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시장에 달러가 넘쳐난다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8.08.05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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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투자, 상장ᆞ비상장 평가액 포함 1조원 이상…“자금만으로 학원 운영하면 ‘거품’ 초래할 것”
ⓒ시사저널 박은숙

외국 자본의 국내 사교육 시장 침투 양상이 심상치 않다.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오던 종전과는 달리 대규모의 자본력을 앞세워 닥치는 대로 매물들을 먹어치우고 있다. ‘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재일교포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까지 국내 사교육 시장을 넘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 외국 자본의 평가액만 상장·비상장을 합쳐 1조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 사교육 시장 규모가 20조원 정도임을 감안할 때 최소 5% 이상을 외국계 자본이 차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런 움직임은 코스닥 상장 업체인 메가스터디의 성공 사례가 알려지면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제2의 메가스터디’를 노리고 증시에 상장하거나 거액의 자본을 끌어들이는 등 사설 학원들의 ‘덩치 키우기’에 편승해 외국 자본의 침투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영탁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이하 새사연) 운영위원은 “대입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다. 그러나 고입 시장의 경우는 연일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이런 시장의 확장세를 노리고 외국 자본이 들어오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서정훈 GNB영어전문교육 사업이사도 “입시 학원이나 보습 학원의 경우는 이미 지목도가 떨어졌다. 어학원이나 특목고 및 외국어고 대비 학원을 중심으로 학원의 대형화 및 기업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교육계에서는 외국 자본 유입으로 사교육 시장이 활성화된다는 점에서 일부 긍정적인 시각을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는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김형훈 대성학원 성남캠퍼스 강사는 “교육 시장마저 자본의 논리에 좌지우지되는 것은 곤란하다. 경쟁이 가열되면서 사교육비가 치솟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라고 토로했다. 그에 따르면 외국 자본의 국내 사교육 시장 진출은 현재 상당 부분 진행되어 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AIG그룹은 지난 7월 초 초·중등 영어학원인 ‘아발론 교육’에 6백억원을 투자했다. 단일 학원에 투입된 외국 자본 규모로는 최고 액수다. 이를 바탕으로 아발론은 부산 등 전국에 프랜차이즈점을 개설 중이다. 내년 9월에는 코스닥 시장에도 상장할 예정이다.

AIG그룹, 영어학원 ‘아발론 교육’에 ‘6백억원’ 투자

전국에 1백42개 지점을 보유한 확인영어사도 현재 소프트뱅크 벤처스로부터 거액을 투자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1천만 달러(약 10억원)를 투자받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언론에서는 이 회사가 그동안 9백억원을 유치한 것으로 보도한 바 있다.
이밖에 세계적인 공룡 펀드인 칼라일은 최근 특목고 입시 전문업체인 토피아아카데미에 1백80억원을 투자했다. 경영권을 인수할 규모는 아니지만 전체 지분의 30%에 해당하는 액수다. 자산운용사인 골드만삭스의 투자 펀드인 오즈매니지먼트도 지난해 논술 업체인 엘림에듀의 전환사채(CB) 발행에 참여해 1백20억원을 투자했다. 선라이즈 오버시스, 리먼브러더스 커머셜 코퍼레이트 아시아 리미티드도 각각 92억원씩 투자했다. 관련 학원 간 ‘합종연회’도 가속화하고 있다. 특목고 입시 전문 학원인 (주)타임교육홀딩스가 대표적인 예다. 이 학원은 서울 지역 5개 유명 학원이 지난해 7월 연합해 만든 곳으로 매출액 기준으로 현재 국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학원은 최근 미국계 사모 펀드인 티스톤으로부터 6백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바탕으로 최근 울산, 경남 등 전국적으로 지점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는 이미 학원 간의 인수·합병(M&A)을 둘러싸고 각종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치동 스타 강사 출신인 이범씨는 “대치동의 유명 학원치고 외국인으로부터 M&A 제의를 안 받아본 곳이 없다. 그만큼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사교육 시장을 매력적으로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상장 교육 기업을 겨냥한 외국 자본의 러시도 잇따르고 있다. 코스닥 대장주 중 하나로 꼽히는 메가스터디는 7월24일 현재 외국인 투자 비율이 50.08%에 달한다. 웅진씽크빅, 대교, YBM시사닷컴 등도 외국인 지분율이 각각 41.86%, 23.37%, 21.79%다.

초·중등 영어회화 전문 학원인 청담어학원이 모태인 CDI홀딩스는 상장을 통해 짭짤한 재미를 본 경우다. CDI홀딩스는 지난 6월16~17일 양일간 공모주 청약을 단행했다. 최종 공모율은 2백90.24 대 1. 당시 상황이 고유가와 국제적 인플레이션 우려가 최고조였던 점을 감안할 때 기대 이상의 성적이었다. 이로 인해 CDI홀딩스는 최초 상장가가 4만원을 훌쩍 넘어서기도 했다. 이 회사에 투자한 사모 펀드 스카이레이크 인큐베스트는 불과 반 년 만에 적지 않은 시세 차익을 챙겼다.

▲ 서울 시내 한 지하상가에 나붙은 영어학원 광고. ⓒ시사저널 박은숙

“정부 영어 몰입 정책 발표로 시장 과열돼”

이렇듯 최근 들어 사교육 시장이 외국 자본의 공세에 힘입어 급격히 불어나자 전문가들은 사교육 시장의 ‘거품’을 한목소리로 지적하고 있다. 노량진 이그잼 고시학원 정재윤 사장은 “뚜렷한 사업 계획 없이 자금만 가지고 학원을 운영하다가 실패한 사례를 그동안 여러 차례 보았다. 최근 상황이 바로 그렇다. 단기간의 매출 부양을 통해 파이만 키우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라고 걱정했다.

김정명신 교육개혁시민연대 대표는 “어느 정도 정점에 이르러도 불황이 없는 것이 사교육 시장이다. 정부가 영어 몰입 정책 등을 발표하자 그 영향으로 시장이 과열되고 있는 것 같다 ”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해당 학원들은 “체계적인 교육을 위해서는 자금 확보가 시급하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최근 투자 유치에 성공한 한 학원 관계자는 “일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투자받은 돈은 유능한 강사 유치나 수강 시설 개선에 쓰이게 된다. 결국, 혜택은 소비자인 학생에게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지금의 상황을 방치하면 자칫 공교육 붕괴로까지 치달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영탁 새사연 운영위원은 “사교육 시장의 거대화는 자칫 공교육의 약화를 가져올 수 있다. 경쟁에서 밀려난 학교는 사교육 시장의 또 다른 먹이가 될 것이고 학교도 입시 학원화될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이범씨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될 경우 예상되는 폐해를 지적한다. 그는 “FTA가 체결되면 ‘투자자 정부 제소’ 조항에 따라 사교육 업체들이 정부에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 정부가 적극적인 사교육 억제책을 펼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대치동 학원가의 한 강사는 “외고나 과학고가 있는데 국제고나 영재고 같은 특수 목적의 학교가 계속 생겨나면서 사교육 시장을 키우고 있다. 결국, 엘리트 교육론자들과 사교육업체 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 자본이 국내 시장에 군침을 흘리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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