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찾으러 가는 길 ‘우리는 하나’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8.08.19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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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향산 보현사에서 방문단과 사찰 승려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 제공

남북 불교단체가 해외 약탈 문화재 환수 공조를 위해 평양에서 만났다. 양측은 ‘해외 약탈 문화재 환수를 위한 공동 합의서’에 서명하고 일본의 독도 강탈 책동을 규탄하는 공동 성명을 채택하기도 했다. 4박5일간의 일정을 <시사저널>이 단독 취재했다.

반세기 넘게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던 금단의 땅 평양에 4박5일 동안 다녀왔다. 설렘과 아쉬움이 교차하면서 묘한 여운이 남는 일정이었다. 남북 관계가 냉각기에 들어서고 당국자 간 대화 창구가 닫힌 상태에서 이루어진 민간 교류는 더욱 의미가 컸다.

북한 조선불교도연맹(이하 조불련)이 남한 불교단체에 초청장을 보낸 것은 지난 7월 초순이다. 금강산에서 남한 관광객이 북한군의 피격으로 사망하기 직전이다. 남북 불교계는 지난 2006년 도쿄 대학에 있던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에 대해 반환 운동을 펼칠 때부터 공조해왔다. 조불련은 남북공조를 구체화하자며 남한 불교계를 초청했고, 남한 불교단체는 흔쾌히 수락했다.

남북한 불교단체들은 지난 7월24일 개성에서 예비 접촉을 갖고 남측의 8월5일부터 9일까지 4박5일간 평양 방문에 합의했다. 평양 방문단은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를 대표해서 김원웅 전 국회의원, 운흥사 주지 법상 스님, 조계종 중앙신도회 손안식 상임부회장, 문화재제자리찾기 봉선사 주지 인묵 스님을 공동 단장으로 한 11명으로 꾸려졌다. 기자는 조선왕조의궤환수위원회 실행위원 자격으로 동행하게 되었다.

방문단 일행은 8월4일 중국 베이징에 들어갔다. 베이징에 있는 북한대사관에서 비자를 받고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 날인 8월5일에 고려항공을 통해 평양 순안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청사 옥상에 세워놓은 ‘평양’이라는 간판과 대형 김일성 초상화가 평양이라는 것을 실감나게 했다. 공항 출구를 나오자 조불련 중앙위원회 정서정 서기장, 서철민 책임부원, 중앙신도회 리현숙 부회장 등이 마중 나와 있었다. 평양 시내에 있는 조불련 청사에 도착하자 심상진 중앙위원장 등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조불련 청사는 건축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록색 3층 건물이었다. 심위원장은 “평양은 여러분들을 환영한다”라며 방문단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 북한에 나포된 푸에블로호 내부. 보현사 경내를 둘러보고 있는 남측 방문단들(오른쪽). ⓒ시사저널 정락인

방문단 단장인 봉선사 주지 인묵 스님은 “평양을 방문하게 되어 감개가 무량하다. 앞으로 남북한이 힘을 합쳐 해외에 빼앗긴 문화재를 하나라도 더 찾아오자”라고 화답했다. 조계종 중앙신도회를 대표한 손안식 상임부회장은 “일제 강점기 동안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헤아릴 수 없이 도둑맞았다. 조불련과 조계종 중앙신도회가 하나가 된다면 못할 일이 없다”라며 강한 의지를 밝혔다.

남한 방문단은 조불련에 <조선왕조실록> 환수위 활동 일지, 해외 반출 문화재 관련 도서 목록 등을 전달했으며, 김일성종합대학과 자매결연을 맺은 동국대는 <한국불교전서> 14권 전질을 조불련과 김일성종합대학에 각각 기증했다. 남북한 불교단체들은 조불련 청사에 마련된 법당에서 합동 법회를 열고 해외 약탈 문화재 환수를 축원했다.

조불련 청사를 나온 방문단 일행은 대동강 안에 위치한 양각도 국제호텔로 향했다. 차창 밖의 평양 시내에는 ‘공화국 창건 60돐’이라는 문구가 쓰인 대형 간판이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시내 여기저기에는 많은 군중들이 모여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정서정 서기장은 “공화국 창건일인 구구절(9월9일)을 맞아 평양 시민들이 행사 준비를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남한에서 ‘건국 60년’을 기념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인 풍경이었다. 또한 남북 분단의 현실이 바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양각도 호텔에 들어간 방문단은 간단하게 여장을 풀고 호텔 환영 만찬에 참석했다. 북한은 남한 방문단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했다. 남북 불교단체는 북한의 사찰, 문화재, 역사 유적지 등을 둘러보면서 공동 합의서를 작성하기로 했다.

남북 불교단체, 북한의 사찰ᆞ문화재 등 둘러보고 공동 합의서 작성

평양에서의 공식 일정은 숨가쁘게 움직였다.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갰다고 할 정도로 빡빡한 일정이었다. 8월6일에는 모란봉 유적지인 을밀대, 칠성문, 평양성곽과 쑥섬사적지, 동명왕릉, 정릉사 등을 찾았다. 평양을 대표하는 모란봉 공원은 풍광과 잘 어우러져 있었다. 방문단은 평양 시민들의 주된 나들이 코스를 따라 을밀대에 올랐다. 조불련 중앙신도회 리현숙 부회장은 “을밀대는 주변 경치가 아름다워 을밀선녀가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 또 고구려 때 이곳을 지킨 을밀장군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전설도 있다”라고 을밀대의 유래를 설명했다. 을밀대의 축대는 약 11m 높이로 고구려의 축성술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방문단이 다음으로 향한 곳은 대동강변에 있는 쑥섬 사적지다. 쑥섬 사적지는 1948년 5월2일 남북한의 정당·사회단체 지도자들이 모여 남북 연석회의를 했던 곳이다. 쑥섬 사적지에 세워진 통일선전탑에는 당시 회의에 참석한 남북한 단체명과 참석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또 지도자들이 장기를 두던 원두막과 잔디밭에 돗자리를 그대로 재현해놓았다.

방문단 일행이 감탄사를 연발한 곳은 평양 외곽에 있는 동명왕릉이다. 현존하는 고구려 무덤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이기도 하다. 동명왕릉에는 고구려의 기상과 우리의 민족혼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왕릉 입구에 세워진 능문과 제당(제사를 지내는 사당) 그리고 정릉사의 건축 양식은 방문단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특히 황제의 색인 ‘붉은 기와’는 중국 자금성의 ‘자색’ 황궁보다 더 화려하고 기품 넘치고 웅장했다. 지난 2004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동명왕릉 앞쪽에는 능사로 알려진 정릉사지가 있다. 정릉사는 발굴 당시 ‘능사’라는 글자를 새긴 그릇과 기와들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정릉사 주지 용산 스님은 “민족의 혼이 담긴 정릉사에서 남측 불교단을 만나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 더욱이 빼앗긴 우리 민족의 재산을 찾겠다고 남북이 뭉쳤으니 조상들도 기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양각도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대동강변에 정박해 있는 푸에블로호를 찾았다. 푸에블로호는 1968년 1월23일 북한 원산항 앞 공해상에서 북한에 의해 나포된 미국의 정보수집함이다. 기자가 태어나던 해와 같으니 벌써 40여 년이 된 역사의 산 증거다. 푸에블로호는 원산항에 있었으나 1990년대부터는 평양 대동강으로 옮겨 반미 교육용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현재 푸에블로호가 정박된 곳은 1866년 대동강에 침입한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평양 군민들에 의해 불태워진 자리다. 푸에블루호 선실 내에는 미국 대통령의 사과문도 전시되어 있었다.

평양 방문 3일째인 8월7일에는 남한의 국립중앙박물관에 해당하는 중앙역사박물관을 관람했다. 김일성 광장 옆에 있는 박물관은 19개 전시관에 원시 시대부터 근세에 이르는 10만점의 역사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안내원의 말에 따르면 1945년 12월에 개관되어 모란봉에 있다가 1977년에 현 위치로 옮겨왔다고 한다.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총장 혜문 스님은 “고구려와 고조선의 유물이 많은 것에 놀랐다. 유물의 양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가치가 많은 것들이다. 특히 낙랑국이 중국의 한4군이 아니라 우리의 낙랑국이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유물을 보고 감회가 새로웠다”라고 말했다.

▲ 해외 약탈 문화재 환수 공동 합의서 서명식에 참석한 남북 불교단체 관계자들. ⓒ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 제공

북한 중앙역사박물관 유물은 10만점

양각도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한 방문단은 한국 5대 명산의 하나이자 조선 8경의 하나인 묘향산으로 출발했다. 평양에서 승합차로 2시간 정도를 달려가자 묘향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향산호텔이 나왔다. 향산 호텔은 15층 높이의 호텔로 산세와 어울리도록 삼각형 모양으로 지었다.

방문단은 향산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인 8월8일에 국제친선관람관을 찾았다. 이곳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외국의 사절들에게서 받은 선물을 전시해놓은 곳이다. 안내원의 말에 따르면 총 22만2천5백22점이 대륙별·나라별로 구분되어 전시되어 있다고 했다. 스탈린이 김일성 주석에게 선물한 방탄차에서부터 노무현 대통령의 선물까지 두루 볼 수 있었다. 남한의 인사들이 준 선물은 3개관에 진열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고 박정희 대통령이 선물한 은담배함, 은재털이, 은칠보 꽃병 등과 전두환 대통령의 금장식 은세공 그릇 일식, 금장식 은수저 등도 눈에 띄었다.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동아일보 취재단이 선물한 보천보전투를 기사화한 순금 동아일보 신문 원판도 전시되어 있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정주영 고 현대그룹 회장 등 그룹 총수들이 보낸 선물도 진열되어 있었다.

묘향산 보현사에서는 남북 합동법회를 열었다. 보현사는 오랜 세월만큼이나 모진 풍파를 겪었다. 보현사 부주지 청벽 스님은 “각종 전란 속에서 불타고 파손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조국 해방전쟁 때는 묘향산에 있는 비석들이 군인들의 사격 연습 표적이 되어 곳곳에 총알 자국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팔만대장경> 보존고에는 1932년 해인사에 가서 직접 찍어왔다는 목판본 6천7백93권이 밀폐된 유리관에 보존되어 있었다.

방문단은 다시 평양으로 발길을 돌렸다. 묘향산에서 평양까지의 고속도로는 차량의 왕래가 적어서인지 비교적 잘 닦여져 있었다. 차창 밖으로는 을지문덕 장군이 살수대첩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청천강이 길게 이어졌다. 호텔에 돌아오기 전에 들른 곳은 평양에 있는 광법사다. 광법사는 329년 고구려 광개토대왕 시절에 지어진 고구려 최초의 절이다. 절 입구에 도착하니 광선 주지스님이 나와 있었다. 광선 스님은 절 입구 오른쪽에 있는 당간지주를 가리키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방문단은 대웅전으로 자리를 옮겨 합동법회를 갖고 양각도 호텔로 돌아왔다.

이제 방문단의 외부 일정이 모두 끝나고 공동선언문을 채택하는 일만이 남아 있었다. 남한 방문단과 조불련 관계자들은 오후 7시에 호텔 최상층인 47층 회전식 전망 레스토랑에 자리를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양측은 ‘해외약탈문화재 환수를 위한 공동 합의서’에 서명했다.

합의서에서 양측은 남북이 공조를 통해 “그동안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 47책을 가져오는 성과를 이루었고, 일본 궁내청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왕실의궤> 반환 운동도 꾸준히 벌여왔다. 외세가 약탈해간 문화재들의 조속한 반환을 위해 우리 민족끼리 더욱 굳게 연대해나갈 것을 다짐한다”라고 밝혔다. 양측은 ‘해외 약탈 문화재 반환’을 위한 6개 사항에 합의하고 <조선왕실의궤> 공동 반환 요청서’를 작성했다.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 김원웅 공동대표는

“문화재환수를 위한 공동 연구와 대책의 일환으로 가까운 시일 안에 서울에서 불법 반출된 문화재 환수를 위한 세미나를 갖자”라고 제안했다. 남북 불교 관계자들은 또 문화재 환수와는 별도로 일본의 ‘독도 강탈 책동을 단호히 규탄한다’라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채택하기도 했다. 평양 방문단장인 인묵 스님은 “금강산 사건 등으로 남북 관계가 경색되어가는 국면에서 남북 불교계가 독도 문제와 민족 문화재 반환운동에 공동대응하기로 합의한 것은 뜻 깊은 일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남북 불교단체는 향후 문화재 반환 운동을 원활히 추진하기 위해 필요할 때마다 적당한 장소에서 실무 접촉을 갖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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