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관료들 힘 세졌네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8.08.1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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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강만수 장관·이성태 총재 등 급상승 검찰 기소된 이건희 회장 영향력 오히려 커져

한국 경제는 올해 수난을 겪고 있다. 지난해 중순 터진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연초부터 주가가 바닥을 기었다. 불과 4개월여 전 코스피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2천 선을 돌파했던 터라 투자자나 증권업계 종사자들의 허탈감이 더했다.

고유가 행진은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경제를 뒤흔들어놓았다. 국제 유가가 끝없이 오르면서 전세계 기업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회복세로 돌아서는 듯했던 주가 역시 또 한 번 휘청거렸다. 백약이 소용없었다. 최근 국제 유가의 급등세는 진정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경제는 지뢰밭을 걷는 것처럼 불안하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진원인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한 불안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올해 경제인(경제 관료 포함) 영향력 조사에서도 적지 않은 변화가 감지되었다. 그동안 순위에서 밀렸던 정부 관료나 금융 당국 인사가 대거 상위권에 오른 것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이 10위권에 들어와 2위를 차지했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역시 4위에 올랐다. 이에 반해 재계 총수들은 영향력 순위에서 많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서 물가나 환율, 금리 등 경제 정책의 키를 잡고 있는 정부 관료들의 입김이 세진 결과로 풀이된다.

▲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사진 왼쪽)과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벌 총수들 영향력은 많이 떨어져

물론 1위 자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차지했다. 그의 아성은 15년째 계속되고 있다. 이 전 회장은 올해 거액의 차명 주식 보유 사실이 드러나 검찰에 기소되었다. 이로 인해 삼성 회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향력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해에 비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는 응답자의 33.9%가 이 전 회장을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인’으로 지목했다. 올해는 그 비율이 거의 두 배에 가까운 64.5%로 올랐다.

이에 반해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의 영향력은 감소했다. 정회장은 지난해 33.1%를 차지하면서 이 전 회장에게 근소하게 뒤져 2위에 올랐었다. 그러나 올해 회삿돈 횡령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으면서 23.3%로 처졌다. 순위도 2위에서 3위로 주저앉았다. 비리 혐의에 걸려 똑같이 재판을 받았지만 정회장만 순위가 떨어진 것이다. 한국 경제에서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위상을 새삼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정회장의 자리는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이 대신했다. 강장관은 25.9%로 이건희 전 회장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그는 지난 2월 ‘MB노믹스 전도사’로 불리며 야인 생활을 접고 화려하게 컴백했다. 그러나 취임 6개월 동안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온갖 비난의 소리를 들어야 했다. 작금의 경제난이 정부의 정책 실패로 악화되었고, 그 책임은 모두 강 장관에게로 전가되었다. 지난달 말에는 경제·경영학자 1백18명이 강장관의 경질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그럼에도 강장관의 영향력이 높게 나타난 것은 그가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을 지휘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공기업 민영화를 포함한 정책 현안들은 현재 강장관의 손에서 시작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는 것 역시 강장관의 영향력 평가에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 듯하다.

4위를 차지한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도 눈길을 끌고 있다. 이총재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10.4%가 높게 평가했다. 그는 40여 년을 한국은행에서 보낸 정통 ‘한은 맨’이다. 특히 업무 스타일이 지연이나 학맥 등에 치우치지 않는 원칙론자로 유명하다. 이로 인해 ‘리틀 MB’ ‘MB의 경제 브레인’으로 꼽히는 강만수 장관과 물가나 금리, 환율 문제를 놓고 사사건건 충돌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중앙은행 총수로서 소임을 다하고 있는 이미지가 부각되면서 영향력 또한 급상승한 것으로 분석된다.

▲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오른쪽은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시사저널 제공

‘금융 황제’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첫 10위권 진입

이총재에 이어 5위를 차지한 인사는 정몽준 현대중공업 고문이다. 정고문의 순위는 지난해와 같지만 영향력은 4.0%에서 9.1·%로 크게 증가했다. 그가 대주주인 현대중공업이 최근 조선업 활황으로 인해 최고의 실적을 올리고 있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한 것 같다. 물론 무소속으로 있다가 한나라당에 입당해 최고위원직을 맡아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그의 정치적 행보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정고문에 이어 구본무 LG 회장이 6위(6.5%), 최태원 SK 회장이 7위(4.0%), 조석래 전경련 회장이 8위(2.3%)를 차지했다. 특히 이대통령의 사돈이기도 한 조회장의 경우 지난해 10위에서 올해 8위로 두 계단이나 상승해 눈길을 끌었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처음으로 10위권에 올라 9위(1.6%)를 차지했다. ‘펀드 붐’을 일으켰던 박회장은 최근 주가가 떨어지면서 고객들에게 상당한 손실을 입혀 비난을 받고 있다. 이번 조사 결과는 그래도 그가 차지하는 영향력이 여전함을 보여주고 있다.

삼성의 2인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와 권오규 전 경제부총리는 나란히 10위(1.2%)를 차지했다. 이전무는 아버지인 이건희 전 회장과 함께 이선으로 물러나 해외에서 경영 수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계속 삼성의 후계자로 거론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밖에 이구택 포스코 회장(1.1%),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1.0%), 박병원 경제수석(1.0%), 김용덕 전 금감위원장(0.9%), 한승수 국무총리(0.7%),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0.7%), 전광우 금융위원회 위원장(0.6%), 김승연 한화 회장(0.5%) 등이 20위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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