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성장’ 한다면서 웬 원자력?
  • 최예용 (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 ()
  • 승인 2008.09.09 12:5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가에너지기본계획, 환경•시민단체 반발 불러…정책 근본 안 바뀌면 ‘저탄소’는 공염불
▲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제3차 국가에너지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원자력을 둘러싸고 환경 문제를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 작은 이견이 존재해왔다. ‘원자력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위험한 기술이니 반핵의 입장을 확실히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 하나이고, ‘현실적으로 원자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니 현존하는 발전소는 일단 인정하고 추가 건설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 다른 하나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자의 입장이 훨씬 우세했다. 1986년 구 소련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에서 터진 핵 사고의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핵폐기물 처리를 둘러싸고 20여 년간에 걸쳐 큰 사회적 논쟁을 경험했다. 1980년대 말의 안면도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 계획을 둘러싼 논쟁을 시작으로 1990년대 중반의 굴업도 사건, 2005년의 부안사태가 모두 우리 사회의 반핵 의식을 보여준 사건들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높은 시민의식과 원자력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형성해왔다.

사회·경제적 배경이 크게 다르지만 경제 개발의 모델이나 에너지 수급 방식에서 근본적으로 다를 바가 하나 없는 유럽과 아시아가 보여주고 있는 에너지 정책의 지향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체르노빌 사고를 온몸으로 체험한 유럽인들은 20여 년간 핵발전소를 거의 짓지 않고 친환경 에너지원의 발굴에 주력해왔다. 기후 변화에 대한 사회적 각성이 남다른 것도 한몫했다. 그 결과 국가 에너지 공급량의 30%를 풍력 에너지 등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공급하는 나라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덴마크는 50%를 단기 목표로 하고 있을 정도로 앞서간다. 대다수 유럽 국가들은 매년 12월 초에 열리는 유엔기후변화당사국총회(UNFCC)에서 오래전부터 스스로 기후 변화 해결을 위한 저탄소 에너지 전략을 실천하면서 다른 나라들에게도 호소해왔다. 정당의 성격을 불문하고 모든 주요 선거의 후보자들은 앞다퉈 이산화탄소 감축 목표와 방법을 적극적으로 제시한다. 이렇게 국제 사회가 에너지원의 다변화를 둘러싸고 급변하는 동안 한국은 꾸준히(?) 석유와 원자력의 비중을 높여왔다.

유럽이 친환경 에너지원 발굴하는 동안 우리는 석유ᆞ원자력 고집

대부분의 환경 분야에서 노무현 정부가 매우 보수적인 입장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사실 환경론자들은 이명박 정부에서 친환경 정책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지난 8·15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밝힌 ‘저탄소 녹색성장’은 일말의 기대감을 갖게 했다. 하지만 곧이어 발표된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이대통령이 제시한 녹색성장 비전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19개의 환경 및 시민 단체들로 구성된 ‘에너지 시민회의’는 이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환경운동가들이지적하는 내용의 요지는 이렇다.

정부가 2020년까지 전망한 에너지 수요는 51% 증가해 에너지 효율을 아무리 높여도 소비는 지금보다 30%는 더 늘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온실가스 배출량은 2020년까지 지금보다 20%는 더 늘어날 것이다. 유엔의 기후변화당사국회의에서 결정한 온실가스 감축 방안은 1990년에 대비해 2020년에 5.2%이며, 유럽연합(EU)은 25~40%를 제시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1990년에 비해 온실가스가 두 배 넘게 증가했다. 그런데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따르면 2030년에는 지금보다 더 증가할 것이다. 1인당 GDP가 세계 23위이지만, 세계 에너지 소비 10위를 달리고 있는 에너지 다소비 국가인 한국이 ‘저탄소 녹색성장’을 선언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대통령의 ‘녹색성장’ 선언은 앞서 언급한 대로 원자력에 대한 일반 대중의 무뎌진 인식을 바탕으로 원자력을 저탄소 전략으로 왜곡하면서 수십여 기의 핵발전소를 더 지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다. 유럽 사회가 가고 있는 ‘효율성 제고와 친환경 에너지원 공급 확대’가 아닌, 미국 사회가 가고 있는 ‘석유 시장 확보를 토대로 한 기존의 에너지원 확대 유지’에 한 술 더 떠 원자력 확대를 핵심 전략으로 채택하려는 것이다.

▲ 한국 원자력 발전의 효시인 고리원전 1호기. ⓒ연합뉴스

20년 전 체르노빌 사고 벌써 잊었나

필자는 몇 년 전 환경 및 에너지 분야의 운동가들과 함께 ‘녹색 전력 정책’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6개월여 세미나를 했던 적이 있다. 내용은 이렇다. ‘과소비를 조장해온 심야 전력과 산업용 경부하 요금 체계를 정비하는 일, 전체 에너지의 83%에 이르는 건축과 교통 분야의 효율 향상과 대책 마련, 재생에너지 시장 확대’가 그것이다. 세부적으로 가정과 사무실에서 대기전력을 없애자는 제안도 포함되어 있었다. 요는 현재의 에너지 효율이 크게 낙후되어 있으니 이를 개선하고 동시에 풍력과 태양 에너지 등 친환경 에너지의 공급을 확대하면, 더 이상의 핵발전소 건설이 필요하지 않고 온실가스 물질의 배출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내용이다.이대통령의 ‘저탄소 녹색성장’과 녹색 전력 정책이 제시하는 내용은 무늬는 같지만 속은 전혀 다르다.

원자력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20년도 넘은 체르노빌 사고를 언급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은 것 같다. 2006년 국회에서 몇 달간 진행한 ‘핵안전 포럼’에서 체르노빌 핵사고의 영향으로 최근에 인근 벨로루시에서 갑상선암 발생률이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지만, 사회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20년간 문제가 없었다고 반박하는 듯하다.

따라서 전자파 문제를 지적할까 한다. 경남 밀양에서는 벌써 몇 년째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을 둘러싸고 심각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행정구역상으로 울산에 속해 있는 신고리 원전에 사용될 송전선로인데, 무려 76만5천V의 초고압 전기를 흘려 보낼 계획이다. 통상적인 고압선이 12만4천V이고, 큰 것이 36만5천V다. 그 두 배나 되는 전기를 보내니 전자파 발생에 대한 우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전은 괜찮다고 하고 주민들은 세계보건기구(WTO)가 고압선에서 발생하는 전자파를 어린이 발암물질로 규정한 사실을 들며 반대한다.

암이 발생한다고 해도 모두에게 걸리는 것이 아니고, 또 10년 이상 잠복기를 거쳐야 한다는 이야기나 핵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은 벼락 맞아 죽을 확률보다도 낮다는 논리가 주민들 귀에 들어올까. 전자파와 관련해 세계의학회가 주목한 국내 연구진의 연구 결과가 지난해에 저명한 국제 학술지에 발표되었다. 단국대 의대 하미나 교수는 AM라디오 전파를 쏘아 올리는 전국의 31개 송신소 주변에 사는 아이들의 백혈병 발병률을 조사했다. 송신소 반경 2km 이내에 사는 15세 이하의 아이들에게서 20km 밖에 사는 아이들보다 2.15배나 높은 백혈병 발병률이 나타난 것이다. 2천여 명의 소아백혈병 환자의 거주지를 추적해 조사한 것으로, 이 결과는 2007년 6월 미국역학회지에 보고되었다.

원전 1기의 폐쇄 비용이 1조원에 이르고, 고압계통 설비에 2조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24시간 3백65일 계속 돌려야만 하는 원전의 속성 때문에 ‘심야전력’이라는 제도를 도입해 전기 소비를 부추긴 것이 정부와 한전이다. 그런데 이 심야전력이 인기를 끌면서 너도나도 사용하게 되자 이번에는 전기 수요 겨울 피크 현상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다시 값비싼 LNG발전소를 추가로 짓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전기 에너지 과잉 소비를 부추기고 다시 공급을 늘리는 방식을 고집하는 한국의 에너지 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저탄소 녹색성장’은 가능하지 않다. 나아가 원자력을 주요 전략으로 한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은 우리를 ‘핵과 전자파로 둘러싸인 위험 사회’로 몰아갈 수도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