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가루 집안’에서 박근혜만 큰다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8.09.23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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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이상득ᆞ이재오ᆞ정두언 힘겨루며 화합 못 이뤄내 … 박 전 대표는 날로 세력 넓히는 중
▲ 9월18일 오후 박근혜 전 대표가 국회본회의를 마치고 국회를 나서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지금 여권은 정치 권력의 진공 상태에 있다. 힘의 중심이 없다. 박근혜계는 제쳐놓고 여권 주류만 놓고 볼 때 공식적인 직책을 갖고 있지 않은 ‘그림자 권력’과 공식적인 직책을 가진 ‘대리 권력’이 공존하는 혼돈 상황이다.

‘그림자 권력’은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과 미국에 유학 중인 이재오 전 의원 그리고 이대통령 직계 소장파의 대표격인 정두언 의원으로 상징된다. ‘대리 권력’은 이의원 등 여권 내 원로 그룹의 힘을 업은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와 범이명박계의 지원에 힘입어 원내대표가 된 홍준표 의원, 이재오계로 통하는 안경률 한나라당 사무총장이라고 할 수있다.

‘그림자 권력’은 힘의 실체이다. 그러나 이들은 전면에 나서 있지 않다. 그러면서도 움직인다. 민주당이 추경 예산안 처리를 둘러싸고 ‘이상득 배후설’을 제기했을 정도로 웬만한 사안에는 늘 ‘이상득’이 거론되는 것이 한 예이다. 이의원은 어떤 경우에는 실제보다 더 큰 힘을 갖고 있는 ‘정치 권력의 핵’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의원의 막후에는 청와대가 있다.

이재오 전 의원은 미국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른바 ‘전화 정치’를 한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현실이 이렇다. 정두언 의원은 침묵하고 있지만 정태근·김용태 의원 등 소장파와 교감하고 있다.

‘대리 권력’에는 독자적인 힘이 없다. 한때 언론에서 이들을 거론해 ‘신실세’라고 불렀지만, 지금 그렇게 말하는 이들은 없다. 홍준표 원내대표가 “나는 계보도 없고 세력도 없다”라고 실토한 것이 현실을 보여준다. 말 그대로 ‘대리 권력’이다 보니 충돌이 잦다. 조율되지 않은 의견이 밖으로 표출되어 갈등을 일으키며 혼란을 불러온다. 결정권이 약하니 “청와대에 휘둘린다”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올 수밖에 없다.

국정감사 끝나면 여권 내에 새로운 변화 일어날 가능성

‘그림자 권력’과 ‘대리 권력’이라는 기형적인 이중 구조 속에서 ‘그림자권력’의 실세들 간에도 화합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상득 의원은 자신에 대해 공세를 펴는 정두언 의원을 포용하려고 하나 정의원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정의원은 ‘이상득·최시중 등 원로 그룹의 퇴진’이 이명박 정권의 새로운 활로를 여는 길이라고 보고 있다. 한때 ‘이상득 불출마’를 놓고 동맹을 맺었던 이재오 전 의원과 정의원의 관계도 냉랭하다. 이의원과 이 전 의원의 관계 또한 숙명적인 대치가 계속되는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여권 내부에서 ‘주류 세력의 단합’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지난 9월17일 여권의 한 핵심 전략가는 “이상득·이재오·정두언 3인이 서로 역할을 분담해 공존해야 한다. 이들이 연합해 여권 내 중심을 잡아야 한다. 지금처럼 따로 가다가는 자칫 다 죽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 준비에 정신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흐름은 국정감사가 끝나는 10월 말쯤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때부터 어떤 형식이든 여권 내에서 정치적인 변화가 새롭게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여권 주류 그룹 내부에서 이런 흐름이 대두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우선 올 정기국회에서 야당의 반대를 뚫고 처리해야 하는 입법들이 수백 개에 달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단결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지 지도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는 현실에서 입법 여부는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그러나 지금은 1백72석이라는 거대 여당에 걸맞은 ‘힘’이 모아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대통령이 추진하고자 하는 과제를 당이 충실히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이명박 정권의 앞날은 지금보다 더 험난할 수밖에 없다.

또한 박근혜계가 날로 세력을 넓혀가는 것도 주류 그룹의 위기 의식을 키우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최근 대구·경북 의원 모임에 적극 참여하는 등 ‘지역 챙기기’에 나서고 있다. 한편으로는 중도 성향의 초·재선의원들과도 만나면서 교수들로부터도 꾸준히 ‘과외’를 받고 있다. 최근 정가에는 “대구·경북뿐 아니라 부산·경남도 박근혜에게 넘어갔다”라는 말이 나돈다.

지난 12일 박 전 대표가 부산을 방문했을 때 12명의 국회의원이 행사에 참석했던 일이 오르내리고 있다. 부산·경남에서는 박근혜계의 좌장으로 불리는 김무성 의원이 중심이다. 김의원과 쌍벽을 이루었던 권철현 전 의원이 국회에 진출하지 못하면서 부산의 정치 판도는 김의원이 좌우하는 상황이 되었다. ‘박근혜 주가’가 오르면서 덩달아 김의원을 만나려는 이들도 줄을 서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 대구ᆞ경북 의원 모임에 적극 참여해

정치권 한 인사는 “대선 때 선진국민연대에 줄 섰던 인사들이 지금은 박 전 대표 쪽에 서려고 한다. 최근 만난 국회의원은 박 전 대표에게 어떻게 하면 다리를 놓을 수 있을까 고민하더라”라고 전했다. 청와대 한 관계자도 “흐름이 그런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국회의원들로부터 만나자는요청이 오면 (박 전 대표는) 일정이 허락하는 한 거절하지 않고 만나고 있다. (지역을 챙기는 것에 대해서는)대구·경북 지역이 특히 어려워 경제를 살리는 쪽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총선을 거치며 ‘서청원·홍사덕’으로 상징되었던 이른바 ‘친박’의 상징도 최근 박 전 대표의 달라진 행보 속에서 변화하고 있다. ‘계파색’을 탈피하고자 계파에 관계없이 두루 사람들을 만나면서 소장파 중심으로 재편되는 모양을 보이고 있다. 김선동·이정현·현기환·구상찬 의원 등이 최근 들어 주목되는 ‘친박인사’들이다. 이들은 정세를 분석하고 전략을 세우는 데 능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 한나라당 출입기자는 “최근 박 전 대표는 다분히 전략적으로 계산된 행보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적극적인 발언은 자제하고 있지만 애초 내년 하반기까지 잠행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것과 비교하면 행보가 훨씬 빨라졌다.

최근 정가에는 박 전 대표측이 이른바 ‘친박 인사’들을 점검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단순히 정치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 ‘친박근혜’를 표방한것인지 아니면 정말 박 전 대표와 뜻을 같이하는 것인지 살펴보았다는 것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런 얘기가 나도는 것 자체가 박 전 대표측이 무언가 큰 틀을 새롭게 짜고 있다는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권 주류 내에서 제기되는 ‘실세 화합론’은 주류 내부를 단속할 필요성과 함께 지금 같은 상태에서 내년 4월에 재·보선을 치를 경우 참패할 수 있다는 맥락도 깔고 있다. 누구를 내보내느냐를 놓고 자중지란이 일 가능성이 있는 데다가 ‘박근혜 구원투수론’이 제기되면서 주류의 힘이 빠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권 핵심부로서는 이래저래 올 연말 안에는 내부 체제를 재정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실패할 경우 힘은 급격히 박 전 대표에게 쏠리면서 주류, 나아가 한나라당은 분화하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경제 상황과 ‘개헌’이라는 커다란 변수가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형태나 시기는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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