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이 무슨 대수랴 ‘민족심’으로 뛴다
  • 유재순 (재일 언론인) ()
  • 승인 2008.08.12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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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한국인 일본 프로축구 선수 정대세ᆞ량용기 “일본은 그냥 외국일 뿐…한민족임이 자랑스럽다”
ⓒ유재순 제공

요즘 마음이 매우 복잡한 선수가 있다. 그의 마음은 지금 제 마음이 아니다. 그만큼 마음 고생을 심하게 하고 있다. 북한 대표 선수이면서 일본 J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재일동포 3세인 정대세(24세·가와사키 프론타레) 선수.

그가 독도 문제의 한가운데에 있다. 얼마 전 서울의 한 라디오 방송과 인터뷰를 하던 도중에,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를 불렀다가 일본에서 엄청난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일부 네티즌들이 구단으로 전화를 해서는 반일 선수를 내쫓으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일본의 우익 단체들은 가와사키 프론타레 팀 사무실과 스폰서 기업체에 수시로 전화를 걸어, 어떻게 반일 선수를 후원할 수 있느냐고 항의를 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극우 단체들은 스폰서 기업에 대한 불매 운동을 하겠다고 선언해, 구단 관계자들을 긴장하게 했다. 프로구단에게 스폰서는 선수들의 젖줄이나 마찬가지다. 정선수도, 또한 구단 관계자도 사태가 이렇게 심각하게 벌어질 줄 몰랐다고 했다. 정선수에게는 현재 구단으로부터 한국 기자는 물론, 일본 언론사까지 취재 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독도 발언으로 한국에서는 그의 인기가 한층 올라갔지만, 반대로 일본에서는 매우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된 것이다.

구단 관계자는 정선수가 유난히 민족심이 강한 것은 인정하지만 동료 선수들에게 영향이 미치는 스폰서까지 공격받는 발언은 자제해달라는 요청까지 했다. “원래 제가 가라오케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제가 가라오케에 가면 꼭 부르는 노래가 있는데 바로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 덕분에 일본인과 자주 정치적 논쟁을 벌이지요. 제가 정치적 논리에 강합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선수는 조선대학교 시절에 운동뿐만 아니라 노는 자리에도 빠지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실제로 정선수는 가라오케에 놀러가기만 하면 꼭 <독도는 우리땅> 노래를 불렀다는 것. 정선수는 아이치 현 초·중급 민족학교를 졸업하고 도쿄로 올라가 조선대학교에서 학부를 마쳤다. 때문에 민족심에 관한 한, 이미 한국 언론에 널리 알려진 것처럼, 국적은 한국이지만 자신의 조국은 심정적으로 ‘북조선’이라고 당당하게 외친다. “저는 단 한 번도 귀화를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좋은 환경에서 뛰는 일본 대표 선수들이 부러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대표는 제가 서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 북조선 대표 선수로서 대립해서 이겨야 할 그런 상대입니다. 축구는 제 인생의 전부입니다. 조선 또한 현재의 저를 있게 해준 조국입니다. 바로 저의 구심점이 되고 있지요. 저는 제가 축구 선수로 대성하는 것이 곧 조국에 이바지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는 9월10일에 있을 남북에 출전할 예정인 그의 최종 목표는 유럽 진출이다. 그를 위해 체력 단력과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 일부 한국 언론에 ‘K리그에서 뛸 수도 있다’라고 보도된 것에 대해 정선수는 “한마디로 딱 잘라 ‘갈 생각이 없다’라고 말하기가 뭣해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또 만약 유럽 진출이 좌절되더라도 J리그에서 계속 뛸 것이라고 했다.

▲ 북한 대표팀의 량용기 선수(위)는 올해 재일조선인 최초로 J리그 축구팀 주장을 맡고 있다. ⓒ유재순 제공

정대세, 유럽 진출 꿈 이루기 위해 담금질 열중

한국에서의 인기에 대해 정선수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어머니가 매일 밤 전화로 잔소리를 합니다. 아직 대선수로 성장하지 못한 상태에서 잠깐 비행기 타는 인기는 거품이라고요. 지금은 그저 운동만 열심히 해야 할 때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가끔 한국 인터넷에 들어가보지만 일본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 실제로 제가 그렇게 인기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유도 선수 출신으로 격투기에 출전하는 추성훈 선수에 대해서, 노래도 잘하고 패션쇼 무대에도 서고, 요즘에는 텔레비전 CF에도 출연하고 있다고 전해주었더니 약간 부러운 눈치로, 그에 대해서는 “좀 안다”라고 말했다. 남자가 보아도 카리스마가 넘쳐 멋있다는 것이다. 그 또한 취미가 DJ를 하는 것이고, 어렸을 때부터 익힌 피아노 연주 솜씨가 수준급인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하지만 그에게는 유럽 진출이라는 대과제가 눈앞에 놓여 있다.

그런가 하면, 정대세 선수의 주변 취재를 하는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왜 량용기 선수는 인터뷰 안 해요?”라는 말이었다. 특히 일본 언론의 축구 담당 기자들이 그런 말을 많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량선수는 이번 동아시아 축구선수권대회에서 안영학(30·수원 삼성)·정대세 선수와 함께 북한 대표팀 선수로 출전해 눈길을 끌었었기 때문이다. 2005년에도 그는 북한 대표팀 선수로 뛴 적이 있다. 특히 최근 일본 프로축구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선수들 대다수가 북한을 지칭하는 ‘조선’ 국적을 가진 조총련계 선수라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량용기(27·베가르타 센다이) 선수 역시 북한 국적으로, 고등학교까지 오사카에서 민족학교를 다녔다. 대학은 축구 명문으로 손꼽히는 한난(阪南) 대학교 출신. 그의 특기는 경기의 흐름을 재빨리 읽고 정확하게 빈자리를 급습해 치고 들어가는 것. 당시 일본 언론으로부터 그는 ‘공의 리듬을 만들어 공격하는 축구를 구사한다’는 평을 들었다. 이같은 그의실력은 대학에 들어가서 맹위를 떨쳤다.

그의 맹활약으로 대학 2학년 때는 총리배 대회에서 우승을 했고, 3학년 때는 관서대학 리그 MVP, 춘계 득점왕(2002년), 추계 어시스턴트왕을 거머쥐었다. 4학년 때에도 관서대학 리그 MVP(2003년)가 되었고, 총리배 대회 준우승을 했다. 2년 연속 MVP 상을 거머쥔 것은 대학 선수 중에서 그가 유일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 그에게 일본 축구인들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졸업할 즈음에서는 여러 프로축구 구단으로부터 입단 제의가 밀려왔다.

그가 최종적으로 계약을 한 팀은 베가르타 센다이(仙台). 2007년에는 총 48게임 풀타임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때 일본 언론과 팬들이 붙여준 이름이 바로 ‘철인’. 전 게임을 90분 풀타임으로 뛰었다고 해서 생긴 별명이었다. 뿐만 아니라 올해에는 일본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했듯이, 재일조선인으로서는 최초로 주장 선수가 되었다.

“저도 처음에는 깜짝 놀랐습니다. 왜 나를 주장으로 추천했는지 생각할 시간을 좀 달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도 곰곰히 생각해봤고, 주위 분들에게도 조언을 구했습니다. 결국은 저에 대한 신뢰였습니다. 제가 주장 자리를 받아들였던 것은 이것도 하나의 찬스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조선 국적으로 일본 팀에서 주장을 한다는 것은 우리 동포들에게는 큰 용기가 되고, 또 부모님께서도 대단한 자리니까 열심히 잘해보라고 격려를 해주셔서 맡게 되었습니다.

▲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남북전을 앞두고 정대세와 안영학(오른쪽)이 몸을 풀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프로축구는 수준이 매우 높습니다. 일본 대표팀과는 다릅니다. 워낙 기량이 좋은 외국 선수들이 일본으로 몰려들다 보니 기술면이라든가 체력 면에서 우리와 많은 차이가 납니다. 배울 것이 많습니다. 물론 체력 면에서는 일본 선수들보다 한국 선수들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저도 가끔은 인터넷에 들어가서 한국 축구를 살펴봅니다. 박주영 선수라든가 김남일 선수들은 워낙 잘하잖아요. 몸도 크고 다리도 빠르고…. 반면 북조선 선수들은 몸집은 작지만 많이 뛰고 기술이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습니다. 나라 지원도 많고요. 생각했던 것보다 수준이 꽤 있습니다. 다만 북쪽 선수들은 굴곡이 너무 심해 경기의 흐름이 일정하지 않습니다.”
량선수에게 북한은 어떤 존재이며, 2005년에 북으로부터 받은 ‘체육 명수’는 어떤 성격의 훈장인지를 물어보았다. “북조선은 제 조국입니다. 조국이 없으면 나의 존재 자체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또 체육 명수는 북에서 전문 체육인으로서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그럼 일본은 무엇이냐고 다시 물었다. “일본은 그냥 외국입니다. 조부가 식민지 시절 일본에 건너오셨는데, 그때도 우리 조국은 조선이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일본과는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정체성을 버리면서까지 축구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도 저에게는 역시 외국입니다.

이충성 선수요? 본인이 일본 대표가 되고 싶어서 귀화를 결심했기 때문에 같은 축구선수로서 충분히 이해를 합니다.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축구인으로서 응원해주고 싶습니다.”
량선수의 홈페이지에 안영학 선수의 이름이 올라 있어 친한 사이냐고 물었더니 대뜸 “안형님 말입니까?”라고 억센 억양으로 되물어왔다.

안선수와는 가끔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고 한다. ‘안형님’을 보면 자신도 한국에서 뛰어보고 싶지만, 지금은 2부인 센다이가 1부 리그로 올라가는 것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마음으로만 부럽다고 했다.

량용기 “한국에 가서 김건모 CD 사고 싶다”

그래서 정대세 선수의 한국 내 인기를 알고 있느냐고 했더니 아주 솔직한 대답이 되돌아왔다. “같은 동포로서 기쁩니다. 그런 한편으로는 자극도 되고 또 솔직히 부담도 됩니다. 저도 열심히 뛰어서 대세처럼 제 이름을 금방 알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부족한 체력과 기술을 더 높이려고 현재 몸을 만들고 있습니다.”

지난해 48전 게임 풀타임 출전 기록이 그의 다리에 많은 부담을 준 것 같았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그 차디찬 얼음물에 두 다리를 담그고는 얼굴 한 번 안 찡그리고 끝까지 참아냈다. “한국에 가보고 싶어요. 서울과 부산에도 가서 불고기와 제가 좋아하는 지지미를 먹고 싶고, 또 좋아하는 김건모 CD도 사고 싶습니다. 5년 전에 김건모의 <바보>라는 CD를 산 적이 있는데 지금도 즐겨 듣고 있습니다. 덕분에 가라오케는 적어도 한 달에 두세 번씩 갑니다. 물론 한국 노래도 즐겨 부릅니다. 술도 좋아합니다.”

현재 일본 프로축구(J1·J2·실업팀)에서 뛰는 선수 중 공식적으로 밝혀진 재일동포 선수들의 수는 20여 명이다. 또한 외국 선수 중 19명이 일본으로 귀화를 했다. 국적별로는 브라질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한국이다. 거기에는 이충성 선수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묘한 것은 일본으로 귀화한 재일동포는 모두 한국 국적을 가진 민단계라는 사실이다. 사실 재일동포 출신으로 J리그에 최초로 진출한 선수도 다름 아닌 북한 국적의 신재범이었다. 재일동포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 때문에 ‘귀화’를 했다는 논리는, 북한 국적을 가진 선수들 앞에서는 합리성을 잃는다. 차라리 본국에서의 터부가 심해 국가 대표가 될 수 없어 일본으로 귀화했다는 추성훈의 주장이 훨씬 더 설득력을 얻는다. 물론 이같은 현상은 조총련계의 민족 교육의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 1970 ~1980년대만 해도 일본 전국에 민족학교는 3백여 개에 달했다. 때문에 우리말과 우리글을 배우려는 의지만 있으면 교육은 어디서든 가능했다.

그래서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김일성·김정일 부자에 대한 조총련의 일방적인 충성심과 그 사상은 결코 찬성할 수는 없지만, 민족 교육만큼은 중국인 못지않게 잘 지켜냈다고. 때문에 조선 국적의 선수들의 정체성은 언제 어디서나 확고하다는 것. 지금 한국에서 그렇게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정대세도 하루 아침에 급조된 스타가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이같은 민족교육 때문에 민족관이 확실한 젊은이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정대세·량용기 선수를 통해서 본 재일동포들의 활동과 그 정체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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