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그날 고구려였다
  • 이재현 기자 (yjh9208@sisapress.com)
  • 승인 2008.08.26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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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에 대한 세종대왕의 굴욕…로켓을 쏘아 올리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이유는 고구려의 흔적을 지우려는 것이다. 수나라와 당나라 같은 대제국을 상대로 굽힘없이 싸웠던 고구려의 성이 중국 본토에 있다는 것은 중국 입장에서는 매우 불쾌한 일이다. 또 그런 역사를 인정한다는 것은 길림성이나 연변에 있는 조선족들이 고구려의 후예임이 밝혀지는 것이어서 이는 대단히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재야 사학자들은 과거 고조선의 강역을 러시아의 연해주에서 중국 전역으로 보기도 하는데, 강단 사학자들이 이를 인정하지 않아 설에 그치고 있다.

연개소문의 죽음으로 고구려가 망하고 신라에 이어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지는 우리 역사는, 한반도에 머무르며 치욕의 세월을 살아야 했다. 특히 조선은 명·원·청나라에 휘둘리며 결국, 일본에게 합병당하는 초라한 국가였다. <신기전>은 세종대왕 시절에 개발되었다는 신기전이라는 팩트와 픽션을 섞어 만든 ‘팩션’이다. 세종(안성기 분) 30년, 대규모 명나라 사절단이 조선에 입국한다. 그들은 태평관에 머무르면서 조선의 신무기 개발을 감시한다. 내금위장 창강(허준호 분)은 상단을 이끌고 있던 행수 설주(정재영 분)에게 사람을 거두어줄 것을 부탁한다. 설주의 집에 들어온 인물은 고려 때 화약을 개발한 최무선의 손녀딸이자 신기전을 개발하고 있던 최해산의 딸 홍리(한은정 분)다.

설주는 고려의 유민으로 한을 품으며 돈이나 버는 장사치로 살아가지만, 화약을 제조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 창강은 명나라 사신단의 눈을 피해 설주에게 화약을 만들어줄 것을 요구하지만 거절당한다. 신기전의 설계도가 담긴 ‘총통등록’을 잃은 홍리는 아버지가 남긴 신기전을 보여주며 설주를 설득한다.

신기전 개발 열쇠 쥔 홍리

그 사이 명나라 사신단은 조선에게 엄청난 양의 조공을 요구하며 행패를 부리고 세종은 이를 고스란히 감수한다. 이즈음 홍리는 신기전 개발에 몰두하고 실패를 거듭한다. 조선의 신무기 개발을 알아낸 명나라 사신단은 세종에게 협박을 거듭하며, 10만명의 병력을 압록강에 주둔시키도록 본국에 요청한다.

사실과 허구가 섞여서 <신기전>은 신기전의 완성을 향해 가는데, 역사보다는 재미에 무게를 두는 바람에 밥이 죽이 되었다. 설주와 홍리의 애정 행각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내금위장 창강의 연기는 애국 마케팅용처럼 보인다.

명나라를 향한 조선의 자존심 찾기를 신기전이라는 ‘로켓’을 통해 보여주겠다지만 비장함보다 가벼움이 도처에서 묻어나온다. 5백60년 전에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한 무기를 개발했다는 팩트도 거의 컴퓨터그래픽 작업에만 의존해 SF에 가깝게 보인다. 그러나 신기전이 우리 역사에 엄연히 존재하는 무기이고 화면으로나마 그 위용을 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신기전>은 평가받을 만하다. 9월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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