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C 부활’ 못 잊는 CJ ‘야망의 세월’
  • 감명국.김지영 ()
  • 승인 2008.09.23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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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법 시행령ᆞ신문법 개정 등 ‘미디어 빅뱅’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케이블 방송에 종합 편성 채널을 도입하겠다는 등 정부ᆞ여당의 미디어업계 ‘판갈이’ 움직임은 더 강력한 속도를 내고 있다. 그 한가운데에 CJ가 있다.

1980년 11월30일 밤 11시50분께. 동양방송(TBC)은 온통 눈물 바다였다. 지상파 채널 7번의 TV 고별 방송에서는 가수 이은하가 노래를 부르다 끝내 눈물을 쏟았고, ‘TBC는 영원하리’라는 자막이 흘러나왔다. 라디오 스튜디오에서도 황인용 아나운서가 “아, 이제 5분 남았습니다. 10분만이라도 더 있었으면…”이라며 울먹였다. 이날의 방송을 마지막으로 TBC는 KBS로 흡수 통합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동안 숱한 위기와 오욕을 겪어왔던 국내 최대 재벌 삼성이지만, TBC를 국가에 빼앗긴 이때의 비통함은 지금도 짙게 남아 있다. 고 이병철 회장은 생전에 이 사건을 가장 억울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두환 신군부의 집권으로 언론 통폐합이 단행되었고, 당시 유일한 TV 민영방송이었던 TBC는 첫 번째 타깃이었다. 당시 이회장은 신군부에게 TBC를 헌납하기로 하는 각서를 쓰고 나서 여의도에 신축했던 새 사옥으로 향했다. 지금의 KBS 별관이다. 당시 최고 인기 방송이었던 TBC의 위상을 과시하기 위해 이회장이 직접 세운 건물이었다. 주변의 직원들이 통곡하는 가운데, 이회장도 그 사옥을 바라보며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이후에도 삼성의 미디어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중앙일보를 국내 1, 2위를 다투는 메이저 언론사로 성장시켰고, 중앙M&B,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등의 잡지 출판 왕국을 건설했다. Q채널 등 케이블 채널도 4개나 소유하고 있다. 그런데도 삼성의 욕심은 여전히 허전한 듯 보인다. ‘빼앗긴’ 지상파 채널 7번에 대한 아쉬움 탓이다. 3년 전 삼성그룹 및 중앙일보의 한 고위 임원 출신 인사가 사석에서 기자에게 “1980년 언론 통폐합 당시 문을 닫았던 신문사들은 민주화 흐름을 타고 모두 되살아났다. 그런데 왜 TBC는 안 된다는 말인가”라고 부당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채널 7번은 언젠가는 되찾아야 할 자산이라는 삼성의 의지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었다.

중앙일보는 1996년 법원에 TBC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당시 사법부는 강압에 의한 국가의 불법 행위를 인정하면서도 소멸 시효를 문제 삼아 패소 판결을 내렸다. 삼성과 중앙일보의 채널 7번에 대한 애착과 울분을 엿보게 할 수 있는 대목은 또 있다. 노무현 정권 출범 초기인 2003년 6월 당시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은 서울의 한 대학 강연에서 마음속에 오랫동안 담아두었던 속내의 일면을 조심스럽게 꺼내 놓았다. 그는 “TBC를 뺏겼다는 데 대한 한이 있기 때문에 (공중파 방송 진출) 기회가 온다면 아마 신중하게 고려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당시의 강연이 비공개 성격이어서 그의 발언이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홍회장은 종이 신문의 위기를 강조하며 신문·방송 겸영 허용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 cj미디어의 취재 차량이 거리에 서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CJ미디어, 지상파 3사와 견줄 정도로 성장…미디어 판도 바꿀 수도

일찌감치 신문·방송 겸영 허용을 당론으로 정했던 한나라당이 올해 집권하면서 우선적으로 주목받는 곳이 삼성과 중앙일보인 것은 그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CJ그룹이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현재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방송법 개정 움직임 등의 ‘미디어 빅뱅’ 구도에서도 역시 CJ는 한가운데에 서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향후 CJ가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미디어 시장의 판도 자체가 변화될 수 있다”라고까지 얘기한다. CJ를 제외하고는 향후 미디어 빅뱅 구도를 얘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CJ그룹은 고 이병철 회장의 장손인 이재현 회장이 경영하고 있는 삼성가(家) 기업이다. 그룹의 계열사인 CJ미디어는 이미 KBS·MBC·SBS 등 지상파 3사를 제외하고는 국내에서 최대 영향력을 발휘하는 미디어업계의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CJ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이면서 동시에 케이블방송망운영사업자(SO)라는 점에서 지상파 방송과 견줄 수 있는 유일한 대기업이다. PP만 무려 10개를 갖고 있는 국내 최대의 복수채널사용사업자(MPP)이다. CJ헬로비전이라는 케이블 방송사도 갖고 있다. CJ가 외주 제작업체까지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미디어업계에서는 CJ의 막강한 파워를 가늠하게 하는 사례로 얼마 전 CJ미디어가 스카이라이프(SkyLife)에 종합오락채널 tvN 채널 송출을 중단했던 것을 꼽고 있다. CJ미디어가 올해 1월1일 스카이라이프에 tvN 채널 송출을 중단하면서, 양측은 법적 분쟁을 벌였다. 지난해 5월 채널 송출 중단에 이은 두 번째였다. 이로 인해 스카이라이프는 큰 타격을 입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채널 송출이 중단된 지 5개월여 만인 지난 5월26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직접 중재에 나서면서 CJ는 마지못해 송출을 재개했다. 이와 관련해 업계에서는 “채널 송출 능력을 갖고 있는 CJ의 파워로 봐서는 향후에도 스카이라이프와 벌였던 분쟁 사태가 또다시 발생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라고 전망하고 있다.

CJ의 인맥은 현 이명박 정부와도 가깝게 닿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손경식 CJ그룹 회장이다. CJ그룹은 현재 이재현 회장과 손회장이 공동회장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회장이 대내 경영 담당이고, 손회장은 대외 담당이다. 그는 이회장의 부친인 이맹희씨의 처남이다. 즉 이회장의 외삼촌이 되는 셈이다. 현재 그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으며 경제 5단체장의 자격으로 이명박 대통령과도 자주 접촉하고 있다. 손회장의 인맥은 ‘서울대 57학번’으로 연결된다. 현 정부 들어 가장 주목받고 있는 그룹인 서울대 57학번은 이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과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중심에 있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와 유재천 KBS 이사장도 동기이다. 이 멤버 가운데 또 주목해야 할 인사가 바로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다. 그는 이건희 회장의 퇴진과 함께 공식적인 삼성그룹의 대표가 되었다. 이수빈 회장과 이상득 의원의 절친한 관계는 서울대 57학번 동기들 가운데서도 소문이 나 있을 정도이다.

▲ CJ그룹은 고 이병철 회장의 장손인 이재현 회장(위)이 경영하고 있다. ⓒ시사저널자료

기자 간담회 열어 “진출 안 한다”…업계는 “주도적 역할 할 것” 전망

재계에서는 웬만한 기업 정보들이 흘러다닌다. 일부에서는 정기적인 기업 정보팀들이 모여 서로의 동향을 체크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디어업계에서 CJ는 최근 ‘철통 보안’을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디어 정책과 관련한 회사 내부 동향이 좀처럼 외부로 새어나오지 않고 있다. 정보팀 모임에도 얼굴을 내밀지 않고 있다. 미디어기업 정보팀에서 활동하는 한 인사는 CJ 사람들이 각종 정보 모임에 나오지 않는 것을 두고 “CJ는 지금 ‘우주선’을 독자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단계에 있는데, 무엇이 아쉬워서 우주선 개발 노하우 정보를 교환하는 외부 모임에 나오겠느냐”라는 말로 빗대어 설명했다. 정부의 방송 시장 정책 등 굵직굵직한 사안만 점검하고 확인해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건희 전 회장의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삼성뿐만 아니라 ‘삼성가(家)’인 CJ 사람들도 일부러 대외 활동을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래서일까. ‘은둔의 경영자’라고 불릴 정도로 원래 외부에 잘 나서지 않기로 유명한 이재현 회장 역시 최근 들어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특히 현 정부 들어 더 심해졌다는 평이다. 지난 2월에 있었던 이대통령 취임식에도 불참하더니 지난 4월 대통령의 재계 총수 초청과 이어 진행된 해외 순방 때도 손회장이 대신 참석했다.

CJ는 최근 종합편성 PP의 신설과 나아가서는 지상파 방송의 민영화 움직임이 이어지면서 크게 주목받게 되자 상당히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이다. 강석희 CJ미디어 사장은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9월8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여기서 그는 “방송법 시행령이 개정될 경우 CJ가 CJ미디어를 앞세워 지상파 방송 또는 종합편성 PP에 진출할 것이라는 말이 돌고 있지만, CJ그룹은 전체 자산 규모가 10조원을 넘어 자격 미달인 상태이다. 굳이 자산을 이관하면서까지 종합편성 PP 채널을 설립하려는 관심이나 의지가 없다”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CJ, 지상파 또는 종합편성 PP 진출 안 한다’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간담회에 참석한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적으로 들어보면 이는 정확한 전달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당시 간담회에 참석한 한 일간지 기자는 자신의 수첩을 보면서 “여기 적힌 당시 강사장의 워딩 그대로는 ‘우리는 사업자다. 사업이 될 것 같으면 언제든지 한다. 그런 면에서 IPTV는 현재는 유보 상황이다’라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종합편성 PP 및 지상파 방송 진출 의향에 대해서 질문하자 ‘(우리는) 기존 채널의 안정화에 집중하겠다. 아직은 관심이 없다. 그리고 의지도 없다. 보도전문 채널도 마찬가지이다. 비용보다 수익이 더 난다는 보장이 없으면 안 한다’라고 말한 것이 전부이다. 당시 강사장의 발언 뉘앙스는 ‘현재로서는 당장 관심이 없지만 앞으로 시장 상황을 좀더 지켜보고 판단하겠다’는 뜻으로 들렸다”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서는 CJ측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CJ의 한 임원은 “앞으로 절대 안 한다, 뭐 이런 것보다는 현재 상황에서 우리는 자격도 안 될뿐더러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을 표명한 것이다. 정작 우리는 별 관심이 없는데 자꾸 주변에서 우리와 관련해서 여러 루머들이 나돌기 때문에 부득이 기자간담회를 하게 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CJ측의 이런 애매모호한 입장과 발언은 오히려 의혹을 더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한국방송협회의 한 고위 관계자는 “(강대표의 발언은) 정부의 방송법 개정에 따른 주목이 자신들에게 집중되자 일단 소나기를 피해가자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CJ가 오래전부터 이 부분에 상당한 관심과 함께 준비를 해 온 것은 이 업계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라고 강조했다. 언론노조의 한 관계자 역시 “CJ는 종합편성 PP를 가져갈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CJ는 과거에도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가 나중에 방향을 틀었던 사례들이 있다. 한 예로 CJ가 CGV를 시작하면서 미국 영화의 국내 배급을 독점하지 않겠다고 발표해놓고도, 나중에는 독점 상영하고 있지 않나. 그래서 종합편성 PP나 지상파 등에 진출 계획이 없다고 한 발표도 믿을 수가 없다”라며 강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CJ가 이미 내부적으로 움직여온 것으로 알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종합편성 PP보다는 KBS2의 민영화에 더 큰 관심이 있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지상파의 민영화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자칫 지난 촛불 시위 같은 국민의 집단적인 저항 움직임이 일어날 수도 있다. 따라서 지금 당장 나설 일이 없는 CJ로서는 일단 관망적인 상태에서 좀더 긴 호흡을 갖고 이에 대비하려는 듯하다”라고 나름으로 분석했다.

방송업계 주변에서는 CJ미디어와 중앙일보의 연합 움직임을 유력하게 보고 있다. KBS의 한 팀장급 관계자는 “이미 CJ미디어는 영화·오락·드라마 등에서는 지상파와 다름없는 노하우를 갖고 있지만 유일하게 취약한 부분이 보도 부문이다. 그런데 종합편성 PP나 지상파 방송의 경우는 보도 기능이 절대적이다. 그 취약성을 중앙일보를 통해 메우려 할 것으로 본다”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중앙일보가 YTN 지분 매입 작전에 나섰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CJ와 중앙일보가 공동으로 YTN을 인수해서 오락·교양·드라마뿐만 아니라 보도 채널까지 소유하는 명실공히 미디어 왕국을 실현할 것이라는 시나리오이다. 이에 대해 중앙일보측은 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CJ의 최종 꿈은 채널 7번(KBS2)을 되찾는 데에 맞춰질 것이라는 전망도 우세하다. 여기에는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친동생인 홍석규 회장의 보광그룹과의 ‘연합 작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KBS의 한 관계자는 “KBS2나 MBC의 지방계열사를 뺀 서울 본사만 인수할 경우 2조~3조원 정도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CJ가 같은 삼성가 기업인 보광그룹과 공동 출자한다면 지상파 방송 인수가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라고 전망했다. 이미 이런 전반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내부 전담팀이 오래전부터 가동 중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 1980년 11월30일 밤 TBC 직원들이 고별연에서 “TBC 만세”를 외치고 있다. ⓒ중앙일보

CJ측은 부인했지만 이재현 회장 직속 ‘미디어 전략팀’ 별도 운영 소문

CJ그룹은 정권 교체가 가시화되던 지난해 9월부터 회사 체제를 새롭게 정비했다.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주식회사 CJ를 CJ제일제당과 분리해서 지주회사로 만들었다. 주식회사 CJ 안에 이재현 회장의 직속부대인 ‘회장실’에서 미디어 사업을 관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CJ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에 따르면, 회장실에는 1백80여 명이 근무하고 있는데, 식품 유통뿐 아니라 미디어까지 그룹 전반의 사업을 컨트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회장실은 일종의 구조조정본부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미디어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회장실에 ‘미디어 TF(태스크포스)’가 존재한다는 얘기이다.

이에 대해 CJ의 한 임원 관계자는 “어느 기업이고 간에 지주회사 체제로 가면 지주회사 안에 전체 계열사를 총괄하는 부서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당연히 주식회사 CJ 안에 CJ미디어에 관련된 인원도 있다. 그렇다고 그 팀이 항간에 나오는 소문처럼 그런 성격의 TF팀은 전혀 아니다”라고 밝혔다.

미디어 업계의 한 인사는 “CJ는 기업 규모나 사업 능력, 자본 등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지금은 ‘꽃놀이패’를 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향후 CJ가 어떤 쪽으로 방향을 잡느냐에 따라 미디어업계에 큰 지각 변동이 일어날 것이다. 현재 미디어 사업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다른 대기업들도 CJ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관망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다른 기업들은 CJ가 선택하지 않은 미디어 사업 쪽으로 관심을 갖고 눈을 돌릴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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