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극대 가뭄’ , 특단의 기상 재해 대책 세워라
  • 변희룡 (부경대학교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
  • 승인 2008.08.19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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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 문명 등 세계 제국이 멸망한 원인은 모두 가뭄…2년 연속 발생하면 국가 안보까지 위협해… 기상청은 독점적 위치 버려야

매년 여름철 날씨가 수상하다. 지난해만 해도 장마철에는 비가 오지 않았고, 장마 이후 17일 동안이나 비가 이어졌다. 남반구의 적도 기단이 북위 60˚ 이북까지 직행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올 여름에는 편서풍의 흐름을 막는 저지 현상이 6월과 7월에 두 번이나 발생했다. 이 저지 현상은 드물게 나타나므로 수치 모델이 없는 슈퍼컴퓨터도 무용지물이 되기 십상이다.

여름철의 이상 날씨에다 최근에는 지구온난화 효과까지 겹치고 있다. 지난 7월의 기상 자료를 보면 강수량, 강수 일수, 강수 강도, 호우 일수, 열대야 횟수 등이 30년 전에 비해 모두 증가했고 일조 시간은 감소했다. 특히 강수량이 서울에서는 증가하면서도 산악 지방에서는 감소하는 도시기후 효과마저 겹쳤다. 또 북한강 상류는 대형 홍수의 위험이 높아지는데, 영남 내륙에는 가뭄이 깊어가고 있는 기현상도 보인다. 실제로 우리나라 곳곳에서 물난리가 났는데 단양, 김천, 청송, 산청 등지에서는 가뭄 대책반이 가동되기도 했다. 지구온난화 효과와 도시기후 효과 외에도 여러 이상 현상이 작용하면서 날씨는 더욱 예측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여름 날씨는 더욱 변화가 심해질 것이며 언제 어떤 기상재해가 발생할지 모른다. 이미 외국에서는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대형 기상재해가 발생하고 있다. 미국에서 발생한 카트리나 태풍과 호주, 스페인에서 발생한 가뭄이 대표적인 사례다. 에티오피아, 중국, 칠레는 올 여름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한쪽에서는 물난리, 다른 한쪽에서는 가뭄 ‘이상 징후’

기후 이상을 감지한 세계 각국은 협력해 대처할 것을 합의했다. 그러나 온실가스의 배출 감소에만 집중했고, 정작 중요한 기상재해를 점검하고 대책을 세우는 일은 소홀히 했다. <투모로우>라는 외화가 있었다. 물론 실제 과학적인 현상과는 거리가 있는 내용이지만 지구온난화의 결과로 대형 기상재해가 나타날 위험을 경고하는 데는 성공했다. 사실 혹서나 한파는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삼면에 바다가 있는 한 국가 안보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태풍과 호우의 규모가 위협적으로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인류는 이미 경보 체제를 마련하는 등 대응하고 있다. 역시 크게 염려할 수준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역사의 폭군’으로 불리는 가뭄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기원전 1850년 이집트의 힉소스 왕조는 7년 가뭄을 대비해 초강국이 되었다. 반면 이에 대비하지 못한 이스라엘 국민은 4백30년간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아야 했다. 모세가 자국민 60만명을 이끌고 이스라엘로 돌아왔다는 성경의 기록이 실제 역사였다는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마야 문명, 당나라, 명나라, 발해 등 쟁쟁한세계 제국이 멸망한 원인이 가뭄이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기록은 없지만 인도나 아프리카도 유사한 경험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에도 이 가뭄의 위협은 약화되지 않았다. 미국의 재해센터(disaster center)는 20세기 중대 자연 재해 100개 중 25개가 가뭄이며, 이로 인해 1천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1882년부터 29년 동안이나 지속된 사상 초유의 가뭄이 이어졌고, 그 가뭄의 막바지 고비였던 1910년에 대한제국이 멸망했다. 이런 가뭄이 현재 우리나라에 또다시 접근하고 있다. 대한제국을 멸망으로 몰고 간 1백24년 주기의 극대 가뭄의 다음 주기가 바로 코앞에 온 것이다. 그 가뭄의 시작은 2012년이고, 그 중심은 2025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1901년, 1939년, 1977년으로 이어졌던 38년 주기의 극대 가뭄의 다음 주기는 2015년이다. 앞으로 닥칠 극대 가뭄에 약간의 변화는 있겠지만 과거와 비슷한 형태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고도로 집약화한 문명 사회에서의 피해는 과거보다 훨씬 증가한다. 예를 들어 조선 시대에 흔히 발생했던 ‘2년 연속 가뭄’이 현재 발생한다면 국가 안보까지 위협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세대가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폭염이 기승을 부리자 시민들이 양산으로 햇빛을 가리며 걷고 있다. ⓒ시사저널 황문성

장마철 물로 한 해의 물 충당한다는 생각은 위험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대비 태세는 대단히 허술하다. 장마철에 비축한 물로 한 해의 물 수요를 충당하는 현재의 관행은 문제가 많다. 한 해의 가뭄은 견디어낼 수 있겠지만 2년 이상 연속되는 가뭄이 발생할 경우에는 대책이 없다. 기상청에는 여러 중요 자연재해 중에 유독 가뭄을 특보하는 규정마저 없다. 가뭄이 발생해도 이를 알려줄 의무를 가진 기관이 없다는 말이다.

가뭄 대비가 이렇게 미흡한 원인은 1953년 이후 서울에서 심한 가뭄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82년에 단수된 경험이 고작이니 가뭄의 무서움을 모르는 행운의 시기였다. 그래서 대비가 아주 취약한 상태다. 전국의 가뭄 상태가 어떠한지는 신문에 피해 보도가 나야 알 수 있는 정도다.

요순 시절부터 치산치수는 나라님의 첫 번째 덕목이었다. 이를 현대 용어로 바꾸면 ‘수자원 확보’라는 말로 집약된다. 당연히 우리 지도자들도 치산치수에 노력했다. 김대중 정부는 동강에 대형 댐을 건설하는 사업을 추진했지만 환경단체들의 강한 반발을 받고 포기했다. 노무현 정부는 ‘지구온난화에 대비한 국제 과학 협력’이라는 프로젝트를 발주했으나 명칭만 기후 문제였지 내막은 공학도들을 위한 프로젝트가 되어버렸다.

이명박 정부도 전국의 수로를 연결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발상은 1994년 남부 지방에 심한 가뭄이 진행 중일 때에 낙동강과 남한강의 물길을 연결하면 가뭄 피해의 경감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아이디어가 오래 잠행하다 어느 순간 떠오른 것이다. 현재로는 그나마도 앞날이 불투명한 실정이다. 한마디로 국가 안위와 연관되는 극대 가뭄이 코앞에 다가왔는데도 우리는 무방비 상태로 있는 것이다.

재해 대비의 선봉인 기상청이 가뭄 문제와 기후 변화에 동반된 재해에 대해 총체적인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나라 지형에 적합하지 않다고 국정감사에서 지적받은 파머가뭄지수(PDSI)를 수년째 그대로 방송하고 있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예보 기술을 개발하고, 개발 인력을 양성하고, 외부에서 개발된 기술을 기상청 내로 빨리 흡수하는 일들도 게을리하고 있다. 예보의 독점적 권리를 고수하는 일에 더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권리를 국민의 뜻에 따라 국민에게 돌려주는 데 이유를 달지 말기를 바란다. 지구상에서 유독 우리나라 국민만 예보를 판단할 능력이 없어 혼란에 빠진다거나 그 혼란까지 기상청이 해결해주어야 한다는 논리는 듣기 거북하다.

기상청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중대 자연재해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일이다. 기상청의 발전이나 예보의 적중률 향상이 더 중요하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7년 가뭄에서 이집트를 지킨 요셉 같은 인물의 등장이 요구되는 시대다. 예보 적중 시비로 일희일비하는 수준을 넘어 전 국민이 먼 하늘, 먼 장래도 긍정적 마음으로 함께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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