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맑은 섬에 ‘삽질’하는 사람들
  • 김 지 혜 (karam1117@sisapress.com)
  • 승인 2008.08.12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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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 동식물’ 낙원에 골프장 등 개발 바람…지자체들도 한통속
▲ 열다섯 명 남짓의 주민이 거주하는 굴업도는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는 ‘생태의 보고’다.

굴업도는 열다섯 명 남짓의 주민들이 모여 사는 작은 섬이다.
주도(主導)인 덕적도에서 배를 타고 두 시간 가까이 가야 한다. 최근 이 외딴섬이 ‘골프장 건설 논란’에 휩싸이면서 어수선하다. CJ그룹의 자회사인 씨앤아이레저산업㈜은 이곳에 2013년까지 오션파크 관광단지를 만들겠다며 인천시에 관련 서류를 제출했다. 사업의 핵심은 섬을 통째로 사서 골프장, 워터파크 및 각종 레저 시설을 세우는 것이다. CJ측은 굴업도가 수도권에서 가깝고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데다 주민들이 많지 않아 개발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굴업도의 토지를 매입해 주민 한 명의 땅만 제외하고 98.5%의 소유권을 확보했다.

이에 인천의 환경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굴업도가 다수의 천연기념물과 함께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동물, 삼림청 지정 희귀 식물 등이 있는 데다 ‘지질학 교과서’라 불릴 만한 해식 지형이 보존되어 있어 ‘난개발을 묵인해서는 안 되는 곳’이라고 주장한다.

대다수 굴업도 주민과 환경단체들은 “굴업도는 개발보다 보존 가치가 높은 섬이다. 골프장 건설만은 안 된다. 자연이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개발하라”라고 촉구하고 있다. 실제 굴업도는 자연의 보고다. 선착장에서10분만 걸으면 산림청이 지정한 희귀 식물 ‘두루미천남성’을 볼 수 있다.

가로수로는 흔하지만 야생에서 자생하기 힘든 이팝나무 군락이 산재해 당국에 ‘유전자보호림’으로 신청된곳도 있다. 굴업도 현황을 알리기 위해 2주째 이곳에 머무르고 있다는 한국녹색회의 김정호씨(26·성균관 대 기계공학부 4년)는 “천연기념물 황조롱이를 보았다”라며 직접 찍은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환경단체들 “해양 생태계 다 죽인다”

굴업도의 서인수 이장(51)은 천연기념물인 시커먼 먹구렁이를 보여주며 “먹구렁이가 많다는 것을 외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새로운 놈을 잡으면 놓아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피서를 온 유순애씨(49)는 “산에 오르다가 어린 시절에나 보던 ‘갯매꽃’, ‘둥근잎천남성’ 등을 수없이 보았다. ‘달랑게’는 흔하고,식은 밥을 훔쳐 먹는다는 ‘도둑게’도 있어 아이들에게 설명해주었다”라고 말했다.

씨앤아이레저산업㈜은 이런 희귀 동·식물들이 서식하는 산 가운데를 가로질러 18홀 골프장을 만들 예정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지형 변화를 소화하겠다”라고 했지만 구체적인 추진 계획을 들여다보면 섬 전체의 대변화가 불가피할 것 같다. 회사측이 제시한 ‘사전 환경성 검토서’의 초안에는 해발 100m 부근의 봉우리들을 15~30m 정도 깎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 공사를 하다보면 심한 곳은 해발 53m까지 내려앉게 된다.

바다낚시를 하러 굴업도를 자주 찾는다는 한 외지인은 “이곳은 덕적도의 바람막이 섬이다. 제주도도 방패역할을 하거나 파도를 막아주는 섬을 거느리고 있다. 이런 섬들이 없다면 무인도가 될 수도 있다. 정확한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현재 봉우리를 30m까지 깎으면 직접 바람을 맞는 덕적도 연안에 영향을 줘 적어도 인근해양 생태계가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덕적도 주민들의 생업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말이다. 굴업도는 덕적도보다 바람이 거세서 잔풀이 많고 나무가 크지 않아 이 외지인의 지적은 설득력 있게 들린다.

굴업도 주민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주민 최선엽씨(44)는 “굴업도는 원래 바람이 세고 추운 섬이라서 겨울에 외지로 나갔다 봄에 돌아오는 주민들이 많다. 봉우리를 깎으면 이곳 지붕은 다 날아가는 셈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과도한 관광객이 몰릴 경우 생활 폐수가 나오고 골프장에 제초제나 농약, 화학비료를 뿌리면 이로 인한 오염 또한 상당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곳은 모래층이 두꺼워 지하수가 풍부하지만 제초제나 농약 역시 빠르게스며들어 식수를 오염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런 오염물질들이 연안으로 유입되면 소라, 고동, 굴, 전복, 해삼,바지락, 다시마, 미역 등 해양 생물들이 집단 폐사할 수도 있다. 회사측의 계획대로 대형 선박을 들이기 위해연안 수심을 6m로 판다면 오염은 더욱 가속화할 것이 뻔하다. 인천환경운동연합의 이혜경 정책실장은 “기업은 투자한 만큼 이익을 내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한다. 이들에게 보존 가치가 높은 섬을 통째로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라고 강조했다.

▲ 하늘에서 내려다본 굴업도❶ 18홀 골프장 예정지❷ 콘도미니엄 및 숙박시설 예정지(현재 마을)❸ 열병합 발전소와 담수화 플랜트 건설 예정지(인천시 ‘절대보전지역’인 해안 사구)❹ 대형 쾌속선 정박을 위한 선착장 예정지(현재 마을 선착장) ⓒ인천녹색연합 제공

“아무런 원칙 없이 파헤치니 난개발 될 수밖에”

굴업도와 같이 기업들이 이미 개발 중이거나 개발 계획을 갖고 있는 섬들은 적지 않다. 물론 이들 기업의 배후에는 해당 지역의 지자체들이 있다. 지자체들이 기업들의 섬 개발을 부추기는 것은 여러 제약 조건을 피할 수 있어 육지의 관광 자원 개발보다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인천시 관내에는 굴업도를 포함해 개발 계획이 확정된 ‘골프장 섬’만 다섯 군데가 있다. 선갑도는 이미 ㈜동방마린리조트가 통째로 사들여 골프장, 카지노, 워터파크 등을 세울 예정이다. 굴업도와 불과 15km 떨어져 환경·지형적 보존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무인도라서 개발 계획을 추진하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강화도 양사면과 길상면, 석모도등에도 골프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들 지역의 공통점은 천연기념물과 멸종 위기 동물들의 서식지라는 것이다.

전국 섬의 62%가 몰려 있는 전라남도 역시 섬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섬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육지와 섬을 잇는 연륙교와 섬과 섬을 잇는 연도교 건설에 12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전남 여수시는 2012년의 엑스포 개최를 앞두고 화양지구 연안에 골프장을 포함한 리조트를 건설한다. 통일교 산하의 일상해양산업㈜에서 1조5천억원을 들여 이 사업을 유치했다. 전남 관광개발과 담당자는 “화양지구와 낭도 사이에 이동이 쉽게 연륙교를 놓겠다. 낭도는 관광지로 지정해서 개발할 계획이다. 섬 개발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는것같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져나오고 있다.

전남환경운동연합 유영업 사무국장은 “홍도의 경우 섬 자체가 천연기념물이고 문화재보호구역이다. 어떤건축물도 세워서는 안 되는데 지자체에서는 섬과 섬을 잇는 다리를 설계하고 있다고 한다. 주민 생활 편의를 위해 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관광객을 불러들이기 위해 다리를 놓는다면 동의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인천녹색연합의 강정구 사무국장은 “지자체들이 자연 환경과 어울리는 개발을 해야 하는데 아무런 원칙 없이 계획을 세우다보니 난개발이 될 수밖에 없다. 인천시의 경우에는 스스로 굴업도를 해안 사구와 해식지형의 ‘절대 보전 지역’으로 지정하고도 이를 훼손하는 섬 개발에 협조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굴업도를 찾은 관광객들은 수려한 자연 환경 자체에 관광 가치가 있는데 왜 이런 곳을 개발하려 하는지 의아하다고 말한다. 이수호씨(38)는 “와보니 경치가 빼어나서 하루 더 묵었다. 골프장이 생긴다면 이런 풍광이 사라지지 않겠느냐”라며 씁쓰레했다. 김수정씨(49)는 “배타는 것만 두 시간인데 이곳에 골프를 치러 오는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다. 비싼 숙박비까지 생각하면 차라리 외국에 가는 게 나을 것 같다. 바다낚시와 수려한 경관을 보러 섬에 와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못마땅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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