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박 전화에 대출 강요 “겁나서 못 살겠다”
  • 김 지 혜 (karam1117@sisapress.com)
  • 승인 2008.09.23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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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 유출로 피해 입은 네티즌들 하소연 각양각색

“포커, 바둑이, 맞꼬” “고래 30마리 대방출! 가입시 3만원” GS칼텍스의 개인정보 유출로 피해를 입었다며 집단 소송을 준비하는 인터넷 카페 회원들은 최근 이런 스팸 문자가 급증했다고 말한다. 이들은 자신의 피해사례를 증거로 들어 경찰이 압수한 DVD 외에 달리 빼돌린 자료가 있거나 내부자가 예전부터 개인정보를 악용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단순한 정보 유출을 넘어 2차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겪은 피해 사례들을 보면 결코남의 일로 넘기기 어렵다. 정보 유출의 피해는 당하고 있다고 느낄 만큼 심할 때도 있지만, 일상적인 경우가 더 많다. 즉 피해 당사자가 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포인트 절도’는 빈번하게 일어나면서도 쉽게 간파하기 어려운 피해 사례이다. 범인들은 꼼꼼하게 적립 포인트를 확인하는 이는 드물다는 점을 악용한다. 고양시에 사는 김승준씨(가명·35)는 지난 6월 말 동네 GS마트에 들렀다가 현금 11만원에 해당하는 포인트가 없어진 사실을 발견했다. 2000년부터 적립한 포인트였다. 우여곡절 끝에 누군가 김씨의 개인정보를 도용해 인터넷에 접속한 후, GS 계열사 간의 포인트 통합에 동의하고 새 카드를 발급받아 GS칼텍스에서 해당 금액만큼 몽땅 주유한 것을 밝혀냈다.

빈번하게 일어나는 ‘포인트 절도’도 간파하기 어려워

한 번 샌 개인정보는 여기저기서 반복적으로 사용된다. 김씨는 새로 신청한 포인트 카드가 2주 넘게 도착하지 않자 본사에 항의했다. 담당자는 “누군가가 이미 GS편의점에서 포인트를 두 차례 사용했다. 새 카드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라고 답변했다. 담당자는 회사의 잘못도 시인했다. 그는 “사실 이런 경우가 몇 차례 있다. 내부자의 소행인 것 같다. 통합 포인트 시스템에 문제가 많아 8월 말에 보안을 강화했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GS칼텍스 주유소와 GS편의점에서 포인트를 절도한 용의자의 신상과 CCTV를 확보해 고양경찰서에 신고하고, 9월3일에 포인트를 상품권으로 돌려받았다. 정보가 완전히 노출되어 GS 포인트 카드를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GS칼텍스 정보 유출 사건이 터졌다. 김씨는 “내부자가 예전부터 개인정보를 도용한 것이 분명하다. 나 같은 피해자가 여럿이라는 말을 들었다. 사건이 터지자 2차 피해는 없다고 잡아떼는 것이 어이없다”라고 말했다. 김씨 외에도 GS계열사의 포인트가 줄었다는 제보는 많다. GS마트, GS칼텍스, GS편의점 등에서 포인트를 적립한 후 세심하게 확인하는 사람은 적어 실제 피해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본인 모르게 현금에 해당하는 포인트가 절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정보가 유출되면 손쉽게 협박 또는 장난 전화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인천의 개인병원 원무과에 근무하는 김정태씨(29)는 9월9일 오후 5시쯤부터 업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잦은 협박 전화에 시달렸다. 발신번호02-389-9127이 찍힌 전화를 받으면 30대 중반 정도 목소리의 남자가 다짜고짜 “만나서 얘기하자. 너 있는 곳으로 간다”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미친 짓 하지 마라”라고 강하게 대응하면 “밤길 조심해라. 너와 가족을 묻어버리겠다”라며 협박의 강도를 높였다. 심지어 같은 번호와 목소리로 태연하게 “대출해라”라는 전화를 걸면서 자신은 동일인이 아니라고 잡아떼기도 했다. 그는 통화 내용을 녹음해서 인천중부경찰서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범인이 집과 직장 주소를 알고 있어 아내와 주변 간호사들을 해칠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확인해보니 GS칼텍스에서 유출된 DVD에 내 이름이 있었다. 전에는 협박전화를 받은 적이 없다. 최근에 도박과 대출을 권하는 스팸 문자도 몇배 늘었다”라며 개인정보가 유출되어 생긴 피해임을 확신했다.

소규모 인터넷업체에 개인정보를 보냈다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수원시 영통에 사는 김준민씨(27)는SKT, KTF, LGT로부터 영문도 모르고 1백80만원, 1백40만원, 4백30만원의 휴대전화 요금 연체 고지서를 받았다.  KT-PCS에서는 무려 2천4백만원이 청구되었다. 누군가 그의 명의를 도용해 무려 14개의 휴대전화를 개통한 뒤 필리핀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수신자 부담으로 받았던 것이다. 그는 원인을 찾던 중 한 휴대전화 대리점에서 자신의 인감증명서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인터넷으로 2백만원을 대출받으면서 제출했던 서류였다. 전액을 상환하면서 파기하겠다는약속을 받았는데 이 서류가 유출된 것이었다. KTF와 LGT에서는 상황을 입증해 연체료를 면제받았지만 법원의 결정문을 요구하는 SKT와 KT-PCS의 2천6백만원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그는 몇 달째 경찰서와 법원을 드나들며 시달리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들어오는 스팸 문자에 짜증 ‘밀물’

도박, 음란물, 대출과 관련한 스팸 문자도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빈번한 피해로 꼽힌다. 업무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양이 많거나 새벽에도 무차별적으로 쏟아진다. 회사원 정주용씨(28)도 최근 스팸 문자와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 “사행성 게임업체와 대출업체에 내 정보가 넘어간 것 같다. ‘잭팟 3천5백 대박’, ‘오수정 대리입니다. 8백만원 무방문 대출!’ 등의 문자가 수시로 온다. 회사원 김대희씨(32)는 “동일 업체의 문자인데 어떤동료는 대출 가능액이 1천만원, 다른 이는 8백만원으로 다르다. 사금융권 대출 사이트에서는 신용정보 조회만 해도 사정이 어려운 고객으로 취급해 신용등급이 떨어진다고 들었는데, 내 정보를 조회한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라고 말했다. 이름도 모르는 유해 사이트에 본인의 명의로 가입되는 경우도 있다. e메일 외에 인터넷을 거의 하지 않는 주부 이명순씨(57)도 “아들의 권유로 명의 도용 차단 사이트에 가입해서 보니 누군가내 명의로 이상한 사이트 100여 개에 가입했더라”라고 말했다.

난데없이 결제 확인 여부를 묻거나 인증번호가 찍힌 문자가 오면 누군가 현재 본인의 정보를 이용해 물건을 사거나 인터넷 사이트 가입을 시도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실제로 옥션, 하나로텔레콤, GS칼텍스 정보 유출당사자 중 명의 도용 차단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들은 하루에 2~3건씩 알림 문자를 받았다고 한다. 누군가 당사자 정보로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하려는 것을 차단했다고 알리는 문자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런 서비스에 가입하지 않은 이는 본인의 주민등록번호로 매일 2~3개의 게임,성인, 대출 사이트에 가입되고 있지만 까맣게 모른다는 말이다.

개인정보 유출로 입는 피해는 광범위하지만 현재로서는 유출된 정보가 더 이상 악용되지 않도록 명의 도용 차단 사이트를 이용하거나 스팸문자를 한국정보보호진흥원에 신고하는 소극적인 방법밖에 없다. 옥션, 하나로텔레콤, GS칼텍스 등 대기업의 정보 유출 사건이 빈발하자 ‘집단소송’으로 대응하자는 움직임이 예전보다 활발하다. 법무법인 윈의 이인철 변호사는 “개인정보 유출은 그 자체로도 정신적 고통을 주지만 납치, 명의 도용, 금융사기 등 미래의 피해 가능성까지 내포한 범죄이다.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법무법인 백로의 백승우 변호사도 “고객 정보로 마케팅해서 수익을 내면서 관리 비용은 부담하지 않으려는 기업의 관행에 경종을 울릴 때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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