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처녀’ 그게 뭐 어때서
  • 파리·최정민 통신원 ()
  • 승인 2008.09.23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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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에 관대한 프랑스, 라시다 다티 법무장관 임신에도 사생활이라며 ‘보호’
▲ 니콜라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사진 왼쪽)이 고든 브라운 영국 수상(맨 오른쪽)과 악수하는 라시다 다티 법무장관(가운데)을 바라보고 있다. ⓒAFP연합

섹시 스타 이효리가 만약 홀로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라면 지금 같은 인기를 누릴 수 있을까? 또한 최초의 여성 법무부장관이었던 황산성 전 장관이나 강금실 전 장관이 미혼의 몸으로 재임 중 아이를 가졌다고 발표한다면? 어쩌면 한국 사회에서는 적절치 못한 처신을 했다 해서 맹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런 생각들 자체가 미혼모를 보는 한국 사회의 인식이 어떠한지를 짐작하게 한다.

최근 미혼모 문제는 프랑스 정가와 미국 대선에서 화두로 제기되었다. 미국에서는 민주당 부통령 후보인 새라 페일린의 자녀가 17세라는 미성년의 나이로 아이를 가져 논란이 일었다. 프랑스에서는 미혼인 현직 법무장관이 임신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화제가 되었다.

먼저 프랑스를 보자. 이민 2세대로 장관이 되어 화제의 주인공이 된 라시다 다티 법무장관은 지난 9월3일 그동안 추측이 무성했던 임신설을 인정했다. 배가 나와 의심(?)을 샀던 그녀는 바캉스 이후 처음 열린 각료회의에 앞서 임신복을 입고 나타나 기자들에게 임신 사실을 밝혔다. 그녀는 “나는 42세이다. 늦은 나이이며, 아직 안정을 해야 하는 상태이다. 아이를 갖는 문제는 전적으로 사생활이다”라고 못 박았다. 언론은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가에 대해 다양한 추측성 기사를 쏟아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누구도 아이를 가진 어머니에 대해서 함부로 대하지 않았으며, 임신한 사실로 인해 그녀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지도 않았다.

사실 프랑스에서는 미혼모에 대한 시각이 부정적이지 않다. ‘세계 가치관 조사’ 결과를 보면 프랑스 국민의 62.3%가 미혼모를 인정한다고 밝혔다. 이것은 안도라와 칠레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치이다. 실제로 유명 인사들 사이에서 미혼모는 더 많다. 이효리와 같은 섹시 코드의 인기 가수인 나디아는 홀로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이다. 육상 선수로 활동하다 가수로 전업한 뒤 첫 싱글앨범을 발표하고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아이를 낳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아들을 출산한 뒤 복귀해 인기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누구도 그녀의 과거를 문제 삼지 않는다. 오히려 억척스런 어머니로 인정한다. 프랑스의 국민 배우인 소피 마르소도 홀로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이며, 국제적인 배우인 이자벨 아자니 또한 홀로 두 아이를 키운다. 10여 년 전 프랑스 뮤지컬의 황금기를 연 <노트르담 드 파리>의 여주인공을 맡아 히로인이 되었던 퀘벡 출신의 인기 가수 엘렌 세가라 또한 몇 년 전 홀몸으로 아이를 낳았다. 만삭으로 방송에 출연했을 때 사람들은 아이의 아빠가 누구인가를 묻지 않고 아기의 안부를 물었다.

아이 아빠 누구냐 묻지 않고 아기 안부만 물어

그러나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긍정적이라고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유명 인사들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어 홀로 아이를 키우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일반적인 미혼모 또는 편부 형태의 가족들은 정상적인 가정들보다 열악한 환경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프랑스 국립통계청이 조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편모나 편부로 구성된 가정이 주거 환경이나 경제적인 대우 면에서 보통 가정보다 훨씬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홀로 아이를 키우는 가족의 85%는 편모 형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이 아이를 책임지는 경우가 월등히 많은 것이다.

이 경우 경제 참여도는 68%로 일반 가정의 72%보다 낮았다. 주거 환경에서도 일반 가정은 68%가 주택에서 거주하는 반면 편모 가정은 주택에서 사는 경우가 36%밖에 되지 않으며, 스튜디오나 2피스(2개의 공간)에 거주하는 경우는 20%로 나타났다. 또한 10%의 편모·편부 가정은 다른 사람들(이른바 조부모나 다른 가정)과 공동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가정의 경우 이 수치는 3%밖에 되지 않는다. 더구나 실업률은 일반 가정이 12%인 데 비해 편부 가정의 경우 20%에 달해 프랑스 평균 실업률의 2.5배를 웃돌았다.프랑스 사회는 이에 대해 다양한 대안을 내놓고 있다. 우선 사회보장제에서 미혼모나 편부 가정은 정상 가정과 같은 혜택을 보장받는다. 또한 사회적으로 이들이 격리되지 않도록 다양한 연대가 조직되어 있다. 한 예로 ‘프랑스 독신자 사회연대’의 경우 전국 66개 도시에 1만여 명의 회원을 둔 단체로서 미혼모나 편부 가정들의 연계를 돕는다. 또한 32유로의 연회비로 독신자 가정의 만남이나 바캉스를 주선하며 사회적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미국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 페일린의 17세 된 딸이 임신한 사례는 미혼모 문제에서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미성년의 임신이 미혼모 문제를 다루는 데 가장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경우 미성년의 임신 문제를 ‘의학적·정신과적·사회적’ 문제로 보고 폭넓고 신중하게 접근한다. 그러한 시각은 미성년 임신이 성문화의 문란함 탓이라기보다 무지나 사고에서 비롯되는 바가 크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에서 성교육이나 피임법 교육 등을 통해 문제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실제로 프랑스 통계청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성년의 임신은 그 발생이 주기적인 것이 아니라 바캉스 기간에 집중되어 있다. 발생하는 원인 또한 가정 환경에 기인하는 바가 큰 것으로 밝혀졌다. 2007년 전체 출산에서 19세 미만의 미성년이 출산한 경우는 1.9%였다. 미성년 출산도 다양한 사회적 보호 장치를 마련해 지원한다.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학업을 지속할 수 없는 경우인데,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 각종 시민연대 사이트는 ‘가정 방문 학습’을 통해 학업을 중단하지 않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결혼에 무관심한 사람 느는 것도 이유

전통적으로 가족을 강조하는 미국과는 달리 프랑스 사회는 가족 형태의 변화를 인정하는 편이다. 무엇보다도 결혼률이 감소하는 것이 주된 이유이다. 출산율의 증가와 함께, 동거 가정에서의 출산율도 현저히 증가했다. 국립 통계청의 최근 조사에서는 지난해 결혼 인구는 26만쌍으로 2006년의 30만쌍에서 4만쌍이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 사회에서는 동거 가정이라고 해도 결혼 가정과 똑같은 법적 보장을 받는다. 대표적인 경우가 지난 대선의 사회당 후보였던 세골렌 루아얄과 프랑수아 올랑드의 경우이다. 두 사람은 대선 직후 결별을 선언하고 갈라섰지만, 네 아이를 낳고 살기까지 결혼을 하지 않은 동거 관계였다. 현 내각의 미셀 안리오 마리 내무장관도 현재 배우자인 파트릭 올리에 전 여당 의원과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관계이다.

이처럼 가족 관계에 대한 변화를 인정하는 것은 미혼으로 아이를 키우는 경우도 하나의 가정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한국이나 미국과 같이 가부장적이고 전통적인 가정의 형태를 중요시하는 사회일수록 미혼모를 격리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가족을 중시하고 낙태를 반대하는 정책과 문화가 미성년 임신 문제를 더 무겁게 만든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이러한 가족관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은 현재 북유럽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동성 부모에 대한 법적 근거 마련에 신중히 접근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영국의 칼럼니스트인 미셀 시레트는 프랑스에서 부모들이 갓 성인이 된 자녀들을 감시하는 것은 자녀들의 성행위를 방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이루어지도록 돕기 위해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자녀 커플을 위해 집을 비워주는 부모들도 있다. 물론 자녀들이 건전하고, 안전한 성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교육은 당연시된다. 그런 풍토에서의 출산은 어쩌면 아름다운 선택이다. 한국에서도 언젠가는 얼짱·몸짱 스타가 아닌 미혼모 스타를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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