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기만당’이라지만, 친박은 부글부글 끓는다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08.08.05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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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위기감에 모인 친이 세력들, 친박 복당 시기 맞추어 각종 모임 결성…까마귀 날자 배 떨어졌을까

▲ 지난 7월17일 열린 연석회의에 참석한 박희태 대표,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박근혜 전 대표(왼쪽부터). ⓒ연합뉴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의 주역들이 ‘위기의 대통령’을 구하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한나라당 내 친이(親李)계는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힘을 싣기 위한 친정 체제 강화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의원 모임도 결성되어 이명박 정부를 뒷받침하기 위한 활동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들은 출범과 함께 난항을 거듭해온 ‘이명박 호(號)’를 제 궤도에 올려놓아 순항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명박 정부가 실패하면 한나라당의 미래도 없다’라는 위기감과 ‘정국을 주도할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라는 자신감이 동시에 엿보인다.

‘함께 내일로’는 8월17일 첫 번째 워크숍을 갖고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한 정책 방향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지난 7월15일 공식 발족한 이 모임은 독도 문제가 불거졌을 때 가장 먼저 일본대사관을 찾아 항의하는 등 정치 현안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한나라당 내 친이계, 친정 체제 강화에 박차

모임은 17대 국회에서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김문수 경기지사 등이 주도한 국가발전연구회 소속 의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심재철 의원과 최병국 의원이 공동 대표를 맡고 있으며, 임해규·차명진 의원 등 48명의 현역이 참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모임의 성격을 놓고 이 전 최고위원과 김지사와 연관 지은정치적 해석도 나온다. 두 정치인 모두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어온 만큼 이들의 행보와 관련이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와 함께 2010년 지방 선거에 도전할 재선급 이상 의원들의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졌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당사자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부인했다. ‘이명박 정부의 성공’에 뜻을 같이했을 뿐 이 전 최고위원과 김지사와의 친분과는 무관하게 모임이 결성되었다는 설명이다. 최병국 의원은 모임 취지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잘 되도록 힘을 모으자는 데 있다”라고 밝혔다. 심재철 의원도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 지원할 것은 지원하고 견제할 것은 견제하기 위해서 모이게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국민통합포럼도 정부의 경제 수장인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과 함께 국회에서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지난 7월17일 창립총회를 열고 공식 출범한 포럼은 현역 의원 83명과 원외 당협위원장 30명 등 총 1백13명이 가입한 한나라당 내 최대 규모의 모임이다. 친이계와 친박계를 아우르는 ‘계파 통합’을 지향하고 있지만, 아직은 친이계와 중립 성향의 의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초대 회장을 맡은 안상수 의원은 “정권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정권을 재창출해서 대한민국을 선진 국가로 진입하게 하는 데 우리 포럼의 목표를 두고 있다”라고 밝혔다. 안의원은 특히 “이명박 정부가 여러 가지 저항에 부딪히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 위기를 우리가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라고 강조했다.

국민통합포럼ᆞ선진국민연대도 세 확산 나서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던 외곽 조직인 선진국민연대도 조직 재정비를 통해 세 확산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박영준 전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의 최근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지난 대선 때 선진국민연대를 이끌었던 그는 정부 출범 후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으로 발탁되어 ‘왕비서관’으로 불렸다.

박 전 비서관은 지난 7월22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선진국민연대 조찬 모임에 참석한 것을 비롯해 전국을 돌며 핵심 관계자들과 회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그의 행보를 놓고 일각에서는 선진국민연대가 ‘이명박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과 같은 조직으로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친이계의 이같은 행보에 대해 일각에서는 친박(親朴)계를 견제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친박 의원들이 대거 복당한 시기에 맞추어 모임이 발족하자 당 주도권 경쟁을 염두에 둔 세력 결집으로 보는 시각이다. 물론 친이계에서는 “전혀 무관하다”라고 손사래를 치고 있다.

‘함께 내일로’에 참여하고 있는 임해규 의원은 “친박 의원들이 복당하기 이전부터 모임을 준비해왔다”라고 밝혔다. 임의원은 오히려 “집권 여당 의원이라면 당연히 대통령과 정부가 잘 되길 바라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최병국 의원도 “남녀가 결혼해 살면서 옛날에 누구를 좋아했던 사람이라고 따질 필요는 없다. 남편과 아내 역할을 다하면 된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친박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세 과시를 하느냐’ 과연 ‘대통령에게 도움이 되느냐’라는 비난이 흘러나온다. 최근 당직 인선을 놓고도 친박계는 ‘핵심적인 당무를 친이계가 독식했다’라며 강하게 불만을 표출했다. 여기에 친이계 의원 모임이 공식적으로 출범하자 친박계 내에서도 맞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동안 잠복해 있던 계파 갈등이 재부상하면서 당내 권력 경쟁도 불붙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와 관련해 4개월여 만에 재개된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가 주목된다. 친이·친박 수장들이 함께 모여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17일 열린 첫 회의는 비교적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2년 만에 공식 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해 최근 복당한 김무성·이해봉·박종근 의원 등 친박계 중진들을 환영하는 성격이 강했다.

회의를 주재한 박희태 대표는 ‘화기만당(和氣滿堂)’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분위기를 돋우면서 “국민이 감동하는 정치를 손잡고 해보자”라며 이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형으로 친이계를 대표하는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박 전 대표가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 환담을 나누는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 이재오 전 의원(왼쪽에서 두 번째)이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측근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친이계ᆞ친박계 모두 ‘화합’ ‘경쟁’의 대상

비공개 회의에서도 복당한 친박 의원들에 대한 위로와 덕담이 오가는 등 ‘잘해보자’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박 전 대표도 별다른 발언은 하지 않았지만, 수첩에 메모를 해가며 회의에 열중했다는 전언이다. 이 전 부의장은 회의를 마친 후 기자들에게 “분위기가 좋았다. 연석회의는 최고위원회의를 거들어 주고 조언해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출발이 좋다’라는 자평이 뒤따랐다. 당 화합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아 보인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 분위기가 유지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당 주류인 친이계에게 친박계는 ‘화합’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경쟁’의 대상이기도 하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친박계의 도움이 절실하지만 그렇다고 당 주도권을 넘겨줄 수는 없다.

친박계 입장도 마찬가지다. 집권 여당으로서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는 원론에는 동의하지만 당 운영에서 소외된 채 들러리를 설 수는 없다. 더구나 2010년 지자체 선거는 아무래도 박 전 대표를 중심으로 치러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 친박계 의원들의 중론이다. 현재로서는 내년 초로 몰려 있는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여권의 성적이 부진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커 박 전 대표의 역할론이 더욱 힘을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당 운영의 중심에 서려는 친박계의 시도는 끊임없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양 계파의 지도급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지만 이런 식으로 ‘동상이몽(同床異夢)’이 계속될 경우 연석회의는 계파 갈등을 확산하는 ‘싸움의 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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