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어디로 풀렸나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8.08.26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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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역원, 수입업자에게 1천7백여 t 넘겨…도매시장 비중 약해지고 가맹점 형태 유통 늘어

미국산 쇠고기의 유통이 본격 시작된 것은 맞는 말이다. 지난 8월17일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 따르면 검역이 재개되면서 검역합격증을 받은 미국산 쇠고기는 총 5천3백91t에 달한다. 이 물량 모두가 유통되고 있지는 않다. 검역원의 자체 추산에 따르면 1천7백여 t의 적지 않은 물량이 수입업자의 손에 넘어갔고, 나머지 3천6백여 t의 많은 물량은 아직 창고에 쌓아둔 상태다. 굳이 비율로 따지자면 유통이 가능한 미국산 쇠고기 중 3분의 1만이 유통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는 어느 사이에 뉴질랜드산 쇠고기를 제치고 검역 통과량에서 2위가 되었다. ‘뼈가 붙어있는’ LA갈비도 판매가 시작되었다. 육류수입업체인 이네트는 수입위생조건(QSA Program)에 맞춘 LA갈비 40t이 검역을 마치고 시판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어쨌든 분위기로만 본다면 미국산 쇠고기가 다시 전성기를 맞는 느낌이다.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를 판매하고 있는 서울 마장동과 독산동 우(牛)시장의 분위기는 이런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8월19일, 추석 대목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이지만 마장동 우시장에는 손님보다 상인들의 왕래만 분주해 보였다. 미국산 쇠고기를 판다는 팻말이 8월 초까지 드문드문 보였지만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다. 대신 ‘LA갈비’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 서울 마장동의 우시장에서는 8월 초까지 드문드문 보였던 미국산 쇠고기 판매 안내판이 대부분 사라졌다. ⓒ시사저널 황문성

마장동ᆞ독산동 우시장에서는 “고기 구경도 못해봤다”

“1천7백t? 우리 집에는 1백70㎏도 없다. 여기 물어봐야 고기 구경도 제대로 못해본 사람들 많을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를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에 마장동의 한 상인은 싸늘하게 답했다. 미국산 쇠고기를 팔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팔 의사는 없다고 덧붙였다. 사는 사람도 거의 없거니와 물량도 제대로 공급이 안 된다는 설명이었다. 다른 상인은

“경기도 안 좋고 쇠고기 전체 시장이 매우 나쁜데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기 싫다. 이렇게 취재 나오는 것도 싫다. 그래서 아예 미국산 쇠고기를 무시한다”라고 말했다. 독산동 쪽의 반응도 비슷하다. 오히려 독산동 우시장의 상인 중에는 한우에 대한 자부심을 내세우는 사람이 꽤 있었다. 상인 이 아무개씨(44)는 “어디를 둘러봐도 미국산 쇠고기나 LA갈비를 판다는 문구를 찾기 어렵다. 우리 가게에도 미국산 쇠고기를 찾는 사람이 간혹 있지만 가격이 부담된다면 오히려 육우(고기 생산용으로 기른 소)를 사라고 권한다”라고 말했다.

ㅎ유통업체의 김 아무개 실장은 “재어놓지 않을 뿐 도매시장(우시장)에서도 실제로는 어느 정도 거래되고 있다. 다만 큰 수입업체의 경우는 직영점이나 가맹점을 끼고 있어 시장에 물건을 대지 않는 곳도 많지만 영세한 수입업체들은 브로커를 끼고 도매시장에 내놓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우시장의 한 정육업체에 “미국산 쇠고기로 100개 정도의 추석 선물세트를 제작할 수 있겠냐”라고 문의하자 “충분히 가능하다”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김실장은 “판매가 재개된 이후 초기에는 기대감을 가지고 미국산 쇠고기 1t 정도를 구입해 파는 상인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팔렸겠느냐”라고 반문했다. 미국산 쇠고기가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은 몇 단계를 거친다. 수입업체가 미국의 수출업체에게 쇠고기를 공급받으면 이 중 대부분이 도매시장으로 넘어간다. 과거에는 수입 쇠고기의 약 80%가 도매시장을 거쳐 정육점 등의 소매업체나 식당, 마트 등의 대형 유통업체로 넘어갔다.

하지만 지금은 유통 과정이 달라졌다. 미국산 쇠고기에서는 도매시장의 비중이 상당히 약해졌다. 중심에는 수입업체가 있다. 한 수입업체의 관계자는 “그동안 창고에 묶여 있던 쇠고기를 판매하려는 업체들이 여론의 반대가 심하니까 도매시장보다는 가맹점 형태로 직접 판매하기 시작했다. 도매시장에서도 미국산 쇠고기를 받기가 부담스러웠다. 눈치도 보였고, 그동안 창고에 쌓여 있던 재고여서 쇠고기의 질도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2003년 12월 광우병 파동으로 전면 수입이 금지되기 이전에 미국산 쇠고기의 최대 수입량은 20만t에 이른 적도 있다. 당시 국내 수입 쇠고기의 75%에 달한다. 당시에는 판매 루트가 다양하게 확보되어 수입과 유통의 괴리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현재 미국산 쇠고기를 도매시장에 넘기는 업체는 대부분 자금력이 부족한 영세업체들이다. 지금 유통되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의 대부분은 지난해 10월부터 수입이 금지되면서 묶여 있던 것이다. 영세 업체들은 잠자고 있던 미국산 쇠고기를 하루빨리 유통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대형 마트 등이 미국산 쇠고기 판매를 거부하면서 주요 판매처가 없어졌다. ㅈ유통업체의 관계자는 “지난달에 가지고 나온 미국산 쇠고기가 4t인데 아직까지 1t밖에 소화를 못했다. 지방 쪽에서라도 소화를 하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지만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일부는 수입을 접어야 할 만큼 난처한 상황에 놓인 곳도 있다.

반면 대형 수입업체들은 형편이 나은 편이다. 이들은 도매시장 등을 거치지 않고 바로 소비자와 상대한다.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기 전부터 가맹점을 유치하고 직영 식당을 운영하는 등 자체 유통망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 대전시의 한 수입육 업체 직원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냉동창고로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에이미트측 “요식업체보다 개인이 사가는 비율이 더 높다”

(사)한국수입육협회의 임시 회장을 맡아 미국산 쇠고기 협상 때부터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던 에이미트의 박창규 대표는 “평균 하루에 5t씩이니까 지금까지 약 2백50t 정도 유통시켰다. 매주 20t짜리 컨테이너 하나씩 쇠고기를 들여오고 바로 유통시킨다”라고 전했다. 사실 대형 수입업체의 입장에서는 “잘 팔린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인 이슈가 되기 때문에 홍보에 도움을 준다. 따라서 그들의 판매량을 100% 신뢰하기 어렵지만 판매가 궤도에 오른 것은 사실인 듯하다.

이들 수입업체는 기존에 닦아 놓은 루트를 통해 바로 판매한다. 이들이 검역을 거쳐 가지고 나온 쇠고기는 직영점과 지역 가맹점으로 내려가는데 여기에서 직접 소비자를 만난다. 개인과 식당이다. 업계의 말을 정리해보면 미국산 쇠고기를 구매하는 개인과 요식업체의 점유율은 수도권에서는 7 대 3 정도, 지방에서는 9 대 1 정도로 추측된다. 고기 맛을 보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에이미트 부산 직영점의 김정봉 지점장은 “아직까지는 궁금해서 시험해보는 개인이 많다. 맛있다고 다시 오는 손님도 있다. 반면 요식업체의 경우 미국산 쇠고기의 전 부위를 구매하기보다는 부분적으로 구매하는 경향이 강하다. 호주산이 지원해줄 수 없는 갈비살 등을 미국산으로 사가는 식당들이 더러 있다. 하지만 대다수 요식업체들과 소매 정육점 업주들은 계속 관망만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에이미트의 경우 서울 다음으로 시장이 큰 부산의 가맹점에서 하루에 판매되는 양이 전체 일일 유통량의 6% 정도인 3백㎏ 정도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미국산 쇠고기가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유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로서는 소수의 직영점과 인터넷 거래, 일부의 소매 정육점과 도매시장 등을 통해서만 미국 쇠고기 구입이 가능하다.


몇몇 업체는 직영점 통해 ‘짭짤’…백화점ᆞ마트 납품까지는 멀 듯

그동안 수입 쇠고기의 유통 구조는 ‘카르텔’(기업연합)끼리만 공유하는 비밀에 가까웠다. 일단은 가장 기본적인 유통업체의 수효조차 확실치 않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측은 수입 쇠고기를 유통하는 업체 수를 대략 3백~5백개 정도라고 짐작하고 있다. 김실장은 “언론에서는 보통 100곳 정도라고 이야기하지만 지방의 영세한 곳을 다 합치면 서너 배는 많을 것이다”라고 추산했다.

하지만 수백 개의 업체 중 쇠고기 시장을 선점하려고 하는 소수의 업체들에게 시선이 쏠리면서 미국산 쇠고기의 정확한 풍향계가 작동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마장동의 한 전문 도매상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몇몇 업체는 분명히 혜택을 봤다. 그 직영점들에서는 어느 정도 팔리고 있다. 하지만 그래봐야 고작 1천여 t이다. 지금 창고에 쌓여 있거나 앞으로 들어올 예정인 것만 해도 당장 1만t은 될 텐데, 그 많은 양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궁금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언론에서 추석 때 물건을 풀려고 쌓아뒀다고 하는데 말도 안 된다. 백화점이나 마트에 납품이 되어야 하는데 그럴 수도 없다. 게다가 이미 납품 시기도 늦었다. 팔기 어려워서 쌓아놓은 것이 맞는 말이다. 적정 판매량을 이미 계산한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미국산 쇠고기가 연간 20만t이나 유통되던 2003년을 기준으로 50일 유통량을 계산해보면 약 2만7천4백t이 나온다. 하지만 2008년 6월 새 수입위생조건고시가 고시된 이후 50여 일 동안 수입업자에게 넘어간 미국산 쇠고기는 1천7백여 t이다. 절정기와 비교하면 고작 6%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6% 수준의 미국산 쇠고기가 우리 주위에 맴돌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남지원은 7월8일부터 8월7일까지 대전·충남 지역 음식점 4천5백3곳을 대상으로 원산지 표시 단속을 실시해서 허위 표시 업소 18곳과 미표시 업소 2곳을 적발했다. 대전시 서구의 한 식당은 미국산 쇠고기(50.7㎏)의 원산지를 국내산 한우로 둔갑시켜 판매하다 적발되어 형사 입건되었다.

한우의 등심은 100g당 6천5백원대이지만 미국산 쇠고기의 등심은 약 2천5백원대로 저렴하다. 마진의 유혹은 앞으로도 계속 소비자들을 시험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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