총 22명이 참석 대상이다. 당연히 4선 의원인 박근혜 전 대표와 6선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도 참석한다. 한나라당은 7월30일 첫 회의를 열기로 했다.

연석회의는 당헌당규에 규정된 공식 회의체가 아니다. 따라서 의결권이 없고, 엄밀히 말하면 당 지도부와 당내 중진 의원들 사이의 좌담회에가깝다. 더구나 연석회의가 열리는 것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연석회의가 첫선을 보인 것은 2004년 11월이다. 당시 박근혜 대표는 매주 수요일 열렸던 최고위원회의를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라는 이름으로 확대 개편했다. 대표와 당 3역, 최고위원 4인, 5선의 강재섭·박희태·이상득 의원이 참석자였다. 당 원로 격인 중진들의 당무 참여 통로가 사실상 막혔다는 지적에 따라 도입된 연석회의는 직전 강재섭 대표 시절까지 이어졌다. 4년여 간 이어져온 셈이지만 연석회의는 사실 크게 주목되는 회의체는 아니었다.

따라서 박희태 대표가 연석회의를 부활해도 새로운 뉴스는 아니다. 하지만 당 안팎에서 이 회의에 쏠리는 관심은 비상하다. 왜 그럴까. 해답은 이상득 전 부의장과 박근혜 전 대표에 있다. 두 사람은 이명박계와 박근혜계의 대표 주자로 자타가 공인하는 한나라당의 파워맨들이다. 이들이 회의 멤버로 참여함에 따라 연석회의가 당의 최고 의견 조율 기구로서 부상할지 눈길을 받는 것이다.

물론 당의 공식 입장은 “각종 현안에 대한 당내 중진들의 중지와 지혜를 모으기 위해 부활했다”(조윤선 대변인)라는 것이다. 물론 한나라당을 식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당 지도부이지만 ‘비공식 라인’인 친이·친박같은 계파 간 조율을 통해 당 운영의 밑그림이 그려진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따라서 양 계파의 거물들이 한자리에 머리를 맞대고 앉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연석회의는 묵직한 무게감을 갖게 된다. 당내에서는 벌써부터 “연석회의가 옥상옥 기구가 되는 것 아니냐”라는 입방아가 나오고 있다.

연석회의 부활은 당내 비주류인 친박 진영이 당무에 참여할 통로가 열렸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총선 이 후 한나라당은 친이명박계가 사실상당을 장악하다시피 했다. 최고위원회의 구성에서부터 주요 당직자 인선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친이계가 선출되거나 임명되었다. 친박 진영에서는 당직 보이콧 얘기가 나올 정도로 소외감을 느꼈다.

‘옥상옥’ 우려 속 합법적 활동 공간 열려 … 친이ᆞ친박 갈등 조정 기대

하지만 이번에 연석회의에 참석하는 중진 의원들 가운데서는 친박 의원이 수적으로 우세하다. 4선 이상 의원 가운데 친이는 이상득(6선)·안상수·이윤성·정의화(이상 4선) 의원 등 네 명에 불과하지만, 친박은 홍사덕(6선)·박근혜·김무성·박종근·이해봉·이경재·김영선(이상 4선) 의원 등 일곱 명이나 된다. 면면을 보아도 친박측 의원에 더 무게감이 있다는 평가가 많다. 아홉 명으로 구성된 기존 최고위원회의가 ‘친이 6, 친박2, 중립 1’의 구조였던 점을 감안하면 연석회의 구성을 통해 비로소 친이·친박 간에 어느 정도 수의 균형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연석회의가 박희태 대표의 의도대로 갈등 조정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좀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당내 일각에서는 오히려 계파 갈등의 장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연석회의 부활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이 전 부의장이 당에서 공식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형님 공천’ ‘만사형통(萬事兄通)’ 등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그는 “앞으로는 정치에 개입한다는 오해를 부르는 일을 일절 하지 않겠다”라고 공언해왔다. 그랬던 그가 ‘옥상옥’ 논란까지 빚고 있는 연석회의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 전 부의장측은 “당이 결정한 사안인데 ‘안간다’라고 하는 것도 우습지 않느냐”라고 말한다. 하지만 연석회의의 부활은 이 전 부의장의 가려운 데를 긁어준 측면이 있다. 대통령의 친형이라는 외부의 따가운 시선을 받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당무에 관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연석회의 부활은 박희태 대표가 이 전 부의장에게 준 선물일지도 모른다. 이런 관측은 때마침 이 전 부의장이 정치 행보의 기지개를 펴고 있는것과 맞물려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전 부의장은 지난 7월16일 18대 공천 과정에서 권력 사유화 논란으로 사이가 벌어졌던 정두언 의원과 화해 만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이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힘을 합친 사람들끼리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서도 협력해야 한다며 그간의 오해를 털어버리자고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날 만찬으로 두 사람이 완전한 화해에 이르렀다고 보는 사람은 드물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10%대에서 맴돌고 있는 위기 상황이므로 당분간은 전략적 화해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을 뿐이라는 해석이 더 많다. 참석자 중 한 명은 “밥을 먹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이대통령에게 누구보다 이 전 부의장의 도움이 필요하다. 내부적으로는 친이와 친박으로 갈라진 당의 화합을 위한 거중 조정 역할을 해야 하고, 외부적으로는 보수층마저 이대통령에게서 등을 돌리는 레임덕 현상을 조기에 차단해야 한다.

이상득 의원, 정두언 의원과도 화해 무드 … ‘이명박 살리기 행보 ‘시동’

하지만 이 전 부의장은 ‘이명박 살리기’에 나서고 싶어도 드러내놓고 활동하기가 어렵다. ‘상왕 정치’ 논란이 워낙 일찍부터 불거져 외부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의도하지 않더라도 이 전 부의장이 날갯짓을 한 번 하면 당에는 평지풍파가 인다. 지난 7월21일 국회본회의장에서 있었던 해프닝은 이같은 ‘이상득 파워’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소묘다. 이날 긴급 현안 질문에서 민주당 최영희 의원은 “정부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강하게 대처하지 못한 이유는 포항 부품소재 전용 공단 유치 때문이 아니냐”라고 의의을 제기했다. 포항시 남구와 울릉군이 지역구인 이 전 부의장이 즉각 “아니다”라고 부인하자 본회의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라고 따라 외치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고함 소리로 금세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 전 부의장으로서는 안팎에서 꽉 막힌 이런 정치 상황을 틔어줄 숨통이 필요한 셈이다. 이 때문에 당내에서는 이 전 부의장이 정의원에게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을 것으로 본다. 상왕 정치 논란을 가장 앞장서 문제 삼은 정의원과의 관계 개선이 ‘이명박 살리기’ 행보의 첫 단추일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회동 자리도 안국포럼 출신인 이춘식의원의 주선으로 이루어졌지만, 애초 제안은 이 전 부의장측이 먼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이 전 부의장이 ‘이명박 살리기’ 행보에 나섰다는 기류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그는 지난 7월18일 대구·경북 의원들과 오찬을, 같은 날 오후에는 경남 의원들과 만찬을 함께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영남의 민심이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소외감과 실망감이 해소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어21일에도 경기 지역 일부 친이계 의원 및 당협위원장들과 오찬을 가졌다. 여권 내부에는 이 전 부의장의 이런 행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 “지금 이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전 부의장뿐이다”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대통령 친인척의 정치 개입을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 또한 만만치 않다. 이 전 부의장은 지금 ‘이명박살리기’의 1등 공신이 되느냐 아니면 ‘권력 사유화’의 상징이 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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