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여당’ 대적할 자 ‘시민’인가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08.08.19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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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한나라당, 3년째 선두 유지 시민단체 2위 급부상…네티즌도 9위에 올라

한나라당이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 혹은 세력’으로 꼽혔다. 야당 시절이던 2006년부터 형성된 독주 체제가 집권 여당이 된 올해에도 이어졌다. 한나라당은 24.4%로 부동의 1위를 지켰다. 특히 행정 관료와 정치인 그룹에서 30%를 웃돌았다. 반면 기업인과 금융인 그룹에서는 한나라당 선택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지난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한 한나라당은 친박(親朴) 의원들이 복당하면서 1백72석의 ‘공룡 여당’이 되었다. 여기에 친박연대 비례대표 의원 8명까지 입당하면 한나라당의 의원 수는 1백80명에 이르게 된다. 의석이 늘어난 만큼 한나라당의 영향력도 막강해졌다. 국회 본회의는 물론 모든 상임위원회에서 과반의 힘을 발휘할 수 있어 사실상 ‘독주’가 가능하다. 이명박 정부의 주요 정책을 국회에서 뒷받침하기에 충분한 규모다. 보수색이 강한 이회창 총재의 자유선진당 의원들과 일부 무소속 의원들까지 의기투합할 경우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범여권은 2백석을 넘어 개헌까지 추진할 수 있다.

▲ 7월3일 열린 한나라당 제10차 전당대회에서 박희태 대표가 당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덩치가 커졌다고 저절로 힘이 강해지는 것도 아닌 것이 현실 정치다. 한나라당의 최근 상황이 그렇다. 우선 국회가 장기 공전하는 데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야당과 협상을 이어가고 있지만 거대 여당으로서의 정치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청와대와의 ‘불협화음’도 한나라당의 발목을 잡고 있다. 당 지도부가 청와대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는 내부 비판이 적지 않다. 잇단 대형 비리 연루 의혹도 국정 장악을 어렵게 만드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민주당, 순위 올랐지만 여전히 약세…촛불 집회가 세력 판도 바꿔

제1 야당인 민주당은 9.4%로 5위에 올랐다. 지난해 민주당의 전신인 대통합민주신당이 5.9%의 초라한 수치로 8위에 머무른 데 비하면 세 단계 상승한 결과다. 총선을 앞두고 분당 세력 간 통합을 이루었고, 거대 여당을 견제할 유일한 정치 세력이라는 점에서 영향력이 어느 정도 회복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지난 대선과 총선의 표심(票心)이 말해주듯 민주당에 대한 기대는 아직도 미미한 상황이다. 이번 조사에서도 정치인, 문화예술인, 종교인을 제외한 대다수 전문가 그룹이 민주당의 영향력을 한자릿수 이내 수치로 평가했다. 83석의 의석 수가 갖는 현실적인 한계를 극복하면서 국정 운영의 한 축을 어떻게 담당해나갈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시민단체가 14.9%로 2위로 올라선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지난해 시민단체는 7.9%를 얻어 7위에 그쳤다. 이는 올해 상반기를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 정국’의 여파로 풀이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를 이끌었던 광우병대책위원회와 촛불시위대, 그리고 시민이 각각 18~20위에 오른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개별 시민단체로는 참여연대가 4.1%로 11위에 올라 가장 영향력이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 시민단체와 네티즌을 ‘세력화’시키는 광장이 되었던 촛불 집회 현장. ⓒ시사저널 박은숙

네티즌이 새로운 세력으로 급부상한 것도 주목된다. 네티즌은 4.7%를 얻어 9위를 차지했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 교환이 보편화하면서 네티즌의 영향력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기존의 언론 역할을 대체하는 1인 미디어가 주목받고 있고, 인터넷 토론장에서 형성된 여론은 오프라인으로 확산되어 각종 현안에 대한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촛불 집회는 그 힘을 입증한 장이었다. 정부·여당이 인터넷 규제 강화에 나선 것도 네티즌의 영향력을 역으로 보여주는 방증이다.

검찰도 10위권 내에 진입했다. 지난해 순위에 들지 못했던 검찰은 이번 조사에서 4.8%를 얻어 8위를 차지했다. 검찰은 대선과 총선을 거치면서 정치적 논란에 휩싸인 사안들을 수사해 주목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에는 MBC <PD수첩> 압수 수색, 참여정부 기록물 유출 수사, 정연주 전 KBS 사장 체포 등 현 정권과 보조를 맞춘 듯한 모습을 보여 ‘권력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받고 있다.

언론계는 3위…개별 언론들은 40위 밖으로

언론계는 14.8%를 얻어 3위에 올랐다. 지난해보다 순위는 한 단계 내려갔지만 수치는 1.7% 포인트 올라 그 영향력을 유지했다. 언론과 정부의 갈등 관계가 여전한 데다 민감한 현안을 놓고 언론계 내부의 대결 구도도 명확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행정 관료, 교수, 정치인 그룹에서 영향력이 높다는 답변이 많았으며, 특히 금융인 그룹에서 22%를 차지해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으로 평가받았다. 반면 기업인과 종교인 그룹에서는 10% 미만의 한자릿수에 머물렀다.

삼성그룹과 전경련도 나란히 6, 7위를 차지해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삼성그룹이 한 계단 내려선 반면 전경련은 두 계단 위로 올라섰다. 친기업 성향의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데 따른 영향력 확대로 해석된다. 전경련 회장을 맡고 있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사돈 관계이기도 하다.

반면 경제계와 정부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지난해 3위였던 경제계는 3.3%로 17위에 그쳤고, 10위였던 정부는 4%를 얻어 기업에 이어 13위에 올랐다. 공무원도 12위에서 26위로 곤두박질쳤다. 관료 집단은 이보다 더 뒤쳐진 29위에 머물렀고, 청와대는 2.4%로 21위를 차지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개별 언론도 눈에 띄게 순위가 하락했다. 지난해 11위를 차지했던 조선일보는 공동 40위로 내려앉았고, KBS와 MBC 등 주요 방송은 이보다 더 순위가 낮았다. 대신 종교단체(14위)와 민주노총·정당(공동15위) 등이 20위권 내에 이름을 올렸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22위)와 뉴라이트(24위) 등 보수 성향의 단체들이 그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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