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의 잡담, 전도연의 냉소 …지루하거나 혹은 졸립거나
사랑을 소재로 한 영화 중 불후의 명작이 바로<남과 여>이다. 1979년에 개봉해 지금 2030세대는 들어보지도 못한 영화일 테지만 클로드 를르슈가 감독하고 아누크 에매, 장 루이 트랭티낭이 주연한 <남과 여>는 왜 리메이크 영화가 안 나오는지 희한할 지경이다. 각자 아들과 딸을 둔 두 사람은 지방에 있는 학교에 아이들 면회를 갔다가 우연히 남자의 차에 동승한다. 두 사람은 각각 과부이고 홀아비이다. 아내와 남편을 잃은 상처를 가진 두 남녀는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고 겉돈다. 결말은 당연히 해피엔딩이다.
<멋진 하루>는 김희수(전도연 분)와 조병운(하정우 분)이 만난 하루를 그리고 있다. 1년 전에는 연인이었지만, 병운이 희수에게 돈을 꾸고 잠수를 타는 바람에 헤어졌다. 그런 병운을 희수가 돈을 받으려고 찾아나선다. 병운을 보자마자 희수가 한 말은“내 돈 내놔”이다. 꿔간 돈 3백50만원을 달라는 것이다. 직업도 없고 돈도 없는 병운은 희수의 차를 타고 여기저기 돈을 꾸러 다닌다. 돈을 갚기 위해 또 돈을 꾼다는 설정은 재미있다. 병운이 만나 돈을 꾸는 사람들은 모두 여자이다.
1년 만에 만나서 “내 돈 내놔”
<멋진 하루>는 희수와 병운이 차를 타고 다니며 사람을 만나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꾸며져 있다. 건달인 병운은 희수에게 끝없이 잡담을 하고 그 잡담에 더러 실소를 자아낸다. 과거에는 연인이었지만 희수는 냉담하기 짝이 없다. 그런 캐릭터를 유지하기 위해 메이크업도 썰렁하게 했다. 이윤기 감독은 낯선이들과의 생소한 만남을 통해 두 사람이 친밀하게 변해가는 과정을 그리려 했다지만 영화는 전혀 멋지지도 않고 지루하기만 하다. 어떻게 보면 줄거리랄 것도 없는 영화가 마치 소설 <경마장 가는 길>을 보는 것 같다.
40여 일 동안 58곳에 달하는 곳에서 촬영하며 서울을 새롭게 보여주었다는데, 영상미 역시 후한 점수를 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국 영화를 볼때마다 느끼는 것은 우리 영화계가 왜 시나리오 작가를 키우지 않느냐는 것이다. <밀양> 역시 이청준의 소설에서 일부를 차용한 것이다. 소설가들이 있으니 영화 시나리오는 대충 만들어도 된다는 것인가. 영화를 보고 나니 배우 전도연이 아깝다. 9월2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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