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 수만 있다면 ‘재탕’도 좋아
  • 이대화 (대중음악 평론가) ()
  • 승인 2008.08.26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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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계 리메이크 바람 점입가경 …‘추억’ 마케팅에도 거품 끼어들라

▲ 음반 시장이 불황으로 몸살을 앓자 리메이크 곡들이 재미를 보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사람들은 누구나 ‘아는 노래’를 듣고 싶어 한다. 늘 새로운 것을 찾아 ‘디깅’하는 마니아라도 가끔은 예전에 듣던 히트곡이 미친 듯이 그리워 묵혀두던 카세트테이프 뭉치를 꺼내들기도 한다. 리메이크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추억과 익숙함이 대중을 사로잡는다.

라디오 채널을 고르다가도 익숙한 노래에 다이얼이 멈춰지듯, 우리 대중들은 지금도 익숙한 선율이라면 잘 반응한다. 아무리 리메이크가 상업적 수단이라는 지탄이 쏟아져도 일단 내놓으면 반응은 좋다. 잇속에 밝은 제작자라면 이것을 마다할 리 없다. 올해에도 벌써 많은 리메이크 곡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상반기에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발라드 이승기의 <다 줄꺼야>부터가 리메이크다. 2000년 조규만이 발표했던 곡으로 이제는 감미로운 고백 송의 고전이 되었을 만큼 많이 불리고 들려지던 노래다. 역시 이승기의 곡으로 KBS의 간판 버라이어티 <1박2일>에 삽입되어 인기를 누렸던 <여행을 떠나요>도 1985년 조용필의 고전을 리메이크한 곡이다.

비록 커다란 히트는 거두지 못했어도 올해 들어 정말 많은 가수들이 계속해서 리메이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의 예만 보아도 메이비가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 신지가 송대관의 <해뜰날>, 신인 섹시 여가수 앤젤이 룰라의 <3! 4!>, 솔지가 신승훈의 <처음 그 느낌처럼>을 불렀다. 힙합 가수들은 샘플링을 통해 이 대열에 참여하고 있다. 래퍼 비지는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날>을 샘플링한 곡 <헤어진 다음날>로 데뷔 신고를 치렀다.

왜 이렇게 리메이크 곡들이 많은가 하면 역시 음반 시장 불황을 꼽을 수 있다. 뭘 해도 안 되는 상황이다 보니 가수들이 자꾸만 ‘확실한 것’을 찾는 것이다.

히트했던 곡들 다시 부르면 ‘인기 보장’

히트곡이라는 것은 열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확률 게임의 결과물이다. 미리 히트했던 곡을 다시 부르면 훨씬 손쉽게 인기를 보장할 수 있다. 7080에 이어 8090 바람까지 불 정도로 대중들 역시 이 옛날 곡 열풍에 대한 수요가 강한 시점이므로, 가수들로서는 그 이상 좋은 호조가 없다.

그런데 이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리메이크는 수익의 상당량을 원작자에게 주어야 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는 상당히 불리하다. 사실상 그리 좋은 불황 타개책은 아닌 셈이다. 안 그래도 음반이 팔리지 않는데 팔린 것에서마저 왕창 떼어간다면 오히려 상황은 악화만 될 것이다. 그러나 리메이크는 계속 성황 중이다. 왜일까. 계산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리메이크 마케팅은 ‘음악 수익’보다는 ‘화제’를 노린다고 봐야 맞다.

리메이크 곡의 경우, 창작곡보다 음악 판매로 인한 수익은 적을지라도 일단 히트가 된다. 히트가 된다는 것은 화제의 인물이 된다는 것을 뜻하고, 유명세가 생기면 돈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힘들게 컨셉트를 짜고 자기만의 색깔을 개발해서 나가보았자 ‘누가 누구를 리메이크했다’라는 한 줄 기사가 훨씬 파급력이 클 때가 있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피처링 열풍도 그래서 불고 있다. 마이티 마우스는 윤은혜와 원더걸스의 선예가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이목을 끌어 스타가 되었다. 스타가 되면 방송 출연도 잦아지고 얼굴이 알려질수록 행사 섭외도 많다. 막상 공연장에 섰을 때 사람들이 크게 반응하는 곡도 결국은 익숙한 노래일 때가 많다. 리메이크는 그런 이유로 손쉬운 불황 타개책이 되고 있다. 과도하게 쏠리는 것은 문제지만 현실이 그러하므로 무작정 비판만 해봤자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어 그렇지 리메이크의 ‘다시 부른다’는 의미가 본래 나쁜 것은 아니다. 리메이크는 잊혀가는 음악을 지금의 감성으로 되살려 새 생명을 불어넣기도 하고, 뮤지션들끼리 서로 존경과 애정을 표현하는 소통의 수단이기도 했다. 록시 뮤직의 리더였던 브라이언 페리가 지난해에 밥 딜런의 리메이크 앨범을 냈지만, 여기에 대해 뭐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에게도 좋은 리메이크 앨범들이 있었다. 조관우는 1995년 <Memory>를 발표하고 정훈희의 <꽃밭에서>, 김추자의 <님은 먼 곳에> 같은 고전들을 특유의 팔세토 창법으로 독특하게 재해석해 이 곡들을 다시금 역사의 수면 위로 부상시켰다. 정훈희는 올해 40주년 앨범을 발표하면서 <꽃밭에서>를 아직도 조관우의 노래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밝혔고, <님은 먼 곳에> 역시 만약 조관우의 버전이 없었다면 1981년생인 거미가 2008년에 그 곡을 열창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이은미의 2000년 앨범 <Nostalgia>도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와 변진섭의 <그대 내게 다시>를 발군의 보컬 재능을 발휘해 여성 버전의 표준을 정립했다. 이렇게 실력파 가수들의 앨범에 여러 번 수록되면서 원곡자의 수고와 음악성에 대한 평가가 더 견고하고 드높게 쌓여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일면 긍정적인 ‘리메이크’에 부정적 시선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은 2004년께부터다. 그 당시 한국은 리메이크 ‘열병’에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없이 많은 리메이크 앨범이 쏟아져나왔다.

우리 가요계의 창작력 어디 갔나

이수영이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를 히트시킨 것을 필두로 2005년에는 무려 한 해에만 10개 이상의 리메이크 음반이 발표되었다. 보통 1명의 가수가 1년에 1장의 앨범을 발표한다는 것을 상기하면 그때 무려 10명 이상의 가수가 그해 음악 활동의 축을 리메이크에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나얼, 이승철, 박효신처럼 나름으로 음악성을 인정받는 진영에서까지 일거에 몰두해, 그해 우리 가요계의 창작력은 도무지 빛을 발하지 못했다.

결국 ‘과도함’이 하나의 음악 소통 양식을 ‘상업적인 것’으로 낙인찍은 것이다. 그 후로 우리 가요계에는 리메이크에 대해 예민한 경계심을 갖고 바라보는 풍토가 자리 잡았다. 2006년 터져 나온 대규모 표절 시비는 국내 가수들에 대한 불신을 키웠고, 남의 음악을 가져오는 것에 대한 부정적 시선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늘 이렇게 정도가 지나칠 때 문제가 생긴다. 일제히 달려들지만 않았어도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리메이크를 향한 편견에서 벗어나는 길은 순수하게 자신의 창작만으로도 얼마든지 훌륭한 곡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은미의 경우만 해도 <Nostalgia> 말고도 <자유인> 같은 좋은 앨범이 있고, 무엇보다 그녀는 출중한 가창력을 가지고 있다. 조관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록 그룹 쓰리 독 나이트(Three Dog Night)는 히트곡들이 상당수 다른 가수의 곡을 가져온 것이어서 평단으로부터 오랫동안 그 음악성을 평가 절하당해왔다. 해답은 아주 쉬운 곳에 있다. 실력으로 승부해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꼭 리메이크가 아니더라도 최근 히트곡들의 상당수는 이미 익숙한 음악을 활용해 성공을 거둔 경우가 많다. 지난 한 해 많은 사랑을 받았던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 양파의 <사랑 그게 뭔데>도 어느 정도는 누구나 아는 클래식 선율을 샘플링한 덕을 보았다. 2007년 음반 판매량 5위를 기록한 씨야의 2집도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도입한 것이 큰 보탬이었다.

익숙함의 미학이 스타 만들기와 대중 공략에만 활용된다면 우리 음악계는 언제고 ‘복고’만 바라고 있어야 한다. 2008년 10만 장 이상을 판매한 앨범이 거의 90년대 스타들의 성과라는 사실은 이 대목에서 시사적이다. 계속 과거의 유산에 기댈 수는 없다. 언젠가 더 이상 써먹을 레퍼토리도 고갈되고 모든 추억 마케팅의 거품이 꺼지는 순간, 우리는 무엇으로 승부를 봐야 하나. 바로 ‘현재’다. 지금의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는 지금 감성의 창작력이 바로 진정한 불황 타개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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