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카’는 서행 경유차는 ‘역주행’
  • 심정택 (자동차산업 전문가) ()
  • 승인 2008.09.09 13: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녹색성장’ 관련 자동차 정책 ‘모순‘ 경유차의 LPG 전환은 온실가스만 늘릴 우려
▲ 일본 도쿄의 한 매장에 전시된 도요타 하이브리드카(왼쪽). 오른쪽은 최근 미국대륙 완주에 성공한 현대ᆞ기아차의 수소 연료전지차. ⓒAP연합 ⓒ현대자동차 제공

지난 8월 광복절 기념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저탄소 녹색성장’을 강조했다. 임기 안에 세계 그린카 산업 4위 진입이라는 구체적 목표도 내놓았다. 청와대는 수년 내 경차 및 그린카 판매량을 전체 신차 시장의 30%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 하에 세제와 메이커 지원 방안을 관련 부처와 협의 중이다. 다만, 이러한 지원책이 현대차그룹의 시장 독과점에 따른 폐해를 심화시킬까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세제에는 구입 및 보유 단계에서의 기존 승용차들과의 차별화, 정부 공무용 차들의 일정 비율 확보 등의 내용이 담길 전망이다. 산업연구원의 용역 보고서들을 기초로 제도 마련을 추진 중이다.

업계에서도 즉각 반응했다. 대통령의 그린카 언급이 있은 사흘 뒤에 현대자동차는 “하이브리드카 개발에 전력해 그린카 4위 진입의 초석이 되겠다”라고 화답했다. 이어 지난 8월25일 지식경제부, 현대자동차, LG화학·SK에너지·SB리모티브 등 배터리 3개사, 자동차부품연구원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용 배터리 공동 개발을 위한 포괄적 업무제휴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는 가정용 전기 등을 이용해 외부에서 충전한 배터리의 전기 동력으로 움직이다가 배터리 방전시 일반 하이브리드카처럼 내연기관 엔진과 배터리의 전기 동력을 동시에 사용해 운행하는 자동차다. 일본보다 10년 이상 늦은 업체 간 공동 개발 착수다. 이번 양해각서 체결로 현대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의 양산 시기를 2015년에서 2013년으로 2년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회사들이 그린카 개발에 나선 계기는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 정부가 제공했다. 1990년 9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내놓은 규제 방안은 자동차 메이커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점점 심화되는 대기오염에 고민하던 ‘캘리포니아 주 대기자원위원회’는 주 내에서 연간 3만대 이상의 자동차를 판매하는 메이커에 대해, 1998년부터 주 내 판매량의 2%에 한해서 배기가스가 전혀 발생하지 않는 자동차를 팔도록 의무화하고, 2003년까지 이 비율을 10%로 높이기로 결정했다.

일본보다 10년 이상 늦은 하이브리드카, 업체 간 공동 개발 착수

이후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은 차세대 차를 개발하면서 배기가스를 줄일 수 있는 여러 가지 형태의 그린카 개발에 나섰다. 전기자동차, 수소연료차, 배기가스 중 분진이 적은 디젤 엔진의 적극적인 개발 등이 이같은 맥락 속에서 이루어졌다.

전기자동차는 엔진 대신에 대형 축전지를 탑재해 모터로 구동해 달리는 방식인데, 1996년에 도요타와 GM이, 1997년부터는 닛산과 혼다가 잇달아 판매하기 시작했으나 거의 팔리지 않았다. 비싼 가격 때문이었다. 도요타의 경우 동일 차종 축전지식 전기자동차의 가격이 가솔린 엔진 탑재 차보다 2.5배 정도 높았다.

1997년 말 도요타는 세계 최초로 하이브리드카 시판에 들어가며 선수를 쳤다. 도요타는 시장 선점을 위해 ‘프리우스’를 독자적으로 개발했지만, 주요 부품은 외부 업체와 협력해서 만들었다. 통상 전기자동차에 탑재하는 축전지는 자동차 메이커가 외부에서 조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도요타는 1995년부터 마쓰시다전지공업과 공동 연구를 시작해 1996년 12월에 합작으로 ‘파나소닉 EV 에너지’를 설립했다.

도요타는 덴소, 아이싱정기 등과 손잡고 연료전지 공동 개발에 착수했다. 도요타가 연료전지분야 등에서 독자 개발에 집착해 양산화가 늦어지면 ‘도요타라 해도 살아남기 어렵다’는 사실을 자각했다는 것이 일본 내의 일반적인 평가다.

흔히 말하는 전기자동차는 전기모터만을 탑재하고 그것을 구동력으로 삼는 것을 지칭한다. 하이브리드카를 비롯해 수소 연료전지 전기자동차도 여기에 속한다. 또, 순수 전기자동차를 위한 에너지가 원자력으로 바뀌거나 태양열을 활용할 수 있다고 해도 구동은 전기차 형태로 한다. 전기자동차 대신 등장한 것이 수소 에너지를 사용하는 연료전지 전기차였다. 연료전지 차는 연료 탱크에 수소를 탑재하고 차 안의 스택을 통해 산소와의 화학 반응을 일으켜 전기를 발생한다. 그렇게 해서 충전된 전기로 구동하는 것이다.

수소를 이용하는 또 하나의 파워트레인은 BMW가 주도하고 있는, 현재의 내연기관을 그대로 사용하는 수소 엔진 자동차다. 하지만 수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발생, 수소 공급을 위한 인프라 구축, 수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고가의 연료전지 시스템 등 복합적인 문제가 대두되면서 실용화에 대한 기대가 많이 줄어든 상황이다.

전기자동차를 휘발유와 함께 사용하고자 하는 아이디어로 등장한 것이 하이브리드카다. 그리고 하이브리드카의 전기모터 기능을 좀더 발전시킨 것이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카’다. 즉, 전기모터만으로 50km 정도 주행할 수 있어 시내 주행시에는 EV모드로 가고, 장거리 주행시에는 내연기관 엔진으로 구동한다고 하는 원리다. 내연기관은 물론 구동 기관으로서의 역할과 충전을 동시에 수행한다.

결과적으로 전기모터를 주 구동 장치로 하고 내연기관은 보조 장치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시스템과는 개념이 다르다. 일단 현대차가 내년에 내놓을 양산 그린카는 LPG 하이브리드(아반떼)로 내수용이다. LPG 엔진을 쓰는 나라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2010년 출시될 예정인 쏘나타 하이브리드는 관련 특허를 독점하다시피 하는 도요타 방식을 피해 개발하고 있다. 쏘나타의 경우 가솔린 모델과 LPG 모델 전부에 하이브리드를 적용한다. 또 연료전지 차도 2012년 양산을 목표로 조기 실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고효율 ‘그린카’ 개발해야

하이브리드카가 세계 자동차업계의 궁극적 화두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이 친환경·고효율 차의 전부는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연비를 좋게 하는 것이 그린카’라는 것이다. 가령 현대차는 동급 도요타 차보다 무거워 연비가 10∼20% 떨어진다는 평을 듣는다.

유럽 업체들은 친환경 디젤차에 집중한다. 벤츠·아우디·폴크스바겐·푸조의 경우 가솔린 엔진보다 조용하고 배기가스가 적으며, 연비는 하이브리드카보다 뛰어난 디젤 개발에 전념한다. 미국·일본·유럽은 전기차 개발과 보급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반면, 우리는 안전 기준을 문제 삼아 전기차가 일반 도로에 진입하는 것 자체를 법으로 금지한다. 말로는 지원한다고 하면서 법으로 개발을 금지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의 경유차 정책은 친환경·고효율의 잣대로 본다면 명백한 역주행이다. 2004년부터 정부는 대기 환경을 개선한다며 대당 4백만원을 지원해 경유차를 액화석유가스(LPG) 차로 바꾸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는 한마디로 혈세를 들여 연료를 더 쓰고 온실가스 배출을 늘린 꼴이다. LPG차는 경유차에 비해 연비는 낮고, 이산화탄소는 더 많이 배출하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계도 친환경에서 일탈하기는 마찬가지다.

정부의 가격 정책 실패로 경유 값이 치솟자 업체들은 경유차를 휘발유차로 바꾸어 팔기에 바쁘다. 경유가 휘발유에 비해 열량이 10% 이상 높고 연비도 최고 30% 우수한 점을 감안한다면 업계는 에너지 효율을 끌어내리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녹색성장을 외치고, 자동차업계는 친환경 자동차 청사진을 내놓고 있으나 실제 정부의 정책과 업계의 판매 전략은 거꾸로인 셈이다.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도록 환경친화적이고 에너지 효율도 높은 자동차를 개발하지 못한다면, 우리 자동차 산업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