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 모델에 휘발유 엔진 “이건 아니잖아”
  • 심정택 (자동차 산업 전문가) ()
  • 승인 2008.08.05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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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유 엔진보다 연비 낮아 장기적으로는 손해
ⓒ시사저널 황문성

지난 7월부터 르노삼성차가 가솔린 엔진 사양을 추가한 QM5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부진에 허덕이는 QM5의 판매를 늘리기 위한 선택이었다.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과 동일해지면서 심리적으로 경유차를 멀리하는 소비자들을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현대·기아차도 7월부터 사양을 변경해 가솔린 엔진을 탑재한 SUV 모델을 내놓았다. GM 대우도 가솔린 엔진을 탑재한 SUV 출시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아자동차는 중형 승용차 로체의 부분 변경 모델인 로체 이노베이션을 내놓으면서 기존 모델에 있던 디젤 엔진 모델은 내놓지 않았다. 경유가격 인상으로 디젤차가 팔리지 않을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기아차 관계자는 “경유가가 인하될 경우 로체의 페이스 리프트 디젤 사양을 출시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이렇듯 자동차 회사들은 세단 승용차의 디젤 엔진 사양 업그레이드를 자제하거나 SUV에 가솔린 엔진 사양을 추가하는 식으로 판매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국내의 대표적인 컴팩트 SUV로 플랫폼(차대, 차의 골격)이 같은 현대차의 투싼과 기아차의 스포티지의 연비를 비교해보면, 자동변속기 2WD 기준으로 양 차에 탑재되는 디젤엔진 사양의 연비는 13.0km/ℓ다. 하지만 같은 기준의 가솔린 사양은 9.8km/ℓ밖에 되지 않는다. 현대 제네시스 3.8ℓ 모델의 9.6km와 비슷하다. 이는 공식 인증연비로 실제 도로 주행 때는 8km/ℓ도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이 가솔린 엔진 모델을 구입하는 것은 디젤 엔진을 채택한 모델과의 가격 차이 때문이다. 현대차 투싼의 경우 디젤과 가솔린 사양 신차의 가격 차이는 4백만원 정도다. 경유 가격이 가솔린과 차이가 났을 때도 얼마나 운행해야 신차 가격의 차액을 보상받을 수 있느냐를 따진 결과다. 더군다나 경유 가격이오르면서 소비자들은 가솔린차를 선택한 것을 잘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동일 사양의 가솔린SUV와 경유 SUV의 연비 차이가 워낙 크고, 다른 변수들을 생각했을때는 결코 잘한 결정이라고 볼 수 없다.

자동차업체들은 경유 가격 인상을 부각시켜 가솔린 SUV 판매를 강화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투싼의 경우2007년 디젤 사양이 2만9천2백29대, 가솔린 사양이 7백5대 판매되었다. 기아 스포티지는 3만1천7백85대(디젤)와7백78대로 디젤 엔진 사양의 판매량이 절대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올 6월부터 휘발유 가격과 경유 가격이 역전되는 현상이 일어나면서 현대와 기아는 사양을 변경한 가솔린 모델을 내놓았고 르노삼성은 QM5가솔린 사양을 출시했다.

디젤과 가솔린 사양 신차, 가격 차이 커

현대 투싼과 기아 스포티지는 3월까지는 월 50~80대의 가솔린 버전이 판매되었다. 그러던 것이 투싼은 5월에 1백81대가 팔렸고 스포티지는 월 2백12대, 5월 4백14대로 판매가 급증했다. 특히 부분 변경 모델을 내놓으며 마케팅을 강화한 7월에는 가솔린 사양 비율이 30%에 육박한것으로 알려졌다. 더 나아가 르노삼성자동차의 QM5는 7월 한 달 5백여대가 계약되었는데, 그중 가솔린 비중이 60%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회사들은 대형 SUV의 경우 가솔린 엔진 사양을 개발하지 않는다. 차체가 무거운 프레임 타입의 SUV는 디젤과 가솔린 사양의 연비 차이가 더 많이 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투싼이나 스포티지 같이 차체가 가벼운 모노코크 타입의 SUV는 연비 차이가 많이 나지않고, 가솔린 사양이 초기 구입 비용에서 디젤 사양보다 가격 경쟁력이 있기에 컴팩트 SUV 시장에서 가솔린 엔진 적용 붐이 일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업체들의 최근 가솔린 SUV 마케팅 강화와 관련해 글로벌오토뉴스의 채영석 국장은 “자동차 회사들 의 근시안적인 전략과 소비자들의 잘못된 정보에 기인한 역행적인 판매 및 구매 행태다. 동급 배기량일 때휘발유 가격과 경유 가격 차이만으로 경제성을 따질 수 없다”라며 자동차 회사들의 판매 정책을 비판했다.

세단형인 쏘나타 트랜스폼의 경우 디젤 엔진 사양의 연비는 13.4km/ℓ이고, 가솔린 사양은 11.5km/ℓ다. ℓ당 약 2km 정도의 차이가 난다. 하지만 SUV인 투싼과 스포티지에서는 가솔린 9.8km/ℓ, 디젤 13.2km/ℓ로 거의 4km 정도 차이가 난다. 중량 때문이다. 쏘나타 트랜스폼의 중량은 1천4백65kg이고, 투싼은 1천5백40kg이다.

그런데 세단형 승용차와 SUV는 소비자들이 사용할 때 그 개념에서 큰 차이가 난다. 차에 싣고 다니는 짐으로 따지면 SUV가 훨씬 많다. 특히 주말에 여행이라도 할 경우에는 짐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채국장은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과 비슷해졌다고 해도 연비에서 경우에 따라 40% 이상 차이가 나고 실제 주행시에는 그보다 더 큰 비용 차이가 난다. 자동차 메이커들이 고유가 상황에서 임기응변식의 가솔린 SUV 마케팅에 치중하는 전략이나이에 넘어가는 소비자들의 구매 행태 모두 비판받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대기 오염과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려면 연비 성능을 높여야 한다. 따라서 당분간은 디젤 엔진의 사용을 권장해야 옳다”라면서 경유 가격 상승에 따른 자동차 업체들의 가솔린 SUV 출시를 비난하고 있다.

한편, 경유 가격 인상으로 가장 크게 직격탄을 맞은 곳은 쌍용자동차다. 쌍용자동차의 주력이 디젤 SUV 차종이기 때문이다. 경유 가격 역전 현상 이후 디젤 SUV 모델을 다량 보유한 쌍용차는 판매량이 격감하자 생산을 조절하는 등 비상 경영을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쌍용차 관계자는 “경유차가 친환경적이며 연비 면에서 가솔린차보다 절대 우위에 있기 때문에 시장 상황이 점차 나아질 것이다”라며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도 당장의 기름 값 역전 현상만 볼것이 아니라 SUV를 구입할 때 차 구매 가격에 대한 부담, 화물 적재 정도, 평소 주행 거리 등을 감안해서 가솔린과 디젤 SUV를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 왼쪽부터 쌍용의 렉스턴, 현대의 투싼, 기아의 스포티지, 폭스바겐의 티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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