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 막을라
  • 김덕원 (연세대 의대 의학공학과 교수) ()
  • 승인 2008.09.23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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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유해성 연구, 선진국에 비해 미미한 수준 범정부 차원에서 연구 지원 환경 만들어야
▲ 전자파와 관련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한 연구원이 어린이들의 전자파 노출량을 평가하고 있다. ⓒ뉴시스

전세계적으로 휴대전화 사용자 수는 14억명에 달하고 있으며 이 숫자는 계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담배, 석면, 다이옥신 등은 처음에는 그 유해성이 밝혀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 발암 인자가 나오면서 그동안 수많은 사람이 노출되어 각종 암에 걸린 것으로 추정되었다. 석면의 경우 노출된 지 30년 후에 발암 가능성이 최고조에 달한다고 한다. 휴대전화의 전자파도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같은 이유로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최근 전자파에 대해 사전주의 법칙(precautionary principle)을 각국의 실정에 맞게 적용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사전주의 원칙은 강한 유해성에 대한 증거가 밝혀지기 전에 행동을 취할 필요가 있는 과학적 불확실성에 적용하는 위험 관리의 한 방법이다. 사전주의 원칙은 1992년 유럽연합(EU)과 유엔의 국제법에서 언급되었으며, 유럽 환경법(2000년)의 기초가 되었다.

또한, 이러한 원칙은 2003년 캐나다 국법과 2006년 이스라엘 국법에도 명시되었다. 약 10년 전까지는 출력이 강한 아날로그 휴대전화에서 방출되는 초고주파인 마이크로파에 머리가 노출될 경우 뇌조직의 온도가 1℃ 이상 상승하면 인체에 유해하다는 열적 효과에 대한 연구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아날로그보다 출력이 약해 열적 효과가 약한 디지털 휴대전화의 자율신경계 자극에 의한 여러 유해 가능성이 있는 비열적 효과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같은 발암 인자에 노출되더라도 면역체계가 덜 발달된 유소년에 더 유해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흡연의 폐해와 비슷한 경우이다. WHO에서는 2003년 가장 시급한 연구 과제의 하나로 휴대전화 전자파가 청소년의 인지 능력, 두통 및 수면에 미치는 영향을 들었다.

▲ 전자파 노출을 막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이어폰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시사저널 황문성

미래를 내다본 다각적 연구 필요

미국의 휴대전화 회사는 1993년 조지 칼로스 박사에게 2천5백만 달러의 연구비를 지원하면서 휴대전화 전자파의 인체 무해성을 증명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1996년 중간 보고서 내용에 DNA 손상, 유전자 변이, 혈액 뇌장벽(BBB: blood brain barrier)의 파괴 및 14건의 역학 연구에 의한 뇌종양 증가 가능성이 드러나자 지원을 중단시킨 바 있다. 이와 더불어 많은 수의 소송이 제기되었는데 한 건을 제외하고 모두 원고가 패소했다. 그 이유는 뇌종양 유발과 전자파 사이의 관련성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희박하기 때문이었다. 승소한 한 건은 휴대전화 단말기 제조회사에서 휴대전화를 테스트하던 직원이 안테나가 닿는 부위에 뇌종양이 유발되었다고 노동 심판소에 제소해 승소한 경우이다.

칼로스 박사는 이어폰 사용을 적극 권장하면서 허리띠나 바지 주머니에 휴대전화를 휴대하지 말 것을 권장했는데, 그 이유를 적혈구를 생산하는 척추나 대퇴골과 가깝게 위치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한, 미 육군에서는 통신병들이 사용하는 무전기의 강한 전자파를 차폐 또는 감소할 수 있는 방법을 대학 연구소에 은밀하게 의뢰해 성공적으로 개발했으나 무슨 이유인지 중간에 연구를 중단시켰다. 칼로스 박사는 뇌종양 같은 암은 적어도 잠복기가 10년 이상으로 앞으로 휴대전화 전자파에 의한 암 유발률이 계속 증가할 것이며, 문제의 심각성은 휴대전화 사용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국내에서의 휴대전화 전자파의 인체 영향에 대한 연구는 10여 년 전부터 정보통신부(방송통신위원회 전신)가 단편적으로 지원을 해왔다. IT 강국이며 전세계적인 휴대전화 단말기 수출국인 한국에서의 전자파 인체 영향 연구 규모는 미국, 유럽 등에 비하면 부끄러운 수준으로 휴대전화 소송이 미국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증가할 것에 대비해 국내 제조업체들도 만반의 준비를 해두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체 영향 연구는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GSM(Gloval System for Mobile Communication)에 대한 것이지 우리나라가 사용하는 CDMA(Code Division Multiple Access)에 관한 것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에 착안해 2006년 미국 생체전자파학회(Bioelectromagnetics) 저널에 CDMA 전자파가 청소년들의 자율신경계를 자극해 손바닥의 땀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스위스 학자 뤼스의 최근 논문에 따르면 스위스 국민은 전자파 때문에 불면(58%), 두통(41%), 불안감(19%), 피로(18%), 집중력 부족(17%) 등을 호소했고, 스웨덴 인구의 1.5%, 캘리포니아 주민의 3.2%, 영국민의 4%, 스위스 국민의 5%, 독일 국민의 8~10%가 이러한 전자파 민감성(Electromagnetic Hyper-sensitivity)을 호소했다.

또한 그 원인으로는 휴대전화 기지국(74%), 휴대전화(36%), 무선전화기(29%)와 송전 선로(27%)를 꼽았다. 필자도 휴대전화 전자파에 민감한 사람들이 실제로 전자파에 노출되었을 때에 생리적 변화가 일어나는지와 전자파를 실제로 느낄 수 있는가에 대한 논문을 미국 생체전자파학회지에 제출해 현재 교정 과정을 진행 중인데, 객관적 연구를 위해 외부의 연구비 없이 진행했다.

CDMA 환경에 대한 연구 늘려야

현 단계에서 과학적으로 휴대전화의 전자파가 당장 인체에 유해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확실하게 무해하다는 연구 결과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 좋은 해답은 WHO에서 권고한 사전주의 법칙이다. 가능한 한 국민은 이어폰 등을 사용해 노출을 줄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며, 제조업체들은 유해 가능성을 사용자들에게 알리고 그와 동시에 이에 대한 연구를 범정부 차원에서 지원하되 연구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제조업체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천문학적인 징벌적 손해배상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니 유해성 인정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과학이 놀라운 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여러 사회적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컴퓨터 통신의 무선화, 무선 인식 장치, 유전자 변형 농산물, X선 살균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새로운 방법 또는 기기들이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으나 그것들의 인체 안전성에 대한 연구는 극히 제한적이다. 그중 하나라도 10년 후에 유해성이 증명된다면 그 후유증은 담배, 석면, 다이옥신 등의 유해성을 능가하는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현 단계에서 과학적으로 휴대전화의 전자파가 당장 인체에 유해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확실하게 무해하다는 연구 결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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