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새김질’도 잘만 하면 세대 차이 넘는다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8.08.26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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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시장에 뜨는 복고풍, 잃어버렸던 콘텐츠 되살리기인가 장삿속인가

▲ 지나간 시절의 콘텐츠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 ⓒkbs제공 ⓒ시사저널 박은숙 ⓒ시사저널 바른손 커뮤니케이션즈 제공

대중문화 시장 전반에 지나간 시절의 콘텐츠가 되살아나고 있다. 대중문화 관계자들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옛날 작품들을 창고에서 찾아내 이를 재해석하고 재가공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전설의 고향>,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 뮤지컬 <진짜 진짜 좋아해>는 물론이고 최근 인터넷에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빠삐놈>은 10대부터 40대까지 아우르는 복고 상품이다. 1970년대의 음악에 1980년대의 만화 캐릭터와 상품 광고를 얹고 2000년대의 유행을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옛 콘텐츠의 리메이크 바람은 가요, 드라마, 영화, 뮤지컬 등 어느 한 분야를 내세우기 어려울 정도로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대중문화 업계가 옛 콘텐츠에 집중하는 것은 이것들을 재가공한 문화 상품들이 대중에게 잘 먹혀들고 있기 때문이다.

옛 콘텐츠의 복귀를 가장 먼저 알린 것은 가요계다. 대중가요 시장에는 2~3년 전부터 다시 부르기가 한창 유행하고 있다. 동방신기, SG워너비, 소녀시대 등 아이돌 스타에서부터 박효신, 이은미, 나얼 등 가창력을 인정받은 경우까지 웬만한 가수들은 대부분 리메이크 곡을 발표했다. 귀에 익은 멜로디가 조금은 낯선 목소리에 실려나오는 것을 듣는 것은 이제 익숙한 일이 되었다.

가요계가 앞장서서 옛 노래 다시 불러

최근에는 TV 드라마에 리메이크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KBS는 납량 특집으로 <전설의 고향> 카드를 9년 만에 다시 꺼내들었고, <서울 뚝배기>를 18년 만에 리메이크한 <돌아온 뚝배기>도 방영 중이다. MBC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 <내 여자> 역시 1980년대 히트했던 <종점>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무려 3편의 리메이크 드라마가 동시에 방영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김지운 감독의 <놈놈놈>과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 리>도 이같은 분위기에 한몫하고 있다. <놈놈놈>은 이만희 감독의 만주 액션활극 <쇠사슬을 끊어라>에서 모티브를 가져왔고, <다찌마와 리>는 한국형 첩보 액션영화에 대한 감독의 오마주와 패러디가 영화 전반에 버무려져 있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에게 리메이크 작품은 향수와 추억을 선사한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처음 원저작물을 접했을 때의 경험과 현재의 리메이크 작품을 비교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원저작물에 대한 기억이 없는 젊은 세대라고 할지라도 리메이크 작품을 감상하는 데 어려울 것은 없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한 차례 검증을 받은 작품에는 분명 대중들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4년 가까이 방영되며 장수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한 KBS <콘서트 7080>에서는 그 시절의 노래가 원곡을 부른 가수들에 의해 공연되는 것을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 이들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젊은 가수들이 7080 노래를 부르는 경우도 많이 있다. 제작진의 이같은 시도로 인해 <콘서트 7080>은 40대·50대만 즐기는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20·30대 젊은 세대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기성세대와 신세대 모두를 끌어들일 수 있는 리메이크 작품이 모두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실패에 대한 위험 부담을 줄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당시의 시대상을 나타낸 부분을 현대적으로 잘 해석하는 작업이 가미될 경우에는 성공할 확률이 더욱 높아진다.

▲ ⓒ영상자료원 제공 ⓒkbs제공

현재 시점에 맞게 변형시켜야 성공

해묵은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는 <전설의 고향>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도 현재 시점에 맞는 변형이 가해졌기 때문이다. <한성별곡>의 곽정한 PD를 비롯해 5명의 연출자가 총 8편의 작품을 만드는 연작 단막극 형식의 <전설의 고향>은 첫 회부터 20.1%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제작진 사이에서 시청률 15%를 넘기지 못하면 망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다지 공포스럽지 않아 실망했다는 시청자도 있지만, 다양한 소재와 깔끔해진 컴퓨터그래픽, 세련된 연출 등에 대한 좋은 평가가 주를 이룬다. 한철경 CP는 “색깔이 다른 8개의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점과 구미호가 나오는 것만 빼고 다 바꿀 수 있다는 새로운 시도가 성공의 요인이다”라고 평가했다.

반면에 같은 방송국의 <돌아온 뚝배기>는 시대에 뒤처지는 이야기 라인과 젊은 배우들의 어색한 연기, 독특한 말투로 감초 역할을 하던 주현과 김애경을 대체할 만한 조연의 부재 등으로 고전하고 있다. 현대적인 해석과 짜임새 있는 연출이 함께 하지 못한다면 검증된 작품도 실패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새롭게 만들어진 작품들의 성공이 반대로 원저작물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는 이미 지워진 작품이 새롭게 재조명되는 것이다. 만주 액션활극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던 김지운 감독이 현대적으로 새롭게 재구성한 <놈놈놈>이 그런 경우다. 김감독이 <쇠사슬을 끊어라>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공언했지만 <놈놈놈>을 보면서 이 영화를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쇠사슬을 끊어라>가 차용한 스파게티 웨스턴 작품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석양의 무법자>를 연상하는 쪽이 빠를 것이다.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 리>도 마찬가지다. 한국형 첩보 액션 영화를 패러디하고 있는 이 작품은 관객이 기억하지 못하는 영화들을 비틀고 있다. 패러디라는 형식이 원작에 대해 많이 알수록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류승완 감독의 도전은 무모할 정도다. 하지만 영화 자체로 충분한 즐거움을 주는 까닭에 <다찌마와 리>를 재미있게 본 관객들이 오히려 옛 영화에 대해 궁금증을 갖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놈놈놈>과 <다찌마와 리>로 인해 촉발된 1960~70년대 한국 액션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해소시킬 수 있는 ‘만주 웨스턴 특별전’을 마련했다. 8월21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되는 특별전에는 <쇠사슬을 끊어라>를 비롯한 14편의 만주 웨스턴 작품이 상영되고 있으며 관람료는 무료다.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는 없지만 옛 콘텐츠의 리메이크 바람은 순수 창작물이 나오는 데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실제로 리메이크 바람이 가장 먼저 불기 시작한 가요계에서는 히트곡 리스트에서 창작곡보다 리메이크곡이 먼저 보일 정도로 창작곡에 대한 공급과 수요가 많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잘 된 리메이크물 하나가 세대 간의 간극을 줄이고 공통된 이야기 소재를 던져줄 수도 있다는 점도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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