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한 번 투약만으로? “잊어주세요!”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8.08.05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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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효 오래 가고 치료까지 해주는 서방형 제제 편리하지만 부작용은 같아 주의해야
ⓒ시사저널 황문성

예전에 초·중·고등학교에서 채변 검사를 하면 검사 결과에 따라 구충제를 복용했다. 회충이 있는 학생은 회충 약을, 십이지장충에 감염된 학생은 십이지장충 약을 먹었다. 여러 종류의 기생충이 있는 경우에는 한 번에 여러 개의 약을 먹어야 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한 알 복용으로 여러 기생충을 한 번에 박멸하는 젤콤(종근당) 등의 구충제가 속속 개발되어 시판되면서 이런 불편함이 사라졌다.

이처럼 투약하는 수량이나 횟수를 줄인 약이 최근 눈에 띄게 늘어났다. 한 번 투약으로 약효가 오래 지속되는 약을 서방형(sustained release) 제제라고 하는데, 투약 후 약 성분이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신체로 스며들도록 개발된 점이 특징이다. 심지어 1회 투약으로 병을 치료하는 약도 출시되고 있어 환자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서방형 제제가 다른 약에 비해 약효가 월등하거나 부작용이 적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한마디로 약효를 내는 기간을 길게 했을 뿐이다. 또 ‘1회 투약’이라는 문구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기존의 약이 여러 번 투약하던 것을 한 차례 한다는 것일 뿐 ‘1회 투약’만으로 완치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름철이면 발가락 사이사이 무좀균이 기승을 부린다. 우리나라 성인의 15%가 무좀균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한다. 기존 무좀 치료제는 일반적으로 투약 기간이 길다. 하루에 2~3번씩 적어도 수주 동안 먹거나 발라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더구나 투약과 치료 기간이 길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치료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러 번 투약하던 것, 한 번으로 줄였을 뿐

스위스에 본사를 둔 한국노바티스가 지난 5월 출시한 라미실 원스라는 액체형 무좀 치료제는 한 번 투약으로 무좀균을 없앤다고 해서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약의 비밀은 약물 전달 시스템인 피막 형성 용액(film forming solution)에 있다. 윤은하 한국노바티스 제품매니저는 “이 약을 무좀균에 감염된 발에 바르면 1~2분 만에 눈에 보이지 않는 피막이 형성된다. 피막은 길게는 3일 동안 지속되며 이때 무좀균 치료 성분인 염산테르비나핀이 각질층에 침습한다. 염산테르비나핀은 13일 동안 각질층에 잔존하면서 무좀균을 사멸시키고, 생성을 억제한다. 임상 결과 진균학적 치료 효과가 80%로 나타났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병원 등을 통해 대량 판매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차별성을 갖춘 서방형 제제의 개발은 제약계의 대세다. 그렇다고 해서 서방형 제제의 약효가 월등하게 좋다고는 할 수 없다. 무좀 치료제 라미실 원스도 각질층 깊숙이 뿌리내린 무좀균은 치료할 수 없다. 피부에 바르는 도포제의 한계는 다른 무좀 치료제와 마찬가지인 셈이다. 투약 후 약효가 바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환자들이 의외로 많지만, 최소 4~5주 후에나 약효를 볼 수 있다는 점도 다른 무좀 치료제와 다르지 않다. 다른 무좀치료제처럼 예방 효과도 없다.

약효 기간을 늘리기 위해 제형(약의 형태)을변경한 경우도 있다. 미국 제약사인 오가논은 지난 2002년 임플라논이라는 피부 이식형 피임제를 국내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기존 피임제는 대부분 경구용이거나 질 삽입용이었다. 임플라논은 배란을 억제하고 자궁경부의 점액 농도를 높여 정자의 접근을 막는 등 피임 방법은 기존의 약과 동일하다.

그러나 산부인과에서 팔 안쪽 윗부분에 약을 이식하는 시술을 받아야 한다. EVA라는 특수 물질에 쌓여 있는 에토노게스트렐이라는 약 성분이 매일 극소량씩 배출되면서 3년 동안 피임 효과를 나타낸다.
서방형 제제라고 해서 기존의 약에서 나타났던 부작용을 현저히 줄이지도 못한다. 피부 이식형 피임제 임플라논은 여성 10명 중 1~2명에서 자궁 출혈, 피비 트러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월경 주기나 자궁 출혈량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물론 아예 월경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차윤상 오가논 마케팅 차장은 “임플라논도 일반 경구용 피임약과 부작용은 유사하다. 피부 트러블이나 자궁 출혈이 생기기도 하므로 의사와 상의해서 시술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제약사, 예방 효과까지 보이는 약 개발 주력

서방형 제제가 속속 출시되는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우선 약물 복용 순응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다. 약물 복용 순응성이란, 환자가 의사의 약물 처방에 따라 복용하는 정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의사가 환자에게 하루에 세 번씩 1년 동안 약을 복용할 것을 처방했다고 하자. 환자가 처음에는 이 처방을 잘 따르다가 어느 순간 약 복용을 게을리하거나 아예 임의로 중단하기도 한다. 의약계에서는 1년 기준으로 약물 복용 순응성은 50% 이하로 떨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송영천 서울아산병원 약제팀장은 “약물 복용 순응성이 떨어지면 당연히 치료 효과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치료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으며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같이 고위험군 질환의 경우에는 합병증 유발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따라서 약효를 오래 지속하는 것이 환자의 약물 복용 순응성을 높이는 방법인 셈이다. 이런 의미로 개발되고 있는 약이 서방형 제제다.

또 다른 이유는 제약사들의 개발 경쟁이다. 약효가 비슷하면 경쟁사의 약보다 약효가 오래가는 약을 개발해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것은 당연하다. 경쟁력 확보에 열을 올리는 각 제약사는 최근 들어, 치료는 물론 예방 효과까지 볼 수 있는 복합성 약물 개발에도 주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기존 골다공증 치료제가 골밀도(BMD)를 높이는 것에 목적을 두었다면 지난해 출시된 한국노바티스의 아클라스타라는 골다공증 주사 치료제는 뼈 성분 분해 방지는 물론 뼈 골절을 예방하는 효과를 보인다. 뼈의 주성분인 수산화인회석(hydroxyapatit)과 결합해서 뼈를 분해하는 파골세포의 주요 효소인 FPP(farnesyl pyrophosphate)를 억제하는 것이다.

안병희 한국노바티스 홍보이사는 “매일, 매주, 매월 투약했던 기존 약과 달리 아클라스타는 1회 투약으로 1년 동안 약효를 볼 수 있다. BMD를 높여 골다공증을 치료하는 것은 기본이며, 골절 위험도를 낮추는 효과도 있다. 고관절 골절 후 재발 예방 효과로 미국 FDA의 승인도 받았다. 게다가 신체 특정 부위에만 작용하는 종전의 약과 달리 몸통과 다리를 연결하는 엉덩이 관절이라고도 하는 고관절은 물론 척추 등에도 같은 약효를 내도록 개발되었다”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투약 편리성과 장기간 약효 지속 효과 때문에 서방형 제제를 찾는 환자들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서방형 제제를 투약할 때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 서방형 제제는 약효를 오래 지속하기 위해 특별한 방법으로 코팅되거나 레이저로 미세한 구멍을 뚫어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약을 쪼개거나 가루로 빻으면 약효가 오래가지 못한다. 알약을 목으로 잘 넘기지 못하는 환자들이 제형을 임의로 변형시켜 복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약효가 오래 지속될 수 없게 되므로 심각한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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