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발견만이 수술 피하는 길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8.09.09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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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마티스 관절염, 2~3개 약물 조합해 장기 복용해야 … 재활 치료도 중요해

류마티스 관절염은 ‘나쁜 기운이 흐른다’는 뜻을 가진 고대 그리스어 류마(rheuma)에서 유래했다. 아직까지 발병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면역체계에 이상이 생겨 발병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즉 외부에서 우리 몸 안에 침투한 적군인 세균을공격해야 할 백혈구들이 거꾸로 아군인 우리 몸을 공격해 발병한다.

국내 환자 수는 전 국민의 1% 정도인 40만~50만명으로 추산된다. 특히 여성이 이 질환을 앓을 가능성은 남성보다 3배나 높다. 우리나라는 1987년 미국 류마티스 학회가 발표한 류마티스 관절염 진단 기준에 따라 진단한다. 즉 몇 개의 관절이 붓거나 아프고, 양쪽이 함께 아프거나 아침에 관절이 뻣뻣한 정도가 약 1시간 이상 지속될 때 류마티스 관절염을 의심한다. 류마티스 결절이라고 하는 혹 같은 것이 몸에 돋아나거나, 엑스레이 사진 상으로 관절이 망가진 소견이 보이고, 혈액검사에서 류마티스 인자라고 하는 항체가 검출될 때도 마찬가지다.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판정이 되면 약물, 수술, 재활 치료 등을 받는다.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는 관절 통증과 변형, 기능의 소실을 억제하는 것이다. 처음 발병 후 1~3년 내에 관절이 손상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조기에 발견해 약물로 치료하는 것이 가장효과적이다. 이때 사용하는 약물로는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제(진통·소염제)가 있다. 이 약물은 시중에 출시된 제품만 수십 가지가 넘으며 통증과 염증을 줄여준다. 그러나 이 약물만으로는 병의 진행을 막지 못하며, 장기간 복용할 경우 속쓰림, 위출혈 등 위장질환을 일으킬 위험성이 있다.

약물 부작용 의심되면 정기적으로 관찰을

스테로이드제(부신피질 호르몬제)는 강력한 염증에 효과적이지만 역시 장기간 투여하면 골다공증, 고혈압 등의 부작용을 일으킨다. 항류마티스제는 면역 기능을 억제하거나 조절해 염증의 진행 과정을 억제하거나 완화한다. 1~6개월 지나서야 효과가 나타나며, 부작용이 심하고 효능에 한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개발된 TNF억제제는 관절 염증을 유발하는 종양 괴사인자(TNF-α)의 작용을 억제해 염증 악화를 막는다. 기존 약물로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중증 환자에게 좋은 효과를 보인다. 현재까지 개발된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 약물의 경우 한 가지로는 치료 효과가 확실하지 않아 2~3개 약물을 조합해서 사용한다. 또 약물의 부작용이 의심되는 만큼 장기간 투여할 경우에는 부작용 여부를 정기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약물 치료에 효과가 없거나 관절을 싸고 있는 활액막의 증식과 비대가 심해지면 수술을 고려할 수 있다. 특히 지속적으로 관절이 부어 있고 관절 연골 파괴나 변형이 생기면 수술을 받아야 한다.류마티스 관절염 부위에 관절경을 삽입해서 관절을 싸고 있는 활액막을 제거하거나 관절 연골을 제거한다. 관절 파괴가 심하고 관절 강직, 관절 구축 등으로 관절을 제대로 쓸 수 없는 경우 파괴된 관절을 제거하고 인공 관절을 삽입하는 인공 관절 삽입술도 최근 많이 시행되고 있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만성 질환으로 치료가 쉽지 않은 질환이므로 약물치료와 수술 치료 이외 재활 치료도 중요하다. 전문 간호사, 물리치료사,정신상담치료사 등으로 구성된 팀에게 종합적인 치료를 받아야 효과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재활 치료에는 수치료, 물리 치료, 전기 치료,수영, 온천목욕, 지압, 근육 강화 운동, 관절 강직 방지 운동 및 관절 변형 방지 운동, 보조기 요법 등이 있다.

임신하면 증세 호전되는 것은 호르몬 변화 때문

류마티스 관절염에 걸린 여성이 임신하면 대부분 증세가 호전된다. 태반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호르몬과 체내 호르몬의 변화 때문이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평상시 복용하던 약물을 최소한 3개월 이전부터 끊고 임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간 동안 통증이 심하면 의사의 처방으로 호르몬제 등을 투약할 수 있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대개 여러 군데 관절의 좌우 양쪽에 나타나며 6주 이상 오래 지속되는 데 반해, 재발성 류마티스 관절염은 대개 한두군데에 생기며 여러 군데에 생기더라도 돌아가면서 나타난다. 이후 수주일에서 몇 년 동안 증상이 없다가 갑자기 다시 나타나 재발성 류마티스 관절염이라는 병명이 붙었다.

관절 주위가 갑자기 아프면서 빨갛게 부어오르고 만져보면 따뜻한 느낌이 있다. 통증은 잘 느끼지 못하거나 느끼더라도 대개 2~3일 지나면 없어진다. 수십 년이 지나도 류마티스 관절염처럼 관절에 변형이 생기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이 질환은 외국의 경우에는 여성에게 자주 발생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남성에게서 더 자주 발생한다. 재발성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의 30~40%는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류마티스라는 용어가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류마티스 관절염은 일종의 통증으로만 인식했다. 적당한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치료도 거의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1992년 전문의 제도가 생기면서 류마티스 치료에 대한 체계가 잡히기 시작했다. 비록 다른 질환보다 늦게 알려졌지만 치료 수준은 급성장했다. 특히 젊은 의사들의 의료 정보나 기술 습득 속도가 날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외국에서 나오는 연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의 치료 수준이 일본에 이어 아시아 2위 정도로 평가된다. 미국이나 유럽 여러 나라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연구 결과를 내고 있다.


▲ 손으로 컵도 잡지 못했던 김영희씨가 화분에 물을 줄 수 있게 된 것은 꾸준한 치료의 결과다.

경기도 성남시에 사는 김영희씨(55ㆍ여)는 약 35년 동안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류마티스 관절염에 걸렸다. 당시에는 뾰족한 치료법이 없어 진통제로 간신히 버텨오다가 최근 치료제가 개발되면서 건강한 생활을 되찾았다. 김씨는 “온몸 관절이 쑤시고 40℃가 넘는 고열이 났다. 처음에는 몸살인 줄 알았다. 증세가 계속되어 일반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는데 그냥 신경통이라고 했다. 신경통 약을 먹어도 증세가 호전되지 않았다. 결석을 밥 먹듯이 하며 학교도 겨우 졸업했다. 그 후 서울대병원에서 진단한 결과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판정받았다. 그때만 해도 류마티스 관절염이라는 말이 없었던 시절이어서 뾰족한 치료법도 없었다”라며 고통스러웠던 당시를 회상했다.

류마티스에 대한 정보조차 없었던 시절이라서 용하다는 민간요법은 다 써보았다. 김씨는 “고양이부터 뱀까지 안 먹어본 것이 없고 침이나 뜸도 써보았으나 그때뿐이었다. 뒤늦게 깨달았지만 질환의 원인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치료제가 없고 완치보다는 염증 억제에 목표를 두고 꾸준히 치료하는 것이 최선의 치료라는 사실을 알았다”라고 설명했다. 결혼 후 출산으로 증세가 급격히 나빠졌다. 체내 호르몬 균형이 임신과 출산으로 깨진 것이다. 김씨는 “병원에서도 증세가 더욱 심해질 테니까 출산을 말리기까지 했다.

역시 출산 후 통증은 정말 참기 힘들 정도로 심해졌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낳은 아이를 안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팔 관절이 굳어졌다. 출산 후 3년째에 손가락과 손목 관절에 변형이 생겼다. 고열로 쓰러져 병원 응급실로 실려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자신이 가족까지 힘들게 한다는 생각이 고통을 배가시켰다. 김씨는 “암은 죽으면 끝난다. 하지만 이 병은 죽지도 못하고 평생을 고통스럽게 살아야 한다. 그런 생각에 쌓이다 보니 잠 못 이룬 날이 많았다”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1990년 어느 날 우연히 류마티스 관절염에 대한 신문 칼럼을 보았다. 김씨는 “실낱같은 희망이 생겼다. 김호연 강남성모병원 내과 교수가 쓴 칼럼이었다. 망설일 것도 없이 김교수를 찾아 지금까지 그에게서 치료받고 있다”라고 말했다.면역억제제를 쓰면서 치료를 받았다. 빠른 회복을 기대할 수는 없었지만,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증세가 완화되었다. 김씨는 “현재 아침 저녁으로 약을 먹고 1주일에 한 번 주사도 맞는다. 물통 뚜껑도 잘 열지 못할 정도여서 정상인보다는 살기가 불편하다. 그러나 적극적인 치료 덕에 예전에 하지 못했던 일을 하며 살고 있다. 운동은 상상도 못했지만, 지금은 골프도 칠만큼 활력이 넘친다”라고 했다.

쪼그려서 걸레질을 하거나 일부 동작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조금만 힘을 빼면 컵을 떨어뜨려 깨기도 한다.그렇지만 과거에 비하면 이런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김씨는 “병이 너무 고통스럽고 오랜 기간 지속되니까 환자가 스스로 치료제를 찾기도 하고 용량을 무리하게 늘려 사용하기도 한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의사를 믿어야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을 꼭 알리고 싶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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