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비어 있는데 법안만 ‘와글 와글‘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08.08.12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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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ᆞ야, 세법 개정안 등 입법 경쟁…한나라당은 정당 보조금 삭감 법안으로 압박, 민주당은 ‘돈 공천’ 겨냥해 4대 입법 채택
ⓒ뉴시스

국회는 공전하고 있는데 여·야 간 법안 경쟁이 뜨겁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정부의 주요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민주당 등 야당은 정부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법안을 쏟아내며 대결전을 예고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감세 추진을 위해 세법 개정안 마련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최근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전반적으로 세율 인하의 여력이 생겼다고 보고 세 부담을 낮추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임의장은 “지금은 경제가 어렵고 국민이 고통 분담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에 취약 계층에 대해 집중적으로 인하하고 다른 부분은 경제 현실을 봐가면서 점진적으로 인하해나가자고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나라당은 이에 맞추어 국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3대 세목의 세율을 모두 낮추는 방안을 마련해 9월 첫 정기국회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부가가치세의 경우 서민층에 혜택이 주어지는 품목을 중심으로 감면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소득세는 과표 구간을 상향해 세금을 인하하는 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법인세 인하 방안도 검토 중이다.

감세와 관련한 의원들의 입법 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이미 상당수 의원들이 감세 법안을 제출했다. 소득세의 경우 7명의 의원이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종구 의원은 낮은 과표 구간에서 1~2%포인트를 낮추고 높은 과표 구간에서 1%포인트를 상향 조정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김성식 의원은 과표 구간을 기존 2단계에서 3단계로 세분화해 10억원 이하의 경우 세율을 인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인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촛불 정국’ 관련 법안 놓고도 여ᆞ야 대결 구도 형성

종합부동산세 관련 법안도 4명의 의원이 내놓았다. 공성진·한선교 의원 등이 과세 기준을 6억원 이상에서 9억원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는 개정안을 제출한 상태다. 이주영 의원은 영·유아용품에 대해 부가가치세를 면세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도 지난 8월7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물가고에 따른 한시적 대책으로 현행 부가가치세율 10%를 내년 말까지 5%로 낮추는 방안을 논의하는 등 감세 경쟁에 뛰어들었다. 세율을 5% 포인트 낮출 경우 과세 품목의 가격이 4.5% 인하할 것으로 예상했다.

김진표 최고위원은 “찬성 입장이 많았지만 세수 감소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았다. 충분히 논의한 뒤 9월 정기국회가 시작하기 전에 당론을 확정하겠다”라고 밝혔다. 세수 감소분에 대해서는 “한나라당과 정부가 제출한, 부자들을 위한 감세 법안을 철회한다면 해결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촛불 정국’ 관련 법안을 놓고는 대결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규제 강화를 위한 입법 활동에 중점을 두었다. 신지호 의원은 시민단체 구성원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등을 위반할 경우 그 단체에 지급된 보조금을 환수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안상수 의원은 집회에서 사용되는 확성기의 소음 기준을 강화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반면 민주당은 같은 법 개정안을 제출하면서 규제 완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강창일 의원은 집회 원천 금지 조항과 시위 방법 제한 규정을 삭제하는 내용을 담았고, 천정배 의원은 일몰 이후 금지되어 있는 집회 시간대 제한을 사실상 철폐하는 개정안을 내놓았다.

인터넷 규제와 관련해서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주도적으로 입법 활동을 펼치고 있다. 권경석 의원은 인터넷상에서 명예훼손 정보를 유통시킬 수 없도록 규제를 강화하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진성호 의원은 방송통신위원회에 불법 또는 명예훼손 게시물을 올린 사이트의 폐쇄 권한을 주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영선 의원은 인터넷 검색 사업자가 검색서비스를 통해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및 개인정보 유출 등을 조장하지 않도록 사업자의 사회적 책임을 명시한 검색서비스사업자법 제정안을 내놓았다. 심재철 의원은 포털을 언론 기능을 하는 인터넷 홈페이지로 규정해 사회적 책임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의 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 보장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정치적 공세 성격의 법안 발의도 예고되었다. 한나라당은 국회 등원을 거부하는 정당의 보조금을 삭감하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을 고려할 수 있다며 야당을 압박했다. 정당 주도 하에 다수 의원이 국회 등원을 거부할 경우 제재 규정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또 제출된 법안이 위원회에 회부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 상정되도록 하는 법안최소처리기한제도 도입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돈 공천’을 사전에 막겠다며 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 지방자치법, 국회의원 수당에 등에 관한 법 등 4대 입법을 의원 총회를 통해 당론으로 채택했다. 한나라당에서 불거진 뇌물 사건을 겨냥한 법안이다. 박병석 정책위의장은 “서울시 의장 돈 공천 비리 사건이 터진 지가 엊그제인데 벌써 대통령 처형 게이트가 확산되고 있다”라며 공세를 취했다.


 ‘중복ᆞ재탕’ 법안도 수두룩

18대 국회 들어 국회에 제출된 법안은 8월7일 현재 총 5백28건이다. 이 가운데 정부 법안 38건을 제외한 나머지 4백90건이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이다. 같은 기간 17대 국회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많은 수치다.

입법 경쟁이 치열한 만큼 이들 법안 중 상당수는 폐기될 운명에 놓여 있다. 비슷한 내용의 중복 법안이 많은 데다 이른바 포퓰리즘 성향의 법안인 경우 실제 의결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지난 국회에서 폐기되었다가 다시 제출된 재탕 법안도 적지 않다.

지난 17대 국회에서도 의원 법안 6천3백87건 가운데 가결된 법안은 1천3백50건에 불과했다. 나머지 4천9백45건은 폐기 처분되었다. 16대 국회에서는 1천9백12건의 의원 법안 중 5백14건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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