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보수는 너무 많은 짐을 실은 낡은 배다”
  • 소종섭.김회권 ()
  • 승인 2008.08.19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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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예술인’ 이문열/“이명박 지지자였지만 실망이 쌓인다. 앞으로는 문학에 집중하겠다”
ⓒ시사저널 황문성

작가는 요즘 올림픽에 빠져 산다.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그가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것을 즐기는 것으로 안다. 그것은 오해다. 그는 참다 참다 못해 인내의 한계에 이르면 발언한다. 그것은 저쪽을 향한 발언이지만 동시에 이쪽을 향한 질타이기도 하다. 한 10년 했으니 이제는 그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그의 속내다. 이것이 그가 올림픽에 빠져 지내는 한 이유다.

이문열. 그의 이름 석자는 한동안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문학뿐만 아니라 정치·사회 문제에서도 그랬다. 그는 직설적으로 발언했고 상대 또한 투박하게 받아쳤다. 이러다 보니 어느새 그는 ‘보수’의 한 상징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8월13일 만나 보니 그는, 남은 인생에서 ‘이문열 문학’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에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유지할 것인가, 혁신할 것인가가 초점이다. 작가 이문열과의 인터뷰는 <시사저널>의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조사에서 그가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예술인’으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이루어졌다. 인터뷰는 경기도 이천에 있는 작가의 집에서 2시간30분 동안 진행되었다.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예술인’으로 선정되었다. 소감이 어떤가?
글쎄…. 내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최근에 못 참고 한마디 한 것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그가 지난 7월23일 서울대 강연에서 ‘한국 문학계는 지난 10년간 정치 권력에 의해 조직된 ‘민중·민주 문학’ 세력이 권력을 잡고 먼저 세계로 나가려고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라고 말한 사실이 보도되었다). 잘 모르겠다. 어쨌든 감사한 일이다. 미국에 머무르다가 두 달 전에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결심한 것 중 하나가 젊은 층이랑 안 싸우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젊은이들은 나보다 20~30년 이상 세상을 더 쓸 사람들인데 내가 팥 놔라, 콩 놔라 하기 그래서 시비를 안 하려고 했다. 그랬는데 와보니까 너무 답답하고 말을 해야 할 사람들이 안 하더라.

무엇이 그렇게 답답했나?
촛불 시위인데, 시위하는 사람 자체는 언제나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화가 안 났다. 정말 화가 났던 것은 말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말을 하지 않더라. 나는 말 없는 다수에 대한 실망이 많다. 가끔씩은 말 없는 다수가 아니라 말 없는 허당, 말 없는 꽝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때는 더 심하게 (이탈리아의 사상가이자 혁명가인) 그람시의 말대로 이들 또한 점령당한 진지들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말 없는 다수에 대한 실망?
사람들이 말 없는 다수가 아니라 겁먹은 다수가 되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말하고 나니까 “말 잘했다”라고 전화가 왔다. 그러면서도 뒤에 이러더라. “그런데 너 이제 큰일 났다.” 주눅이 들고 겁을 먹은 상황, 이것을 못 참겠더라. 한국에 와서 딱 열흘만이었다. 참 참기 어렵더라.

‘말 없는 다수’에 대한 믿음이 없나?
미국에 가서도 고립감과 적막감이 있었는데 문화적으로는 지금이 더 심하다. ‘내 편일거야’라는 말 없는 다수가 있었는데 그들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 그들도 말 없는 다수가 아니라 함락된 진지가 아닌가 할 정도로 고립감·적막감이 심하다.

그동안 현안에 대해서 발언을 하면서 시비의 대상이 되는 데 대한 부담도 컸을 것 같다.
등단 초기의 한 10년은 말을 안 했고, 그 다음 10년은 누가 말하면 받아쳤다. 마지막 10년은 내가 더 공격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상하게 싸움꾼이 되어버렸는데 앞으로도 계속 이럴 것인가라는 점에서 보면 문제가 있더라. 이제는 그냥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생각이다.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으로 일한 적이 있다. 한국의 보수 세력이 어떻다고 보는가?
한마디로 너무 많은 짐을 실은 낡은 배다. 정체성이 잡다한 배다. 낡았지만 큰 배라 침몰하면 치명적이다. 그러니 불편한 짐은 버리고 수리도 하고 그래야 한다. 침몰한다면 더 끔찍할 수 있다.

불필요한 짐이라면?
주로 보수 우파의 약점이 된 여러 논의들이다. 예를 들면 친일·친미다. 이 가치를 독점하고 공격하는 사람들도 간교하지만 공격받아 마땅한 그런 부분이 있다. 이런 점은 보수의 유산이라도 정리해야 한다. 다만 미안한 것은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고통을 모르고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겁날 때가 있다. 우리가 어디까지 용서를 해야 하는가는 그 시대의 양식이 결정해야 할 문제이지만 그 선을 정하기가 참 어렵다. 권위주의도 마찬가지다. 소위 군사정권은 역사의 한 과정으로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통째로 잘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공은 공대로 인정을 하고 과는 과대로 평가해야 한다.

‘낡은 배’라는 관점은 또 무엇인가?
기득권층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해방 이후 진행해온 배이기 때문에 낡은 배다. 동질성이 없고 다양하다. 그것을 한 배에 다 실어놓았다. 한나라당만 봐도 이승만 대통령부터의 자유당 계열이 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한나라당도 있다. 그런데 이 둘은 매우 다른 한나라당이다.

그런 측면에서 작가가 생각하는 보수의 혁신이란 무엇인가?
혁신이 필요하다. 들어내야 할 짐들, 잘못되었던 것, 유산이라고 해도 거부해야 할 유산이 있을 수 있다. 어떤 것들은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 낡아서 미래에는 못할 것들은 포기해야 한다. 새로운 미래에 대한 비전도 있어야 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 보수가 반민족적이고 기득권층으로 되어 있는 것도 정교하게 대응해서 회복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나?
세상 사람들처럼 성급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자주 자주 실망하고 있다. 지지자의 한 사람이었지만 실망이 쌓인다. 그러나 지난 6개월 동안 우리 사회가 보여준 부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아직 만회할 기회가 얼마든지 남아 있고 그 사람을 찍은 것이 나의 오류였다고 판단할 만한 결정적인 부분도 없다. 아직 역동적인 과정이다.

어떤 부분에서 실망감이 쌓인다는 것인가?
일관성이 보이지 않는다. 강력하게 밀어붙이든가, 아니면 맞춰서 하든가 해야 한다. 사람에 대한 신임에 있어서도 일관성이 없다. 공신을 챙기려고 하면 확실히 챙기든지, 아니면 말든지 그래야 하는데 어정쩡하게 하고 있다. 사람들은 경박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가벼움 내지 성급함으로 설명하는데 일관성의 문제다.

▲ 2003년 12월30일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 임명장을 받고 있는 이문열씨. ⓒ연합뉴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정치라는 것이 편 가르기라고 볼 수 있다. 글 쓰는 입장에서 손해 나고 욕하는 사람도 생기고 여러 가지 변화가 오는데, 굳이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이유가 뭘까 싶다.
내가 글쓰기를 처음 시작할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정치적으로는 거리를 두고 무이념적으로 하자는 것이었다. 그때 민중·민족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말하지 않는 지성은 지성이 아니라고 했다. 내가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욕을 많이 했다. 어떤 한쪽을 지지하지 않는 회색분자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바뀌어서 왜 작가인데 정치적으로 간섭하느냐고 한다. 그럼 나는 속으로 이런다. ‘그때 너희는 어땠어? 같은 것 아니냐?’ 보수나 진보는 우리 사회의 양 날개 같은 것이다. 한 날개가 꺾어지면 사고가 난다.

KBS 정연주 사장이 물러났다.
공영방송은 국민의 방송이라고 하는데 대통령도 국민이 뽑았다. 현 정권은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정점이 되어 움직이는 체제다. 실제로 그동안 KBS는 정권을 대변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오지 않았나. ‘땡 새천년’ ‘땡 열린 해’가 왔는데 이제 와서 여기까지만 하고 독립하겠다고 하는 것은 논리가 안 맞는 거다.

그리고 내가 듣기로는 전두환 정권 때도 KBS 안에서의 비율이 6 대 4나 7 대 3 이랬지 지금처럼 획일화된 적이 없었다. 독립이 아니라 획일화다. 폭압의 시대라는 5공 때도 지금처럼 일사불란한 적은 없었다. 공영방송의 객관화나 독립은 방송의 이상으로는 좋지만 지금 와서 갑자기 실현하겠다는 것은 그렇다. 내용은 좌우의 시각이 균형된 독립이 아니라 현재 그대로 가겠다는 것 아니냐. 하나의 신 기득권층의 저항이다. 우리 사회는 타협이 안 되는 사회가 되었다. 승리 아니면 패배다. 가운데 선이 없어졌다.

요즘에는 주로 어떤 생각을 하며 지내나?
생각이 많다. 내 문학도 중요한 전환기에 온 느낌이다. 사실 <초한지>나 이런 것은 지난 시대에 내려온 것을 정리한 것이다. 앞으로 시위에도 간섭 안 하지만 정치판 근처에는 안 갈 것이다. 문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그전에 해온 듯이 가야 하나. 아니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사회적인 발언은 안 하는 것으로 정리가 된 것인가?
그렇다. 시간이 많지 않다. 이제 기웃거릴 여유도 없다. 내가 이해해왔던 세계하고 다른 부분이 있다. 내가 전혀 이해 못하는 부분이 많이 생겨났다. 이 부분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 뒤의 글은 이전과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존의 것을 그대로 가면 편안함과 익숙함은 있지만 대신에 한편으로는 30년을 해왔는데 또 변화 없이 지루하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은 두려움이 따른다. 이 두 가지가 충돌하고 있다. 올해 5월에 책을 냈으니 연말까지 쉬면서 정리할 생각이다.

1979년 1월1일 등단했으니 올해로 30년이다. ‘이문열 문학’을 정의한다면?
글쎄, 굴절이 있었던 것 같다. 초기에는 순수라고 할까. 그런 쪽의 지향이 있었다. 우리 시대라는 것이 가운데 있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가운데 있을 수 있는 방법이 양쪽 이념을 같이 가는 방법이었는데 그것이 결정적으로 일그러진 것이 <영웅시대>였다. 양쪽으로부터 구박받았다. 처음 책을 냈을 때에는 보안사 검열에서 걸려 두 달 동안이나 책을 못 팔았다. 결국은 알음알음 알아보고 부탁해서 책이 나왔다. 그런데 한 4년 뒤에는 운동권의 금서가 되었다. 그때부터 피한다는 것이 피할 수가 없어서 양쪽 다 말하는 형태로 갔는데 이것이 잘 안되더라.

1990년이 지나면서 마음이 확 돌아서더라. 특히 2000년 이후 이전투구가 되었다. 문학 밖으로 튀어나가 싸움을 했다. 앞으로는 싸움의 범위를 문학 밖이 아니라 문학 속으로 돌아가서 할 것이다. 그렇다고 문학을 도구로 삼고 싶지는 않다. 무엇인가 길이 있을 것이다. 지금 같은 싸움이 아니라 마무리하는 작업을 하면서도 시대에 대한 대응도 성숙되고 깊이 있는 성찰로 채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작가가 생각하는 문학의 방향 같은 것은 있나?
나도 이제 마무리로 들어가야 한다. 정리하면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이냐다. 플라톤의 이데아라는 것도 이데아라는 진실이 있고 이 세상은 카피라는 것인데, 지금은 카피를 또 카피한 인터넷이라는 것과 디지털 세계가 있는 것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 디지털 세계는 베낀 세계를 또 베낀 것인데 이것이 이제는 누구도 허깨비라고 하지 못하고 점점 실체화되어가고 있다. 누군가 이것이 실체 혹은 중심이고 오히려 우리가 디지털 세계에서 살다가 실제 세상으로 외출을 나온다고 말하더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내가 겪는 본질적인 것은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과 보이지만 저것은 본질이 아닐 것이라는 것이 충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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