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색조 같은 재즈 ‘고전’의 향기난다
  • 김현준 (재즈 비평가) ()
  • 승인 2008.09.09 14:4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평 국제 재즈 페스티벌 / 현대 재즈의 다양성 즐길 기회

▲ 존 애버크롬비는 독일 ECM 레이블을 통해 현대 클래식 음악의 어법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우연히 모인 사람들 중 누군가 음악에 대해 말문을 연다. 또 다른 하나가 불쑥 이렇게 묻는다, 재즈를 좋아하냐고. 호불호를 얘기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한 발짝 깊이 들어가보면 이는 참으로 난감한 질문이다. 적확하게 말하면, ‘어떤 스타일의 재즈를 좋아하는지’ 묻는 것이 옳다. 재즈는 이미 100년의 역사를 헤아리며 표현으로 구분되는 장르만 해도 서른 가지를 넘나든다.

중요한 사실은 그 모든 스타일이 각각 다른 지향을 갖고 있어서 정서적으로 변별력을 갖는다는 점이다. 지금 연주되는 재즈를 크게 현대 재즈로 총칭할 수 있겠지만, 이 또한 너무 넓어서 한두 마디로 그 특성을 정리하기가 불가능하다.

오는 10월 초, 경기도 가평의 <자라섬 국제재즈 페스티벌>에 초청된 세 연주자의 음악을 바탕으로 현대재즈의 다양성을 짚어보자. 주인공은 피아니스트 오마르 소사(Omar Sosa,1965~)와 기타리스트 존 애버크롬비(JohnAbercrombie, 1944~) 그리고 색소포니스트 조 로바노(Joe Lovano, 1952~)다. 오마르 소사와 조 로바노는 국내 초연이며, 존 애버크롬비는 지난 2002년에 이어 두 번째 내한이다.

애초에 재즈는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에 살던 사람들의 음악으로 출발했다. 어느 나라, 혹은 민족의 음악성을 대변하는 스타일이 있는 것처럼, 재즈 또한 전세계로 퍼져나가기 전에는 단지 한 지역공동체의 음악 양식이었다. 그러나 연주자의 저변이 넓어지고 미학적인 발전을 거듭하면서 재즈는 점차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쪽으로 변모했다. 어떤 곡을 다루든, 연주의 주체가 누구인지 중요하게 대두되었다는 얘기다. 같은 맥락에서 민족의 개념을 도입하면 현대 재즈의 중심 축 하나를 이해할 수 있다.

어느덧 재즈는 세계의 어법이 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일련의 재즈 연주자들은 그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작곡과 연주에 접목하기 시작했다. 물론 모든 재즈가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제3세계에 대한 관심과 함께 월드 뮤직이 음악계의 화두로 자리하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 이 경향은 더욱 두드러졌다. 쿠바 출신의 피아니스트 오마르 소사 역시 마찬가지다.

▲ 오마르 소사는 라틴 재즈에 아프리칸 리듬과 유럽의 정서를 교배하고 있다.

전세계로 퍼져나가면서 색깔 달라져

쿠바는 1967년의 사회주의 혁명 이전부터중남미 음악의 보고이자 당시까지 존재했던 모든 재즈 스타일이 재현되던 문화 강국이었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재즈가 지금도 음악대학에서 교육된다는 것이 흥미롭지만, 이는 쿠바 국민이 야구를 국기로 여긴다는 사실과 비슷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오마르 소사는 고국에서 재즈를 익힌 뒤 오래도록 음악 선생으로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리듬에 대한 이해가 깊었던 그는 재즈 연주자의꿈을 버리지 못했고, 1995년 미국으로 망명해 샌프란시스코에 자리를 잡아 라틴재즈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1999년 다시 스페인으로 이주하며 음악 세계를 넓힐 수 있었다. 그의 연주 속에는 재즈와 중남미 음악, 그리고 아프리카의 리듬과 유럽클래식 음악의 정서가 혼재되어 있다. 전통적인 재즈의 흔적을 찾는 노력보다 그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태어난 독창적인 정서를 맛볼 기회가 되겠다. 기본적으로 피아노 연주는 화려한 비르투오소의 면모를 띤다.

현대 클래식 음악을 듣다 보면 1940년대를 전후해 적지 않은 작곡가들이 재즈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그 반대의 움직임도 꾸준히 진행되었다. 하긴, 동시대의 음악이니 그럴 법한 일이었겠다. 방법론적으로 클래식 음악이 리듬이나 화성 같은 재즈의 음악적 어법에 관심을 보였다면, 재즈는 현대 클래식 음악을 좀더 본질적으로 도입했다. 이런노력이 처음 뜻 깊은 결과물을 선보인 때는1950년대였지만, 1980년대에 이르러 드디어 눈부신 성과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우리가 현대 클래식 음악의 패러다임을 함께 인지하고 있다면 비로소 현대 재즈의 큰 줄기를 올곧게 파악할 수 있다. 존 애버크롬비의 기타 연주를 통해 엿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런 특성이다. 1970년대부터 독일의 ECM 레이블을 통해 많은 걸작들을 발표해온 그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젊은 기타리스트들에게도 음악적으로 크나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 중 하나다. 재즈
팬들의 환호가 이어질 것이다.

▲ 미국 시골출신인 조 로바노는 전통을 충실히 발전시키고 있다.

1940년대 전후부터 작곡가들이 재즈에 관심

물론 그가 처음부터 다른 음악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아니었다. 뉴욕 주에서 태어나 재즈의 전통적인 어법을 익히는 데 젊은 시절을 투자했고, 프로 연주자의 길을 걸을 무렵 독창성 획득을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기타 톤은 단 한 개의 음정만 들어도 그의 것임을 직감케 할 만큼 독특하다. 이는 새로운 음색과 소리의 조합을 찾기 위한 노력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켜켜이 쌓여 있던 현대 클래식 음악의 제시와 성과를 좀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그가 클래식 음악을 연주한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20세기 중반 클래식의 여러 작곡가들이 수백 년의 전통을 넘어설 수 있는 또 다른 영역의 음악을 갈구했듯이, 존 애버크롬비도 복합적인 음색과 이미지의 기타 연주를 찾아내고자 했다. 우리는 현대 재즈의 상징적 모델로 1960년대 중반에 이른 이 명인의 연주를 손꼽는다. 그는 재즈가 한 곳에 머무르지 말아야 함을 몸소 증명했다.

재즈는 박물관의 화석이 아니다. 재즈는 이미 고전의 향기를 풍기고 있다. 특히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연주된 수많은 거장들의 음악은 어느 자리에서든 교과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으며, 초심자에서 마니아에이르기까지 절대적 지지를 받는다. 예컨대 듀크 엘링턴의 작곡은 지금도 학자들로 하여금 많은 연구 논문을 쓰게 하며, 찰리 파커의 영향을 받지 않은 색소포니스트가 없을 정도로 그 그림자는 짙게 드리워져 있다. 바로 이런 인물의 음악이 이른바 재즈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형성했다. 색소포니스트 조 로바노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바로 여기에 귀착된다.

비록 그가 새로운 스타일의 연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그의 연주와 풍성한 톤은 재즈에서만 만날 수 있는 옹골찬 소리로 가득하다. 일반적으로 재즈를 얘기하며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악기가 바로 색소폰일 텐데, 그는 이 악기를 통해 맛볼수 있는 매력을 모두 갖추었다.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태어난 조 로바노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재즈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 오른 무대 또한 아버지의 밴드와 함께한 것이었다. 이미 10대 때부터 탄탄한 실전경험을 쌓은 그는, 20대 초반의 나이에 많은 선배들의 관심과 애정을 받았다. 어느 자리에서든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믿음직한 젊은이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막상 자신의 이름을 걸고 리더급의 연주자로 발돋움한 것은 서른을넘겨서의 일이다.

하지만 이때부터 그의 행보는 거칠 것이 없었다. 레코드 레이블들은 앞다퉈 그의 작품을 제작하려 했고, 재즈가 연주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예외 없이 그의 공연이 마련되었다. 조 로바노의 색소폰 연주는 과거의명인들이 선보인 장점들을 모두 아우른다. 현재 그는, 아버지와 여러 선배들이 베풀어주었던 것처럼 여러 후배들을 이끌며 이 시대의 진정한 스승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가 하는 일이모두 타당하다고 느껴질 만큼, 조 로바노는 신뢰의 대명사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