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만 남긴 ‘그 여름의 MT’
  • 파리·최정민 통신원 ()
  • 승인 2008.09.09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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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정당’ 못 벗어나는 프랑스 사회당, 당 연수도 허사 … 당 서기장 선출 놓고 내분 깊어져
▲ 2007년 대선 직전 열린 사회당 후원 행사에서 세골렌 루아얄 당시 대통령 후보(앞줄 맨 왼쪽)와 베르트랑 들라노에 파리 시장이 나란히 서 있다. ⓒ로이터  

프랑스의 여름 바캉스는 길기로 유명하다. 기본이 4주다. 대통령부터 장관들까지 심지어 저녁 뉴스의 간판 앵커들까지 바캉스를 떠난다. 도시의 대중교통 편수가 줄어드는 것은 기본이며, 텔레비전도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뜸해진다. 이러한 바캉스 기간을 이용해서 프랑스의 각 정당들은 ‘하계 연수회’를 갖는다. 일종의 MT 형식으로 3일에서 4일에 걸쳐 열띤 토론을 하고 조직을 재정비한다.

프랑스 사회당은 매년 ‘하계 연수’를 서해안 라 로셀에서 치른다. 이번 연수의 포인트는 안으로는 어떻게 당을 재정비하고 11월 당 서기장 선출의 구도를 가늠할 것인가, 외부적으로는 그동안 줄곧 식물 인간 상태라는 비판을 받아온 사회당을 어떻게 일으켜 세울 수 있는가였다. 4천여 명의 당원이 참석한 이번 연수는 겉으로는 성공한 것처럼 보였으나 내용 면에서는 그간 예상되어온 차이만을 다시 확인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누가 나서서 말하지 않았지만, 사분오열된 당을 어떻게 정비할 것인가가 사회당이 안고 있는 최대 고민거리였다. 프랑스 우파 일간지 르 피가로는 이러한 상황을 ‘통치 불가’라고 꼬집었다. 한마디로 앞으로도 조직 정비가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한목소리를 내려고 했지만, 이것이 겨우겨우 끌어온 형국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처럼 사회당이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데는 지금까지 사회당을 끌어온 프랑수아 올랑드 현 서기장의 우유부단함이 한몫을 하고 있다.

2002년 죠스팽 후보의 대통령 선거 결선 진출 실패라는 전대미문의 참패 이후 혼란에 빠진 당을 맡은 그는 ‘안정적 관리형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은 것이 사실이었으나, 그 이후 카리스마 부족으로 인해 당 분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그가 이제 임기를 2개월 남긴 시점에서 이번 행사의 마지막 연사로서 그간의 성과를 자평하는 것을 두고 좌파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라며 비꼬았다.

지금의 사회당 주역인 스타들을 일군 것은 다름 아닌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이었다. 전제 군주를 연상시켰던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미테랑은 현재 사회당에 포진한 모든 인사를 발탁했다. 현 프랑수아 올랑드 서기장은 당시 청년회 간부였고, 당시 세골렌은 가족부장관으로 입문했다. 로랑 파비우스는 최연소 총리로 발탁되었으며, 좌우를 막론하고 역대 최고의 문화부장관이라고 칭송받는 자크 랑은 미테랑과 모든 문화 사업을 일구었다. 35시간 노동제를 관철시킨 마틴 오브리는 미테랑 내각에서 요직을 거치며 행정 역량을 쌓았다.

들라노에 파리 시장, 서기장 출마 공식 발표

그러나 미테랑이 떠난 이후 이들은 죠스팽 정부에서 일하면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겉으로는 죠스팽의 실패로 인해 중앙 정치에서 밀려난 것이 주된 요인이었으나 그와 함께 대변되는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별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한 것이 한계였다.

이러한 사회당의 부진에 적지 않은 힘을 실어주었던 것은 다름 아닌 세골렌의 등장이었다. 그녀는 쟌다르크를 연상시키며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라는 이미지와 함께 사르코지의 대항마로서 사회당의 입지를 다지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당내의 화합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러한 구도는 지금까지 계속되어 세골렌은 사회당의 구세주인 동시에 당을 쪼갤 수도 있는 인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번 연수에서 가시화된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그동안 끊임없이 시기를 살펴왔던 베르트랑 들라노에 현 파리 시장이 총서기장 선거에 출마할 것이라고 발표한 사실이다. 이미 예견되었지만, 이는 앞으로의 선거 구도가 세골렌과 베르트랑의 양자 대결로 압축될 것임을 의미한다. 물론 변수는 있다. 현 릴 시장이며 국민적 인지도나 행정 능력이 탁월한 마틴 오브리의 출마 여부와 기타 군소 후보들의 합종연횡이다.

일단 세골렌의 행보는 철저히 개혁적이다. 이미 지난 대선에서부터 기존 사회당의 스타들을 껴안는 것을 거부해온 그녀는 이번에도 노골적으로 사회당의 환골탈태를 주장했다. 그녀는 이번 모임의 연설에서 “서로 사랑하라. 그렇지 않으려면 사라져라”라는 쥴리엣트 그레코의 샹송 가사를 인용하며 화합을 강조했으나, 그 속내에는 철저히 당을 뒤집겠다는 복안이 깔려 있다.

이러한 그녀의 의중을 측근이자 사회당의 유럽 연합 의원인 뱅상 뻬이용 의원이 지난 9월2일 <라디오 프랑스>와의 인터뷰에서 직설적으로 털어놓았다. 그는 다음 대선에서의 승리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나는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만약 25년간 사회당을 지켜온 유해한 인사들이 조용히 퇴장한다면 가능하다”라며 기존 멤버들을 정조준했다. 아울러 뻬이용 의원은 “나는 2002년 죠스팽의 실패 이후 올랑드를 떠났다. 나는 과거 인사들에 대한 정리를 조언했지만 올랑드는 결국, 과거 인사들과의 연계를 지속했다. 결과는 어떠했는가? 그들은 서로 죽이고 있다. 이제 진정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정치 세기를 열어야 할 때다”라고 강조했다. 뻬이용 의원은 철학 교수 출신으로 죠스팽의 정책에 관심을 갖게 되어 정계에 입문한 인물이다.

구 세력 배척하려는 세골렌, 당 지지도에서 앞서

들라노에의 행보는 사뭇 다르다. 전국적 인지도와 현재 당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받고 있는 세골렌에 맞서기 위해 들라노에에게 필요한 것은 마틴 오브리와 파비우스를 비롯해 죠스팽 전 총리까지 포괄하는 기존 인사들의 지지다. 이러한 연대가 가능할 경우 들라노에는 싸울 만하다. 이러한 그의 복안을 놓고 이미 파비우스 쪽에서는 다음 대선에 출마하지 않는다면 지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파리 시장으로서 재선에 성공하고 벨리브(자전거 대여 시스템) 및 파리 쁠라쥬, 백야 축제, 박물관의 밤 행사 등 굵직굵직한 행사를 숨가쁘게 치러내며 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들라노에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당내 지지도에서는 세골렌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이미 지난 대선에서 세골렌은 중도 우파인 베이루측을 끌어안으려고 했으나 정작 사회당 내부의 죠스팽과는 손을 잡으려 하지 않았다. 당시 사회당 주변에서는 죠스팽을 끌어들이려는 올랑드의 시도에 대해 세골렌이 철저히 반대했다는 설이 파다했다. 따라서 오는 11월 서기장 선출 이후 어떠한 형식으로든 사회당의 화합은 물 건너가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사회당의 정책연구소 소장인 베르구니우 소장은 대선의 추이에 대해 여당이 얼마나 화합하느냐에 따라 선거 결과가 판가름 날 것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당시 우파 여당에서는 사르코지와 드빌팡의 각축이 한창이었다. 결국 집권 여당은 갈라지지 않았고, 대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반대로 사회당은 예상치 않았던 사분오열로 가라앉고 말았다. 거시적 좌우 대결에서 대안의 부재라는 난제를 풀지 못하는 사회당으로서는 어쩌면 대안 찾기 이전에 내부 수습부터 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정책적 발전을 위한 끊임없는 재고와 세포분열 와중에 당 자체가 분열되고 만 것이다. 해답을 찾으려 했던 이번 하계 연수는 현재 사회당이라는 환자의 상태만 확인한 셈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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