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도 아닌데 ‘헌금’ 내야 ‘공천’?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8.08.12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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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김옥희 사건 계기로 지난 총선 ‘공천헌금설’ 다시 나돌아
▲ 김옥희씨가 서울 중앙지검을 나와 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대통령의 처형이 비례대표로 공천받도록 해주겠다며 김종원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 이사장으로부터 30억원을 받은 ‘김옥희 사건’은 단순 사기 사건으로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여럿이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겠지만 또 다른 관련자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초점은 김씨가 김이사장으로부터 받은 수표를 낙천 사실이 확인된 뒤에야 통장에 입금한 배경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또 산전수전 다 겪은 김이사장이 단순히 김옥희씨만을 보고 30억원이라는 거액을 나누어주었겠느냐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검찰이 이 사건을 특수부나 공안부가 아닌 금융조세조사2부에 배당한 것도 의혹을 키웠다. 청와대와 검찰이 김이사장을 비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도 ‘무언가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았다. 김씨에게 사기 혐의가 적용되면 돈을 준 김이사장은 처벌을 받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가 되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나 야당들이 연일 ‘김종원을 구속 수사하라’라고 목청을 높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검찰은 현재 30억원의 사용처에 대한 조사를 거의 끝냈다. 대부분 정치권과 관련 없이 김씨가 개인적으로 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의혹이 명쾌하게 풀리지 않는 한 이 사건을 둘러싼 정치권 안팎의 공방은 식지 않을 전망이다.

‘김옥희 사건’을 계기로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지난 총선을 전후해 소문이 무성했던 ‘공천헌금설’이 다시 나돌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 지지도가 바닥이고 당 체제가 안정화되지 않은 이런 상태에서 다른 사건이 또 터진다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라고 걱정했다. 차명진 대변인이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면 강력히 대처할 것이다”라고 미리 엄포하고 나온 것은 이런 기류를 대변했다고 볼 수 있다. 한나라당의 한 인사는 “차라리 지난 친박연대 수사 때 한나라당도 일정 부분 거르고 가는 것이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대변인 “근거 없는 의혹 강력히 대처”

지난 총선 당시 한나라당에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했던 신청자는 5백97명. 이 가운데 후보 명단에 오른 사람은 50명이고, 당선한 사람은 22명이다. 당시 비례대표 후보 선정을 청와대가 주도했다는 것은 당 주변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얘기다. 당은 보조 역할이었고 칼자루를 청와대가 쥐고 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명단 자체가 청와대에서 내려왔다는이야기까지 공공연하다. 이 때문에 비례대표 공천과 관련해 사건이 터진다면 그것은 곧바로 청와대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시사저널>은 한나라당의 비례대표 공천과 관련해 취재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종합해보면 전부는 아닐지라도 일부 비례대표의 경우 ‘돈’과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한나라당과 청와대는 “돈 공천은 사라진 지 오래다. 지역구 공천에서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비례대표를 잘 선정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나타난 결과가 그리 멋진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에 구설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A의원의 경우다. 이 의원과 절친한 한 인사는 이렇게 증언했다. “비례대표 명단이 확정되기 전인 3월 초쯤 모임에 나온 A의원이 ‘20억원을 내고 비례대표를 받았다’라고 말했다. 오래전부터 만나온 모임인데 그날 10명 정도 모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뿐만 아니라 다들 들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개천에서 용났네’ 하는 등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A의원이 이력서에 적은 경력에도 허점이 많다. 원래 다른 당을 기웃거리던 이였는데 어떻게 공천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현재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하고 있는 이 인사는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기를 원치 않았다. 그가 용기를 내 당시 모임의 참석자나 성격 등을 분명히 밝혀준다면 ‘공천 헌금 의혹’을 일부라도 밝혀낼 수 있을 것 같다. A의원의 경우 경력 세탁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실체가 불분명한 단체에서 주요 직위에 있었던 것처럼 경력을 포장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한 실세 의원은 “비례대표와 관련해 공천 헌금이 있었다고도 말 못하지만 없었다고도 말 못한다”라고 말했다. 알 듯 모를 듯한 이 말 속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한 학계 인사는 또 다른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친박연대의 공천 헌금과 관련한 수사가 시작되었을 때 기자에게 ‘한나라당을 보라’라며 제보했었다. 이번에 다시 통화했더니 더 길게 이야기했다. 자신과 절친한 지인이 이번에 한나라당 비례대표가 된 국회의원으로부터 “30억원을 냈다”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애초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했다가 중간에 취소하고 비례대표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이 학계 인사는 끝내 해당 국회의원의 실명을 밝히지 않았다. 누가 얘기했는지 금방 알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현재로서는 이 인사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할 수가 없다.

▲ 김옥희씨 수사에 불만인 민주당 의원들이 검찰을 항의 방문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한나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30억원 냈다” 소문도

한나라당과 청와대가 강력히 부인하는 가운데 꿈틀대는 이런 제보들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잘못 들었거나 과장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직접 이해 관계자가 아닌 제3자들의 증언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실체를 분명히 알기 위해서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보여진다.

일각에서는 비례대표뿐만 아니라 지역구 후보 공천 과정에서도 돈이 오갔다는 말이 스멀스멀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나라당 한 국회의원은 “최근 2억원이 넘는 돈을 돌려받은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지역구 공천을 매개로 실세에게 돈을 주었는데 낙천되었고, 공기업 임원으로 갈 수 있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안 되어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해 받아냈다는 것이다. 이 국회의원은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문제가 심각하다”라고 말했다.

이번 18대 비례대표 공천 헌금 문제는 친박연대 수사에서도 드러났지만 한나라당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이나 자유선진당 등 야당들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통설이다. 민주당은 손학규· 박상천 전 대표가, 자유선진당은 이회창 총재가 선정을 주도했다. 야당 주변에서도 “돈을 요구받았다”라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번에는 의혹의 대상에 남성보다는 여성이 오르내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들은 해당 분야의 대표성은 약한 반면 하나 같이 돈이 많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김옥희 사건’이 계기가 되어 공천 비리 전반으로 수사가 확대되기는 이르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무언가 공천 비리와 관련한 직접적인 새로운 증언이나 물증이 나와야 급물살을 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한 한 여야가 같은 처지이기 때문에 공천 비리 전반으로 수사가 확대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김옥희 사건’과 관련해 권력 실세가 개입한 사실이 드러난다면 검찰 또한 칼을 빼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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