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에 불었던 열풍, 어디로 갔나
  •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
  • 승인 2008.08.05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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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급등ᆞ촛불 시위 등 겹쳐 극심한 흥행 부진 … ‘뮤지컬의 추락’이라는 말도 들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요구하는 촛불 시위가 대규모로 벌어졌던 지난 6월10일 저녁, 촛불의 중심지인 광화문 네 거리에 자리 잡은 세종문화회관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날은 전세계적으로 인텔 광고 모델로도 유명한 타악퍼포먼스 공연인 <블루맨그룹 : 메가스타>의 해외투어 공연의 개막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흥겨워야 할 공연장 주변에서는 그러한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전장(戰場) 한복판에 자리 잡은 탓에 도로는 통제되고 주변에는 거대한 컨테이너 바리케이드, 이른바 ‘명박산성’이 세워져 육로로 공연장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게다가 부근 지하철역들도 무정차 계획이 알려지면서 관객들은 공연장에가는 걱정부터 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주최측은 어렵사리 개막 공연을 치러냈지만,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이 공연의 매표 실적은 참담했다. 이 공연 관계자는 “광화문 상인들처럼 소송이라도 하고 싶지만 우리는 방법이 없다”라고 울상을 지었다.

최근 수년간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공연 시장을 주도해온 뮤지컬업계가 올해는 여러 악재들이 연달아 터지면서 사면초가의 상황을 맞고 있다. 먼저 국제 유가 급등과 국제 금융시장 불안 등 전반적인 세계 경제의 악화로 인해 우리나라 경제도 불확실한 안갯속을 걷고 있다. 물가 상승으로 인해 중산층의 체감 경기가 눈에띄게 나빠지면서 지출비 삭감 대상 1순위로 문화비가 거론되고 있다.

수년간의 폭발적 성장세 멈춰

게다가 그동안 고가에도 불구하고 가장 빠르게 인기가 상승한 뮤지컬이 이제는 반대로 가장 먼저 관심이 식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우려가 들 정도로 좋지 않은 국면을 맞고 있다. 특히 뮤지컬의 주 고객인 젊은 층이 대거 촛불시위에 관심이 쏠려 있었던 6월 한 달은 일부브랜드 파워가 높은 작품 몇 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극심한 흥행 부진을 경험했다. 최근 발표된 티켓예매사 인터파크INT의 ‘상반기 공연 티켓 판매 규모’ 보고서는 뮤지컬계의 이러한 속사정을 수치로 나타내주고 있다.

2006년 5백억원이었던 뮤지컬 시장은 2007년 8백억원, 2008년 상반기 4백13억원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지난해 상반기와 올해 상반기만을 놓고 비교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올 상반기 뮤지컬 총 판매액은 4백13억4천만원(8백73편)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백18억9천만원)에 비해 오히려 0.98%가 줄어들었다. 최근 수년간의 폭발적인 성장세에 비추어볼 때 현 시국이 뮤지컬의 추락이라고까지 불릴 수 있는 심각한 상황으로 여겨질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반기 매출 부진은 앞서의 전반적인 사회·경제적 요인 이외에도 시장의 공급에서 원인을 찾을 수가 있다. 지난해 아트 서커스 열풍을 몰고 초연되어 무려 1백51억원의 매출을 기록한태양의 서커스 퀴담> 같은 대작이 없었던 데다가, <맘마미아> <노트르담 드 파리> <캣츠><42번가> 등의 상위 4개 작품이 제각기 선전했지만 모두 재공연작으로 <퀴담>만큼의 폭발력을 갖지 못했다. 해외에서는 검증되었지만 국내 흥행에는 실패한 <나인> <컴퍼니> <나쁜 녀석들>의 안타까운 사례들도 있다. 또한 지난해에 관객과 평단 양쪽으로부터 호된 평가를 받은 중·대극장 창작뮤지컬이 올해에는 <라디오스타>, <진짜진짜 좋아해>를 제외하고는 찾아 보기 어렵고, 중·소형 창작뮤지컬의 경우 뮤지컬 전체 편수의 60%(1백39편)를 차지하면서 숫자로는 지난해보다 늘었지만 흥행에 성공한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도 원인이다. 창작 뮤지컬의 총 판매 금액은 67억5천만원, 라이선스 뮤지컬은 1백93억원, 해외팀 내한공연은 82억7천만원으로 창작 뮤지컬의 시장 점유율은 20%를 넘지 못하는 실정이며, 뮤지컬 시장의 주도권은 여전히 해외 뮤지컬이 쥐고 있다.

발길이 뜸해진 뮤지컬 관객을 붙들기 위해서 하반기에 신작을 준비하는 제작사들은 나름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가장 안전한 방식은 브랜드파워가 있는 해외 공연물을 소개하는 것이며, 여기에 적절한 스타 캐스팅을 조합하는것이다. SM엔터테인먼트는 오는 9월에, 현재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인 <재너두>를 라이선스로 소개하면서 슈퍼주니어의 아이돌 스타인김희철과 강인을 캐스팅했다. 옥주현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현재 <시카고>에 록시 역으로 출연 중이며, 9월에 시작되는 <캣츠> 라이선스 공연에도 히트곡 <메모리>를 부르는 그리자벨라 역으로 출연한다. 개막 초읽기에 들어간 <마이 페어 레이디>에서는 탤런트 이형철이 남자 주인공을 맡았고, 여주인공은 기획 초기단계부터 케이블 TV의 온스타일 채널에서 서바이벌 형식의 공개 오디션을 거쳐 높은 경쟁률을 뚫고 여주인공으로 발탁되어 이미 절반은 스타덤에 오른 임혜영이 맡았다.

▲ 브랜드 파워가 있는 몇 작품을 제외하고 뮤지컬 극장들이 썰렁하다. 맨 왼쪽 아래부터 시계 방향으로 .


스타 캐스팅ᆞ복고 마케팅 등으로 돌파구 찾기

 

인기 그룹 ‘빅뱅’이 소속된 YG엔터테인먼트는 뮤지컬 제작사 설앤컴퍼니와 전략적인 제휴를 선언하고 ‘빅뱅’의 멤버 대성을 <캣츠>에 출연시킬 예정이다. 또한 설앤컴퍼니는 2009년 ‘빅뱅’의 멤버들과 남경주를 비롯한 뮤지컬 스타들이 함께 벌이는 대형 갈라 콘서트를 기획해 10대 팬들과 기존의 성인 뮤지컬 관객까지 아우르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또 다른 돌파구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문화 전반적으로 불고 있는 ‘복고 마케팅’의 적극적인 도입이다. 주목할 만한 작품은 7080세대를 겨냥해 왕년의 국민 밴드였던 ‘송골매’의 리드싱어 구창모가 음악감독을 맡아 당시의 인기가요 24곡을 엮어 느슨한 스토리 구조로 만든 한국형 주크박스 뮤지컬 <진짜진짜 좋아해>로, 불황 속에서도 그나마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관객 맞춤형 스타일의 작품은 극적인 구조가 떨어진다는 점에서 젊은 관객은 외면하는 ‘세대 상품’으로 고착화할 우려도 있고, 과거 효도 상품으로 한때 크게 인기를 누렸다가 비슷비슷한 작품이 일시에 등장해 급격히 쇠퇴했던 악극의 운명을 걸을 수도 있다.

해외 뮤지컬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현실에서 창작 뮤지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기본 완성도 조차 부족한 작품을 무리하게 제작하는 일은 사라져야한다. 이제 막 산업화의 길로 접어들려고 하는뮤지컬이 단기간에 현재 불황을 겪고 있는 영화계와 비슷한 길을 걸을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비상(飛上)을 해야 할지 냉정히 생각하고 그 대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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