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중계냐 녹화냐, 알 수가 없네
  • 조홍래 편집위원 ()
  • 승인 2008.07.29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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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올림픽 TV 방송 놓고 중국-서방 신경전…‘만약의 사태’ 벌어질까 관심 집중
ⓒEPA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베이징올림픽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중국의 커밍아웃을 시험하는 이 올림픽을 앞두고 세계의 관심은 지금 TV 생중계가 이루어질까 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이를 논의하기 위해 각국 TV 중계팀들이 최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및 중국 정부 관리들과 베이징에서 만났다. 중국이 지난 7년간의 긴 협상을 통해 서방 TV에 원활한 생중계를 약속했기 때문에 이를 최종 확인하기 위한 모임이었다. 이전의 모든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생중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중국의 공약을 믿어보자는 것이 모두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달 동안 이 다짐이 흔들리는 조짐들이 나타났다. 무엇보다 비자 신청과 발급이 지나치게 까다롭고 심사 기간이 너무 길다. 게다가 화면을 검열하거나 송출을 지연시킬 위험성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가장 상징적인 예로는 1989년 민주화 시위를 잔혹하게 탄압한 톈안먼(天安門) 현장에서 생중계가 가능한지에 대해 중국 당국이 분명한 태도를 밝히지 않고 있는 점이다.

화면 검열ᆞ송출 지연 위험 도처에 있어

베이징 회담에서 중국올림픽위원회는 톈안먼 광장의 생중계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중계료를 지불한 서방 TV들은 일단 안도했다. 그러나 하루 6시간만 할 수 있다는 단서가 붙으면서 한숨이 터져나왔다. 미국의 NBC, 영국의 BBC, 캐나다의 CBC, 호주의 SEVEN, 남아프리카의 SABC 등은 이 조건을 거부하고 완전하고 전면적인 생중계의 허용을 요구했다. 뉴욕타임스가 두 차례의 실무 회담에 참석한 관계자로부터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베이징 부시장은 중계 시간의 제한을 고집했다. 1개월 전 회담에서 완전한 생중계를 관철시키겠다고 장담한 NBC 부사장 겸 IOC 위원인 알렉스 길러디의 낙심이 컸다. 중국의 약속은 시간이 흐를수록 흐려졌다. 어쩌면 근대 올림픽 사상 가장 제한된 여건 속에서 올림픽이 진행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과의 협상에서 가장 속을 태우는 곳은 NBC다. NBC는 3천6백 시간의 생중계 계획을 세우고 중계료로 9억 달러를 지불했다. 생중계를 통한 광고로 최소한 10억 달러의 수익을 내야 적자를 면한다. 그러나 경기장은 물론 다른 장소에서라도 행여 반정부 시위 같은 불상사가 일어나면 현장 중계는 중단될 것이 뻔하다.

NBC 뉴스사업부의 스티브 캠퍼스 사장은 이런 사태를 예견한 듯 “올림픽 뉴스가 아니라도 뉴스가 될 수 있는 모든 뉴스를 커버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NBC는 중국의 환경 문제와 인권 문제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밖에 취재 제한 등 언론 실상을 전해 중국의 개방과 인내력도 테스트할 예정이다. 중국은 중국대로 NBC의 취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NBC의 모기업인 제너럴일렉트릭(GE)이 중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GE의 중국 내 매출은 60억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이 회사의 연 매출액 1천7백30억 달러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올림픽을 통해 중국시장 매출을크게 신장시키려는 전략을 세운 GE로서는 이번에 사운을 거는 것 같다.

제프리 이멜트 GE 사장은 2006년부터 2010년 사이에 중국 내 매출을 두 배 늘릴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GE는 이번 올림픽의 상징물이 된 국립 스타디움 기술을 포함해, 총 3백 건의 올림픽 관련 프로젝트에 투자했다. NBC는 올림픽이 취소될 경우에 대비해 이른바 ‘보험 정책’을 수립했다. 올림픽 같은 큰 이벤트에 거액을 투자한 회사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이 때문인지 NBC 관계자들은 올림픽 생중계를 둘러싼 중국의 이단적 환경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었다. 생중계에 다소 차질이 생기더라도 밀고 나간다는 전략이다. 뉴스 및 스포츠 부서 기자들의 경우에 자유로운 취재와 생중계를 요구하면서도 중국의 특수성을 인정하는 편이다.

▲ 지난 7월16일 베이징의‘새둥지’라고 불리는 올림픽 국립 경기장 근처 하늘에서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있다(왼쪽). 오른쪽은 메인 프레스센터 개소식을 취재하는 취재진들. ⓒEPA

중계료 9억 달러 지불한 NBC ‘속앓이’

몇 달간 애매한 태도를 보이던 중국 관리들은 7월9일에야 가이드라인 같은 것을 발표했다. 생중계를 신청한 모든 방송사들은 베이징 또는 기타 경기가 열리는 지방 도시를 통해 허가를 받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또한 톈안먼 광장에서 일어나는 뉴스의 녹화도 허용했다. 하지만 방송사들은 그 순간이 올 때까지는 이를 믿지 못하겠다는 태도다. 한 IOC 위원은 중국이 올림픽에 ‘지혈대’를 부착했다고 풍자했다. 그는 단지 올림픽을 구경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마저 제한하고 텐안먼 광장으로부터의 생중계를 검열하거나 기자들의 비자를 지방당국 선에서 제한하는 사태를 IOC가 7년 전에 알았다면 베이징에 올림픽 개최권을 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IOC 대변인은 톈안먼 생중계와 관련해 그곳은 국가 원수들이 자주 방문하는 데다가 일반 군중이 몰리는 장소이기 때문에 일정한 제한은 불가피하며 이 점을 IOC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변명했다.

방송인들은 이런 논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캐나다 CBC 방송의 집행국장 스캇 무어는 톈안먼 광장은 군중이 모이는 세계 최대의 광장으로서 이곳으로부터의 생방송은 필수적이며 중국 관리들도 내심 이를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림픽을 계기로 서방 미디어를 다루는 중국의 태도도 많이 달라졌다. 이 점에서 중국의 자세가 서방의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매우 신축성을 보이고 있다고 무어는 지적했다. 생중계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 관리들도 다소 혼선을 빚고 있다. 일부 방송사들은 전화선을 설치하고 인공위성 중계소를 위한 거대한 공간을 예약했다. 이 중 일부 예약은 취소되었다. 중국 당국이 생중계를 억제하기 위한 간접 수단으로 의도적으로 혼선을 빚고 있다는 추측도 있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입을 틀어막는 조치가 있다면 이는 약속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불평도 만만치 않다.

지금 베이징에 온 많은 서방 기자들 사이에는 묘한 질문이 오간다. 중국 땅에서 스포츠와 뉴스는 어떻게 다르냐 하는 것이다. NBC 취재팀이 직면한 가장 큰 의문은 8월8일의 개막식에 맞춰져 있다. 개막식 날 수백 명의 선수가 각국 수반과 수억 명의 지구촌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메인 스타디움으로 입장한다. 이때 누군가 티베트 국기를 흔든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 하는 것이다. 이 장면이 TV로 생중계될 것인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그리고 남은 일정이 예정대로 소화될지도 의문이다. 어쨌든 중국이 어떻게 나올지는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 알 수 있다. 현재로서는 중국 지도자들이 현명한 결단을 내리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중국 보안 당국은 성화 봉송 단계에서 빚어진 불상사의 재연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친티베트 시위자들이 세계 도처에서 성화 릴레이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경기 장면의 대부분은 베이징올림픽위원회가 제작해 공급한다. 따라서 시위나 기타 해프닝이 일어나면 그 장면의 중계는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약 2천대의 카메라를 주요 장소에 배치한 NBC는 자체 화면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이 화면의 송출 여부를 NBC가 판단할 수 있을지 촉각을 세우고 있다. 분명한 것은 게임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생중계 환경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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