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3파전’ 엄정화가 돋보인다
  • 하재근 (문화평론가) ()
  • 승인 2008.08.12 15:1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음악적 자존심 지켜가는 ‘영원한 언니’ 이효리ᆞ서인영보다 가수로서 한 수 위
▲ 서울 등촌동 88체육관에서 열린 생방송 Mᆞnet 에서 가수 이효리, 엄정화, 서인영이 열창하고 있다(왼쪽부터). ⓒ연합뉴스

올상반기는 여성 그룹 라이벌전으로 끝났다. 쥬얼리 대 브라운 아이드 걸스, 그리고 원더걸스 대 소녀시대. 2008년 상반기 온라인 음원 순위 2위는 쥬얼리의 <one more time>이고, 1위는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L.O.V.E>였다. 원더걸스와 소녀시대는 거의 신드롬에 가까운 화제를 뿌렸다. 상반기 결산 <뮤직뱅크>도 사실상 이 여성 그룹들이 주인공이다시피 했다.

올 여름에는 세 여성의 라이벌전이 단연 화제다. 차례차례 컴백한 엄정화, 이효리, 서인영이 그 주인공이다. 더 크게 보면 ‘컴백’ 자체가 올 여름의 키워드이기도 하다. 세 여성 가수 이외에 쿨의 컴백이 있었고, 서태지의 어마어마한 컴백도 있었다. 하지만 서태지와 쿨은 각각 별개의 활동 영역이라서 화제를 뿌리는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지는 못한다.

엄정화, 이효리, 서인영은 모두 다 이른바 ‘섹시’ 컨셉트라는 데서 겹친다. 듣기만 하는 노래가 아닌 보는 무대, 즉 ‘쇼’를 추구한다. 그래서 라이벌 구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서태지가 돌아오면 이번에는 어떤 ‘노래’인지가 궁금해진다. 그러나 이 세 명이 돌아오면 이번에는 어떤 ‘무대’, 어떤 ‘스타일’인지가 궁금해진다. 역시 세 명 다 공들인 쇼를 가지고 컴백했다. 물론 노래가 아주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가수이니 만큼 노래가 중요하다는 것은 기본이다.

같은 컨셉트로 ‘보는 무대’ 보여주는 라이벌

엄정화, 이효리, 서인영에게 또 겹치는 코드가 있다면 ‘자신감’이다. 이번에도 엄정화는 ‘제멋대로’ 춤추라고 하고, 이효리는 당당한 ‘유 고 걸’이 되라고 하고, 서인영은 ‘내가 대세’라고 한다. 자신감은 솔직함으로 이어진다. 세 명 다 감춤 없이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 이효리는 털털하다는 소리까지 듣는다. 서인영은 ‘신상 밝힘증’을 꾸밈없이 드러냄으로써 비호감의 저항을 단박에 돌파했다.

그것은 자신의 육체를 드러내는 것으로 이어진다. 단순히 옷을 벗는 차원이 아닌, 자신의 몸에 대한 숨김 없는 자신감이다. 엄정화의 ‘전신 타이즈’가 그것을 상징한다. 그 자신감은 신체에 대한 콤플렉스까지 포함한다. 이효리는 자기의 상반신은 서구적인데 하반신은 동양적이어서 잘 때도 하이힐을 신고 잔다며 신체 콤플렉스까지 유머의 소재로 삼는다. 그런 강력한 자신감은 셋 모두에게 모종의 아우라를 형성한다. 다른 가수들과 차별되는 무대 위에서의 존재감이다. 그런 것이 이 셋을 비교 대상이 되게끔 하는 원동력일 것이다.

올 여름 섹시 3파전에서 가장 큰 이익을 본 사람은 서인영이다. 엄정화는 1971년생, 이효리는 1979년생인데 서인영은 1984년생이다. 관록의 차이가 현저하다. 그런데도 엄정화, 이효리와 동급에 올라섰다. 대결의 승패가 어떻게 되든 이 셋이 비교된다는 것 자체가 서인영에게는 성공이다.

과거 정치에 도전했던 정주영 전 현대 회장의 꿈이 JY로 불리는 것이라는 말이 있었다. 당시 이름이 영어 약자로 표현되던 인물은 JP, YS, DJ였다. 영어 약자로 불리는 것은 정치적으로 3김씨와 같은 반열로 올라선다는 의미가 있었다. 서인영이 엄정화, 이효리와 비교되는 것은 정회장이 JY로 불리는 것과 같은 사건이다.

이것을 단지 인기 예능 프로그램의 후광이라고 보기만은 어렵다. 서인영이 당대 최고 인기 프로그램의 하나인 <우리 결혼했어요>에 출연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뛰어오른 것은 아니다. 얄궂게도 <우리 결혼했어요>에 함께 출연 중인 황보도 올 여름에 컴백했다. 하지만 서인영만 엄정화, 이효리와 비교되고 있다. 서인영 개인의 매력이 작용했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프로그램의 후광 효과도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이효리도 서인영과 비슷한 경우다. 유재석과 국민 남매로 자리매김하며 SBS 예능의 ‘핫’한 ‘신상’인 <패밀리가 떴다>로 ‘이효리 효과’가 아직 죽지 않았음을 과시했다. 그리고 연이어 음악계에 컴백했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예능의 화제성에 이효리 개인의 힘이 더해져 파괴력이 증폭되었다(황보는 이 셋과 달리 너무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 ‘요즘엔 내가 대세’라는 서인영 같은 뻔뻔함이 없다. 그러자 존재감도 희박해져간다).

이에 반해 엄정화는 대중적으로 가장 불리한 위치에서 출발했다. 서인영과 이효리가 최고 예능인으로 매주 화제를 뿌릴 때 엄정화는 한국 대중문화계에서 위상이 위축되고 있는 영화 활동을 해왔다. 예능 천하 시대에 예능에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세 사람 가운데 가요계 주 소비층인 10대들에게 가장 먼 가수가 되었다.

이효리는 단순한 가수를 넘어 한 시대를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이다. 단순히 ‘섹시 코드’로만은 설명할 수 없다. 한 일간지가 2008년에 각계 전문직 여성, 이른바 ‘알파걸’들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이들은 가장 닮고 싶은 스타로 이효리를 지목했다. 이 조사에서 이효리는 ‘알파걸의 선두 주자’ 등 9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신감 있는 여성의 역할모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3파전은 대중적으로도 이효리의 압승으로 흘러가고 있다. 컴백 2주 만에 SBS <인기가요>, M.net <엠카운트다운>과 KBS <뮤직뱅크> 1위를 휩쓸었다. 제2의 전성기라고들 한다. 음악 활동, 예능 활동이 모두 최정점이다.

이효리ᆞ서인영은 ‘방송 연예인’ 느낌 강해

이효리가 국민 방송인의 길을 가고 있다면 엄정화는 가수의 길을 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원래부터도 셋 중에서 엄정화가 가수 이미지에서 가장 강했다. 서인영은 아직까지는 방송 연예인 이미지가 강하다. 이효리는 서인영과 엄정화의 중간이다. 셋 중에 음악적으로 가장 많은 인정을 받았던 것도 엄정화다. 엄정화는 일렉트로닉 음악에서 자기 세계를 구축하려 한다는 평을 받았다. 이번에 들고 나온 것도 일렉트로닉이다.

반면에 다른 둘은 음악적 자의식보다는 이벤트로서의 음악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이벤트는 나쁘고, 음악이 우월하다는 뜻이 아니다. 이벤트도, 완벽한 이벤트는 예술이다. 특정 장르만 고집한다고 음악이 저절로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엄정화에게 음악적 이미지가 원래부터 가장 강했다는 뜻이다.

이효리는 아주 잘 만들어진 ‘팝음악 쇼’를 가지고 나왔다. 대중적으로는 엄정화가 밀린다. 하지만 엄정화는 음악적 자존심을 지켰다. 음악에 공 들인 티가 난다. 각자 자신들이 추구하는 것에서 최고를 보여주고 있다. 서인영은 음악으로 보나, 쇼로 보나 가장 밀린다. 하지만 가장 젊다. 셋이 같은 반열에 오른 것으로 신분 상승과 같은 성과를 얻었다.

셋 모두가 승자인 보기 드문 경합이다. 하지만 필자는 음악적 자존심으로 ‘영원한 언니’가 되려 하는 엄정화에게 가장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이 셋 중에서 다음 음반이 가장 궁금한 가수가 엄정화다. 섹시를 넘어선 카리스마로, 명실상부하게 한국의 마돈나가 되어가는 엄정화가 보고 싶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