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순호’ KBS는 어떤 작품 만들까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8.09.01 15:0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원행동’측 반대 투쟁 속 대대적인 인사 개편 예고
▲ 8월27일 이병순 KBS 신임 사장(가운데)이 취임식장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병순 KBS 비즈니스 사장이 이명박 정부의 KBS 수장으로 취임했다. 오피니언 리더들을 대상으로 한 <시사저널>의 여론조사에서 지난 2000년대 들어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 매체로 떠오른 KBS는 어쩔 수 없이 5년에 한 번씩 반복되는 정권의 교체기마다 부침을 거듭했다.

노태우 정권에서는 서기원 사장이, 김영삼 정권에서는 홍두표 사장이, 김대중 정권에서는 박권상 사장이 정권과 운명을 함께했다. 지난 노무현 정권에서 사장으로 취임한 정연주 전 사장도 현 정부 들어 자신의 임기를 모두 채우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불가항력이었다.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역대 사장들은 자연스럽게 정권과 운명을 함께했는데, 정 전 사장만 유독 버티겠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라는 불만이 터져나올 정도였다.

지난 8월27일 이사장의 취임을 맞는 KBS 내부의 분위기는 여전히 어수선했다. 이미 6명의 본부장은 모두 사표를 제출했다. “사장이 바뀌었으니 당연한 것 아니냐”라는 내부의 체념 섞인 반응이 기자에게 전달되었다. 사장 직속 체제에 있는 한 팀장은 “나도 이미 마음을 비웠다. 개인적인 성향과는 상관없이 정 전 사장 직속의 센터 팀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나 또한 교체 대상에 오르고 있다”라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정권의 부침에 따라 요동치는 KBS의 현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었다. 그는 “방금 전 취임식에 참석했다. 향후 만만찮은 파장이 일 것 같다. 아마 대대적인 인사 이동이 뒤따를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이병순 사장 “문제 프로그램 손보겠다” 밝혀

실제 이날 이사장은 취임사에서 “선정성이나 특정 이념이 여과 없이 노출되는 실수들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사전사후 심의 제도를 철저히 운영하겠다. 지금까지 대내외적으로 비판받아온 프로그램,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도 변화하지 않은 프로그램은 존폐를 진지하게 검토하겠다”라고 밝혔다. 예상을 뛰어넘는 강도 높은 표현이었다.

KBS의 앞날을 예측하는 데 가장 예민한 부분은 현재 KBS에서 대표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두 단체인 KBS 노조와 KBS 사원행동의 방향이다. 노조는 사실상 신임 이사장을 받아들였다. 반면, 사원행동은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이는 등 반대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그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이 내부 반응이다. 내부의 한 관계자는 “그래도 역시 힘을 갖고 움직일 수 있는 단체는 노조뿐이다. 그들에게는 정통성이 있고, 또 무엇보다 노조 집행부는 투쟁에만 전념할 수 있는 보장이 되어 있다. 하지만 사원행동은 일시적인 기구인 데다 여기에 소속되어 있는 기자나 PD들은 모두 일선에서 기본적인 일을 수행해야 한다. 그들이 장기적으로 힘을 갖고 지탱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KBS 편성본부의 한 중견 PD는 “어떻게 보면 침묵하는 대다수의 구성원들 가운데 급격히 사원행동에 동조한 까닭은 KBS 이사회에서 유재천 이사장이 경찰 병력을 동원한 데 따른 반발이 컸다. 그런데 사실 사원행동은 PD연합회와 기자연합회 그리고 경영연합회의 몇몇 간부들이중심이 된 기구다. 노조와 같은 결속력이나 정통성을 갖는 데에는 한계가 따른다”라고 설명했다.

가장 큰 변수는 올 하반기에 모두 임기가 끝나서 교체될 PD연합회장과 기자연합회장, 노조의 새 집행부 구성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12월 새로운 집행부가 구성되는 차기 노조 선거 결과다. 현 박승규 노조위원장은 정 전 사장 퇴임 문제로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로 내부 사원들의 분열을 막지 못했다. 또한, 공교롭게도 이병순 사장과 박위원장의 남다른 관계가 KBS 안에서는 화제가 되고 있다.

새로 구성될 KBS 노조와 사원행동 집행부 선거가 관건

두 사람 모두 TK 출신인 데다 서울대 동문 선후배 사이다(이사장은 독어교육학과, 박위원장은 독문학과 출신이다). 또 두 사람은 KBS 베를린 특파원을 지낸 경력도 같다. 일각에서는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예상되는 이사장의 첫 행보에 그나마 박위원장의 존재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TV제작본부의 한 PD는 “지난 정연주 전 사장 취임 때도 당시 노조위원장이 신임 사장과 비교적 밀월 관계를 유지했다는 소문이 많았다. 아무래도 신임 사장으로서는 노조위원장과 가깝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이사장은 박위원장과의 이런 인연을 십분 활용하려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문제는 12월에 새롭게 구성될 노조집행부와 이사장이 어떤 관계를 유지하는가 하는 문제다.

‘친정연주’ 계열로 분류되는 TV제작본부의 한 팀장급 간부는 “정 전 사장이 와서 도입한 것이 팀장 제도다. 어찌 보면 사내의 전통적 서열을 파괴하는 듯한 이 제도의 도입으로 정 전 사장은 필연적으로 많은 안티 세력을 양산하고 말았다. 신임 이사장이 팀장 제도를 일거에 뒤집을 수는 없겠지만, 절충안으로 ‘대국 소팀제’로 갈 것 같다는 얘기가 많다. 현행의 본부장 바로 밑의 여러 팀제에서 중간에 ‘게이트 키핑’을 할 수 있는 국장을 두겠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사장 혹은 본부장 등 윗선의 의지를 팀장과 일선 PD, 기자 등 아래로 전달하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간부와 일선 PD 및 기자들의 갈등이 자칫 첨예화될 소지가 많다”라고 전망했다. 실제 한 PD는 이사장의 취임식이 열린 직후 사내 게시판에 “이사장의 취임사는 과거의 권위주의로 회귀하겠다는 말로 들리며 자기 검열에 빠져 부서장 눈치만 보는 직원들만 늘어날까 걱정이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KBS는 창사 이래 처음 맞이하는 공채(4기) 출신의 사장을 배출하는 경사를 맞이했다. 하지만 지금 KBS 내부는 그 어디에도 그런 분위기가 보이지 않는다. 긴장감만 팽팽하다. ‘이병순호’가 안착할 수 있을지는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손에 달렸다는 얘기도 들린다. 무엇보다 올 하반기 KBS 사원행동과 노조의 새 집행부가 어떻게 구성될지가 큰 관심사가 될 듯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