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해바라기들’ 밀어붙이기에 국회만 골병든다
  • 김영태 (목포대 정치행정학부 교수) ()
  • 승인 2008.09.23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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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1백72석만 믿고 자만하다가는 정국 교착 상태에 빠져…초선 의원들까지 계파 싸움에 나서는 꼴불견을 접어라

18대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그 어느 때보다 싸늘하기만 하다. 전국을 뒤흔든 촛불 정국에서 국회는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원 구성을 위한 여야 간의 힘겨루기는 무려 3개월여 동안 지속되었다. 최근에는 추가경정예산안의 처리를 놓고 여야가 격돌하면서 한나라당이 단독 강행 처리를 시도했다가 그마저도 실패로 돌아갔다. 산적한 민생 문제에 경제적 불확실성과 위기감이 가중되고 있음에도 국회는 이처럼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감 상실은 여야 모두의 책임이며, 어느 쪽만을 탓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국회 파행에 대해서는 여당인 한나라당에 더 큰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정국 운영은 기본적으로 정부·여당의 태도에 크게 영향을 받으며, 특히 한나라당은 다른 어느 때보다 많은 의석을 점유한 1백72석짜리 거대 여당이기 때문이다. 즉, 한나라당은 정국을 주도하고 야당을 견인해야 할 좀더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난 18대 총선 이후 한나라당이 보여준 모습은 분열과 혼란의 연속이었으며, 18대 국회의 무능력은 이의 반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추경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나타난 한나라당의 내홍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야당과 합의를 도출하는 정치력을 보여주는 대신 이른바 ‘날치기’라는 밀어붙이기식 강행 처리 방식을 쓴 것도 그렇거니와, 소속 의원의 상당수가 표결에 불참해 종국에는 의결 정족수 미달로 이마저도 무산된 것이 그렇다. 홍준표 원내대표의 사퇴 문제를 둘러싸고 계파 간 세력 대결 양상을 보이는 것도 보기 흉하다. 물론 한나라당의 불협화음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7월에는 북한군에 의한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이후 박희태 대표가 대북특사를 제의했다가 청와대의 반대로 하루 만에 없던 일이 되었다. 어청수 경찰청장의 경질 문제를 놓고도 당내 이견이 노출되었으며, 최근에는 박희태 대표가 홍준표 원내대표의 연말 당·정·청 전면개편론을 정면으로 비판한 바 있다.

이처럼 한나라당이 잦은 내홍에 시달리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1백72석이라는 거대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는 한나라당의 자만감이 화근이 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즉, 1백72석을 가진 한나라당의 입장에서 다수의 힘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언제든 관철시킬 수 있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굳이 야당과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할 필요도 없으며, 야당이 국회에 정상적으로 참여하도록 유인할 필요도 크지 않다. 그저 야당이 이런저런 이유를 들이대며 합의를 거부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를 곁들이면 그만이다. 이번 정기국회의 추경안 처리 과정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거대 여당이라고 모든 것을 자신의 의지대로 관철시키기는 어렵다. 오히려 의원 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의원들의 다양성이 커지고, 그에 따라 통제가 더욱 어려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거대 여당이 의석 수를 믿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 야당의 반발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실제 원내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던 열린우리당 시기나 3당 합당으로 탄생한 거대 여당이었던 민자당 시기에 여당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거나 정국이 교착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여소야대 상황보다 빈번했다. 특히 국회가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인 시기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당시 여당인 민정당의 의석이 1백25석에 불과했던 13대 국회였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 박희태 대표(오른쪽)와 홍준표 원내대표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의원 수 많으면 통제 어려워 더 불리할 수도

한나라당이 안고 있는 또 다른 문제는 의회 정치와 관련한 자기 정체성의 부재이다. 분명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의 당정 분리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의회의 자율성을 위한 대통령의 의회 개입은 제한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대통령과 정부 그리고 집권 여당이 완전히 별개일 수는 없다. 정부의 정책 집행은 의회의 입법 과정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야당과의 협상과 합의도 중요하지만, 대통령과 정부, 집권 여당의 의사 소통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당·정·청의 긴밀한 연계가 의회, 좀더 정확히 말해 집권 여당의 자율성을 훼손해서는 곤란하며, 특히 집권 여당을 정부의 거수기화해서는 더욱 곤란하다. 집권 여당은 의회 정치의 근간이며, 의회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정부에 대한 비판과 견제이기때문이다. 즉 집권 여당이라고 비판과 견제의 역할을 방기해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과 정부가 밀어붙이기식이 아니라 국민적 지지와 동의에 기초해 정책을 진행하려면 야당과의 협의는 필수적이며, 이것이 원내 정당인 한나라당의 역할이다.

그럼에도 작금의 한나라당의 모습은 심히 우려스럽다. 대표의 제의가 하루 만에 청와대의 거부로 무산되고, 어찌되었건 여야 협상이 청와대의 이견으로 없었던 일로 치부된다. 정부 인사의 의회 불출석을 두둔하면서 어떻게 정부에 대한 견제가 가능할 것인가. 심지어 일부 의원들의 경우 정부의 돌격대를 자임하고 나서는 양상이다. 야당과 협상도 시작하기 전에 시한을 못 박고, 그때까지 안 되면 밀어붙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한나라당이 보이는 모습에서 국민이나 야당은 찾아보기 어려우며, 오직 청와대만을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사실 박희태 대표나 최근 논란이 된 홍준표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의 리더십 문제 역시 의회정치적 정체성이 없이 청와대만을 바라보는 의원들의 행태에서 비롯된 것도 적지 않다.

물론 18대 국회에서 보여준 한나라당과 지도부의 무기력은 다른 무엇보다 이른바 ‘친박계’니 ‘친이계’니 혹은 ‘이상득계’니 ‘이재오계’니 하는 계파 간 권력투쟁에 당이 휘둘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어느 나라 정당에서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분파나 계파가 존재하고, 이들 간의 권력투쟁이 전개된다. 따라서 계파 문제를 가지고 유독 한나라당만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흔히 지적되듯 우리의 경우 계파가 정책적 차별성에 따르기보다 인물과 지역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특히 한나라당의 경우 당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사사건건 계파 싸움으로 비화되고 있다. 게다가 의정 활동의 중심축이어야 할 일부 초선 의원들까지 정책보다 계파 싸움에서 선봉장으로 나서 목소리를 높이곤 한다. 이제 추경예산안 처리를 둘러싼 한나라당의 내홍이 진정 국면에 접어드는 듯하다. 또한 대통령과 당대표는 당·청 간 의사 소통을 강화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이 안고 있는 근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여당에는 계보나 계파가 없다”라는 대통령의 언급에도 불구하고 계보나 계파는 여전하며, 단지 수면 아래 잠복해 있을 뿐이다. 당·청 간의 의사 소통도 당내 의견 수렴과 의견 통일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당내 혼란과 갈등을 잠재울 수 없다. 게다가 당·청 간의 의사 소통이 청와대의 일방통행식 의사 전달로 귀결되면 오히려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의 밀어붙이기만 부채질할 수 있다. 이 경우 국회의 파행은 불 보듯 뻔하며, 국회의 위상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의 위상 역시 더욱 협소해질 수 밖에 없다.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며, 부족한 것도 아니다. 국회의 기능 회복을 위해서도, 한나라당을 위해서도 1백72석을 가진 거대 여당으로서 한나라당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대한 노력이 다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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