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우리 바다, 21세기 이순신이 지켜낸다
  • 소준섭 (국제관계학 박사) ()
  • 승인 2008.08.12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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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바다 ‘총성 없는 전쟁’ 끝없어… 한국, ‘막강’ 중국과 일본의 영해 싸움 속에서도 이어도ᆞ 독도 수호


일본의 독도 영유권 침탈로 국민 여론이 들끓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가면 장차 독도가 위험해지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고 있다. 실로 모든 국민이 두 눈 부릅뜨고 불침번이 되어 우리의 영토와 영해를 보위해나가야 할 때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지금 세계적인 강대국이자 해양 강국인 일본과 중국에 맞서 독도와 이어도를 꿋꿋이 지켜내고 있는 우리 한국의 모습은 참으로 자랑스럽기도 하다.

2005년 6월2일, 중국은 1969년부터 오랜 기간 끌어온 러시아와의 국경 담판을 최종적으로 해결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중국측이 아무르 강의 헤이샤쯔다오 섬 등 3개의 섬에 대해서 섬 전체가 중국 영토라는 기존의 일관된 주장을 대폭 양보해 모두 절반씩 나누기로 합의했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중국은 접경 국가와의 영토 분쟁에서 이와 같이 대부분 자신들이 ‘일보 양보’하는 형식으로 타결짓고 있다. 1991년 이후 중국은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라오스, 러시아, 타지크스탄, 베트남 등과의 국경 분쟁을 해소했다. 대부분의 국경 합의에서 중국은 마찰을 빚었던 국경 지역의 50% 또는 그보다 작은 면적의 지역만 중국에 편입하는 방안을 수용했다. 예를 들어 타지크스탄과 마찰을 빚었던 파미르 고원의 경우, 중국은 총 2만8천㎢에 달하는 분쟁 지역 중 겨우 1천㎢만 가져갔다. 중국은 갈수록 확산하는 ‘중국 확장론’이나 ‘중국 위협론’을 불식시키고 평화적 발전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안팎에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육지 국경 문제에서는 상당한 정도로 관용적 태도를 보여주는 중국이지만 정작 해양 분쟁에서는 전혀 상이한 태도로 접근하고 있다. 난사 군도(Nansha(南沙) 群島·Spratly)나 조어도(釣魚島) 문제를 보면 이러한 사실을 곧바로 알 수 있다. 난사 군도는 남중국해 남단에 있는 30여 개의 작은 섬과 40여 개의 암초 및 산호초로 이루어진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다자간 영토 분쟁 지역이다. 동쪽으로 필리핀, 남쪽으로 말레이시아와 브루나이, 서쪽으로 베트남, 북쪽으로 중국과 타이완을 마주하고 있는 해상 교통과 어업의 요충지다.

인근 해역에 원유와 천연가스가 많이 매장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 여섯 나라가 국가의 명운을 걸고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고대 한나라 때에 이 섬들을 발견했다는 역사를 들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의 영해를 인정하지 않고 거의 모든 난사 군도 해역을 자신의 영해라고 주장하면서 군함을 배치해 무력으로 점령하고 있다. 그리하여 1988년 중국과 베트남이 충돌한 이래 크고 작은 분쟁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난사 군도 해역에서의 압도적 우위를 바탕으로 중국의 영해는 약 3백만㎢에 이르고 있다.

센카쿠 열도 놓고 중국 등 4개국이 영유권 주장

중국과 일본과의 분쟁이 이어지고 있는 조어도(일본 이름은 센카쿠 열도)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조어도는 일본이 중국, 타이완과 영유권을 놓고 분쟁하는 곳으로서 1895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으로써 당시 중국 영토였던 타이완과 그 부속 도서를 차지하게 되면서 지배했으나 2차 대전 패전과 함께 미국이 점유했다가 일본에 반환한 곳이다. 이 조어도가 국제적으로 주목된 계기는 1968년 주변 해역의 대륙붕에 풍부한 석유 자원이 부존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유엔 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나온 뒤부터다.

이때부터 중국과 일본을 비롯해 타이완과 홍콩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리고 1992년 중국은 ‘중국의 영해 및 접속 수역에 관한 법’을 제정해 조어도가 중국 영토의 일부임을 명기했다. 일본은 이에 크게 반발했고, 1996년 7월 조어도에 상륙해 등대를 설치했다. 그러자 홍콩에서는 조어도 보호 운동과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펼쳐졌고, 1만명이 넘게 참가하는 시위가 빈발했다. 이 해 10월에는 홍콩, 마카오, 타이완의 활동가들이 조어도에 상륙해 오성홍기나 타이완 국기를 흔드는 사건도 발생했다. 2004년 3월24일에는 일본 정부가 조어도에 상륙한 일곱 명의 중국인을 체포해 양국 간의 외교 문제로 비화되기도 했다. 현재 타이완 총통인 마잉주도 바로 미국 유학 시절부터 이 조어도 보호 운동의 젊은 지도자로 활동했다. 마잉주 총통의 정치적 성공은 조어도 보호 운동으로부터 비롯된 명성에 힘입은 바 크다.

한편 일본은 전통적으로 해양 강국으로서 일찍이 청일전쟁에서 청나라의 막강한 북양 함대를 격파했고, 이어서 당시 세계적 강국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격파함으로써 일약 세계의 강대국으로 비약한 국가다. 2차대전 당시에도 비록 미국에게 패배했지만 장기간에 걸쳐 끈질기게 미국을 괴롭혔고 그러한 힘의 원천은 강력한 해군력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현재 일본의 영해는 이러한 강력한 해군력에 힘입어 매우 넓게 퍼져 있다. 사실 육지 영토는 중국이 일본보다 훨씬 크지만 영해 차원에서 보면 일본이 북쪽으로 북방 영토로부터 남쪽으로 타이완 바로 앞바다까지 완벽하게 차지하면서 오히려 중국을 북쪽부터 남쪽까지 완벽히 포위하고 있는 형상이다. 일본은 동쪽으로 오가사라와 해역, 남쪽으로는 오키노도리 섬, 동쪽으로는 센카쿠 열도, 그리고 북쪽으로 사할린 아래까지 영해를 차지하고 있고 그 외에도 동쪽으로 미나미도리 섬까지 복속하고 있다. 그리하여 현재 일본이 확보한 배타적 경제수역(EEZ) 면적과 영해는 약 4백47만㎢로, 이는 일본 육지 국토 면적의 12배에 이른다. 명실상부한 해양 강국이 아닐 수 없다.

▲ 2003년에 완공한 이어도의 종합해양과학기지 ⓒ연합뉴스

독도에 이어 ‘이어도 지키기’ 운동도 펼쳐야

한편, 러시아와 일본이 영유권을 다투는 쿠릴 열도(일본 이름은 북방 열도)는 홋카이도에서 캄차카 반도에 이르는, 오호츠크해와 북태평양을 가로지르는 열도를 말하며 모두 56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에는 아이누족이 살고 있었지만 18세기와 19세기에 러시아인과 일본인이 탐사하기 시작했다.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에서 일본은 사할린을 포기하는 대신 쿠릴 열도를 가져가기로 러시아와 합의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쿠릴 열도는 러시아에 반환되었지만 일본은 쿠릴 열도 가장 남쪽의 네 개 섬, 즉 훗카이도(北海道) 북서쪽의 에토로후(擇捉) 섬, 쿠나시리(國後) 섬, 시코탄(色丹) 섬 그리고 하보마이(齒舞) 섬에 대한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옛 소련과 일본 양국 정부는 1956년 10월 ‘소·일 공동성명’을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소련이 일본에 두 개의 섬, 즉 하보마이와 시코탄을 반환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하지만 미·일 안보 조약에 크게 반발한 소련이 소련과 일본 간에 영토 분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면서 이 공동성명은 무효화되었다. 러시아는 푸틴 정부가 들어선 뒤 1956년 당시 소·일 공동성명에서 언급한 두 개의 섬에 대해 양도할 테니 영토 분쟁을 타결짓자는 의사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은 네 개 섬 전체를 반환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으며, 이에 따라 양국의 논의 및 협상은 1956년 소·일 공동성명 이후 실질적으로 변한 상황이 전혀 없는 상태로 이어지고 있다. 다만 러시아가 영토 문제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있으며, 최소한 두 개 섬을 반환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있기 때문에 상호 간 이해의 폭을 넓히는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면 분쟁 해결의 단초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현재까지 양국의 태도로 볼 때 갈등이 쉽게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측된다.

▲ 중국은 이어도를 한국 영토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독도 ⓒ연합뉴스

이어도는 제주도 서귀포시 서남쪽에 위치한 암초다. 중국에서는 이를 쑤옌자오(蘇岩礁)라고 부른다. 이어도는 파랑도라고도 부르지만 실제로는 섬이 아닌 해저 암초다. 제주의 가파리 마라도에서 서남쪽으로 1백52km 떨어진 남해(南海)에 위치해 있으며, 중국의 퉁다오에서는 2백45km 해상에 위치하고 있다. 이 암초는 바다 밑 4.6m에 잠겨 있어서 파도가 칠 때만 그 모습이 드러난다. 1900년에 당시 영국 상선이었던 소코트라 호가 이 암초를 발견해 소코트라 록으로 불렸다.

옛날 제주도에는 이어도를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전설이 있었다. 이어도는 원래 구전되는 설화에 따르면 바다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어부들이 가는 섬, 어부들이 죽으면 가는 환상의 섬으로 알려져왔다. 1984년 제주대학교가 이곳을 탐사한 뒤, 이 암초를 파랑도라고 명명하고 이를 전설상의 이어도와 결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 암초가 실제 전설상의 이어도와 동일한 것인지 여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 산유국의 꿈을 이룬 동해 가스전. ⓒ연합뉴스

한편 중국에서도 오래전부터 쑤옌자오에 관한 전설이 전해져왔는데 중국의 고서 <산해경(山海經)>에서는 쑤옌자오를 소산(蘇山)으로 기술하고 있다. 물론 중국이 말하는 이 소산 또한 정확히 현재 발견된 이어도와 동일한 섬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어도에는 1995년에 착공해서 2003년 6월10일에 완공한 15층 높이의 철강구조물로 지어진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가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은 2000년과 2002년에 거듭 한국의 일방적인 기지 건설에 강력히 항의했고, 2006년에 중국 외교부 대변인 친강(秦剛)은 이어도 문제에 관해 “한국측의 일방적 행동은 어떠한 법률적 효력도 발생시킬 수 없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최근 제주도의회는 ‘이어도의 날’을 제정하려 했으나 중국과의 마찰을 우려해 보류했었다.

지속적인 실효 지배 위한 노력 절실

객관적인 시각으로 살펴보면, 강력한 해양 국가인 일본과 중국을 상대로 하여 결코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대한민국의 저력이 실로 대단하다고 평가될 수 있다. 난사 군도 해역에서 베트남, 필리핀 등 관련국 여섯 나라를 거의 완벽히 제압하고 그 여섯 나라들이 정말 불쌍하다고 여겨질 만큼 겨우 자기 나라 앞바다만 확보하게 만든 ‘막강한’ 중국과 또 그러한 중국의 영해권을 타이완 앞바다까지 바짝 밀어붙인 ‘강력한’ 일본에 맞서 각각 남서쪽 끝 이어도와 동쪽 끝 독도에서 그들과 한 치도 밀리지 않고 오히려 두 곳 모두에서 실효 지배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한국의 자랑스러운 ‘역량’에는 장보고와 이순신 장군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의 강력한 해군력이라는 전통이 그 토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근본적으로는 우리 어민들의 끈질긴 분투 정신이 그 튼튼한 밑거름 구실을 했다고 평가될 수 있다. 지금 독도와 이어도를 우리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어민들이 역대 이래로 멀리 독도와 이어도 바다까지 진출하면서 해적과 왜구 그리고 다른 나라 어민들의 도전과 방해를 물리치고 끈질기게 활동해온 덕택인 것이다.

독도와 이어도 모두 우리의 소중한 영해이고 동시에 그 자체로 우리의 민족적 긍지다. 계속되는 일본의 도발과 중국의 악착스러운 문제 제기에 맞서 그것들을 제압할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하고 전세계를 상대로 홍보를 해야 한다. 또 지속적인 실효 지배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연구되고 실천되어야 하며 ‘독도 지키기’ 운동과 함께 ‘이어도 지키기’ 운동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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