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판갈이, 너무 막 나간다”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8.09.23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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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 새 방송법 시행령 개정 올해 안에 끝낼 계획…‘미디어 빅뱅’에 기대 반 우려 반쓴소리

▲ 9월2일 ‘방송의 날’ 축하연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엄기영 한국방송협회장(왼쪽),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오른쪽) 등과 건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향후 미디어업계에 큰 지각변동이 몰아닥칠 것이다. KBS와 MBC라는 양대 공영방송 체제로 대표되는 국내 방송 언론의 근간이 완전히 허물어질지도 모른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못지않게, 아니 오히려 그보다도 더 중차대한 문제인데 정작 국민은 아직 그 심각성을 못 느끼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서울 목동에 위치한 한국방송협회(회장 엄기영 MBC 사장) 주변에는 한숨과 탄식이 끊이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시나리오이지만, 정부·여당의 미디어 분야에 대한 판갈이 움직임은 훨씬 더 강력한 속도를 내고 있다. 당장 방송통신위원회는 새 방송법 시행령 개정을 올해 안에 끝내겠다는 결심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오는 11월에 차관회의 및 국무회의를 거쳐 공포·시행하고 방송법 개정안을 12월 국회에 제출하겠다는 계획이다. 일부 시민단체의 반발로 공청회가 무산되자 “무산된 공청회를 연기하면서까지 다시 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 현실이란 시간을 가리키는 셈이다. 더 이상 기다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와 함께 신문·방송 겸영을 허용하는 신문법 개정, 국가기간방송법 제정, 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이 이어질 전망이다. 원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기세에 걸림돌은 없어 보인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최근 격변하는 미디어시장에서 방송 산업의 시장 개방 확대와 경쟁은 불가피한 시대적 흐름이자 요구에 해당한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개혁이란 원래 힘이 있을 때 밀어붙여야지 그러지 않으면 흐지부지 되어 아무것도 안 된다. 역대 정권에서 봐오지 않았는가”라며 강공의 배경을 해명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의 무소불위식 밀어붙이기 강행은 좀 심하다는 지적이 많다.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는 과정조차도 생략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 급해서 이렇게 서두르는가”라는 지적은 심지어 한나라당 내에서도 들려온다.

방송계 “방통위가 아예 귀를 닫고 밀어붙인다” 불만

실제 방통위의 최근 행보를 보면 집권 5년 기간 중에서도 사실상 권력의 공백이 덜한 전반기 내에 모든 작업을 마무리하려는 듯 서두르는 인상이 역력해 보인다. 올해 내로 관련 법안을 국회에 상정한 뒤 당장 내년에 종합편성 PP의 출현 등 구체적인 성과를 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시나리오로 MBC와 KBS2의 민영화 문제마저 집권 전반기 내에 다 해결하겠다는 복안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최대 관심사는 종합편성 PP의 출현이다. 올해 관련 입법이 마무리되면 내년에는 구체적인 참여 회사가 등장할 전망이다. 그에 따른 예민한 문제는 두 가지이다. 대기업의 지분 참여 자격을 대폭 완화한다는 것과 신문사의 방송·신문 겸영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종합편성 PP란 하나의 채널 안에서 보도와 오락 드라마 스포츠 등을 모두 편성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상 KBS·MBC·SBS 등 기존의 지상파와 다름이 없는 셈이다. 한국방송협회의 한 관계자는 “현재 대다수 가정이 지역 케이블 방송을 통해 TV를 시청하고 있다. 채널 6, 7, 9, 11번을 현재 지상파 3사가 소유하고 있는데, 여기에 신규 종합편성 PP가 채널 12번, 13번 이런 식으로 들어오면 지상파와 전혀 다를 것이 없게 된다. 일각에서는 이를 ‘준지상파’라고 하지만 내가 볼 때는 그냥 지상파나 마찬가지이다”라고 밝혔다.

최진용 한국방송협회 사무총장은 “현 정부나 방통위는 방송을 지나치게 산업적 측면에서만 보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방송은 그것이 종합편성 PP가 되면 그때부터 하나의 언론이 되는 것이다. 언론으로서 갖는 공영성과 공익성을 최우선시해야 한다. 하지만 수익 창출을 지상 과제로 생각하는 민영방송이 무분별하게 들어설 경우 과다 시청률 경쟁으로 공영성을 망각한 편향적이고 선정적인 방송 경쟁이 판을 치게 될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그는 “방송을 가리켜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하는 것은 이미 옛말이 되었다. 파이가 더 이상 커지지 않은 지금의 시장에서 자칫 전체 방송의 공멸이 뒤따를 수도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러한 방송협회의 반대 표명이 마치 기존 방송 3사의 밥그릇 챙기기로 오해되는 점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또 다른 문제점도 지적된다. 기존의 자산 규모 3조원 미만에서 10조원 미만으로 방송사 참여 기준을 대폭 완화한 부분이다. 막대한 자본을 가진 대기업이 여론 형성력을 쥘 수 있는 종합편성 PP의 소유로 인해 방송 언론이 자본에 좌우될 것이라는 우려가 바로 그것이다. KBS의 한 관계자는 “현재의 법안대로라면 자본력이 있는 대기업과 뉴스 생산력을 갖춘 신문사들이 서로 제휴해서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럴 경우 대기업의 영향력을 보도국에서 방어하기란 어려울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조선·중앙·동아일보로 대표되는 유력 신문사들의 경우에 그동안 보도전문 PP나 종합편성 PP 등에 상당한 관심을 보여왔다는 점에서 “유력 언론사들이 신문과 방송을 동시에 장악해 여론을 편향된 방향으로 주도하는 폐해가 우려된다”라는 반발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민주당 간사인 전병헌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의 방송사 참여 허용 기준을 현재의 3조원 미만으로 무조건 고집할 것인가 하는 점에서는 우리도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한 5조원 미만 정도로 완화한다든지 해서 어느 정도 자본력을 갖춘 기업의 참여를 유도할 필요가 제기될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신문사에게 방송 겸영을 허용하겠다는 점이다. 이는 사실상 경제적 능력이 있는 일부 신문사에 한해 합법적으로 독과점의 길을 열어주겠다는 것으로 지금의 언론시장 불균형 현상이 더 심화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정부만 지지하는 학계에서도 ‘속도조절론’ 고개 들어

이에 대해서는 이제 신문·방송 겸영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정부의 원칙론에 찬성하는 학자들 가운데서도 공감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외대 문재완 교수는 최근 한 TV 토론회에서 “조·중·동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이나 우려가 있다면, 향후 몇 년간은 조·중·동에 대해 특별히 진입을 규제하는 장치를 만들 필요도 있다”라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궁극적으로 가장 우려하는 목소리는 정부·여당이 너무 일을 서두르기만 한다는 점이다. 최사무총장은 “정부·여당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대한민국 향후 방송 미디어시장의 백년대계를 짠다는 역사 의식을 가져야 한다. 한 번 제도를 만들어버리면 이를 다시 되돌리기에는 또 엄청난 국력의 낭비가 뒤따른다. 서둘러서 한꺼번에 다 하려 들지 말고 차근차근히 차례로 해나가면서 과정상의 미비점이나 보완점을 개선해나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노력이나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협회는 그동안 몇 번씩이나 방통위와 최시중 위원장에게 협회의 공식 의견서 전달 및 면담 요청을 해왔다. 하지만 거대한 벽이 느껴진다. 방통위는 아예 외부 목소리에 귀를 열 필요성을 갖지 않는 듯하다. 이미 정해진 내부 안대로 밀어붙이려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공청회니 하는 것은 그냥 요식 행위에 불과한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의 안에 찬성하는 입장의 학계에서도 ‘속도조절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우룡 한국외대 교수는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방송법 개정안의 방향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찬성이지만, 세부적인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문제점이 여러 군데에서 지적된다. 자칫 그런 문제들을 제대로 보완하지 않고 그냥 갈 경우 상당한 부작용이 우려된다. 학계의 이런 의견을 전달하고 싶어도 그럴 만한 창구나 기회가 없어서 갑갑한 심정이다”라고 말했다.

방송협회의 또 다른 관계자는 “도대체 현 정부가 ‘1공영 다(多)민영’을 부르짖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이 무슨 국가적 실리나 명분이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반문한다. 그의 의문대로 현재 정부가 주도하는 미디어 정책이 최소한의 명분이나 국민의 여론 수렴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너무 막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갈수록 팽배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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