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고 보자' 단속, 변종만 낳고 '맴맴'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8.09.30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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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동을 기점으로 시작된 경찰의 성매매 단속 국지전이 전면전으로 확대되었다. 하지만 전략도 없이 덤비는 경찰을 비웃듯 신.변종 성매매 업소들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경찰의 '선전'은 또다시 풍선 효과만
 ⓒ시사저널 임영무
 

































우리나라 성 산업의 세포분열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남성들이 성매매에 지출한 금액이 무려 14조원이라고 한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약 1.7%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우리나라 성인 남성(20~65세까지) 1인당(약 1천5백3십9만5천명, 2005년 기준) 약 9만원을 지출했다는 계산이 된다. 물론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음성적인 성매매까지 포함한다면 실제 금액은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추정된다.

성 산업의 원조격인 집결지는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되면서 급격하게 쇠락하고 있다. 당국의 단속과 규제가 심한 데다 집결지를 찾는 성매매 남성들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에 반해 신·변종 성매매 업소나 유사 성매매 업소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한쪽이 부풀어 오르는 ‘풍선 효과’ 때문이다.

집결지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국세청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전국에 있는 집결지는 모두 무허가 불법으로 운영되고 있다. 행정적으로 따지면 유령 업소인 셈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이곳에서 사용된 금액 중 상당수는 지하 자금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아가씨들이 받는 화대도 세금과는 무관하다.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되기 이전에만 해도 전국 집결지에서는 어마어마한 지하 자금이 유통되었다. 지금도 집결지에는 사채업자가 중간에 낀 그들만의 지하 경제가 형성되어 있다. 집결지에서 사용되는 카드는 불법 카드깡을 통해 결제되고 있다. 카드 명세서에 ‘옷가게’ ‘미용실’ 등으로 찍혀 나오는 이유이다.

집결지가 한창 호황일 때는 1년에 업소 평균 3억원의 매출은 거뜬히 올렸다고 한다. 집결지 한 곳당 업소 100개를 기준으로 할 때 연간 3백억원의 ‘묻지마 자금’이 지하 세계로 흘러간 셈이다. 서울 지역만 하더라도 연간 1천여 억원에 이른다. 당시는 아가씨들에 대한 착취, 성매매 강요 등이 일반적인 형태여서 성매매 수입금은 거의 전부 업주들의 몫이었다. 업주들의 이익 뒤에는 ‘성매매 여성들의 노예 같은 생활’이 있었던 것이다. 준 재벌급에 해당하는 업주들도 상당수 있었다고 한다.

성매매가 호황을 누리면서 각종 이권이 개입되었다. 사채업계의 큰손들과 폭력 조직 등의 영향력도 막강했다. 업주들과 결탁하며 이권에 끼어든 경찰도 있었다. 폭력 조직은 업소들을 관리 대상으로 삼거나 직접 업소를 운영하면서 자금줄로 만들었다.

▲ 서울 강남 르네상스호텔 뒤편에는 안마시술소들이 밀집해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집결지 지역 대부분 재개발 예정…2년 후에는 절반 이상 감소 예상

그러나 2004년을 전후해 집결지는 와해되기 시작했다. 행정 당국의 대대적인 단속이 시작되자 폐업하는 업소들이 속출했다. 서울 시내 집결지 대부분에서 2000년과 비교해 60% 정도가 문을 닫았다. 영등포역과 인접해 있던 신길동 텍사스촌의 경우 1997년 9월에 검찰이 45개 업소 전부를 강제 폐쇄 조치했다. 지난 2000년에 1백70곳이던 천호동 텍사스촌은 36곳 정도만 남아 있다. 청량리 588도 30곳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집결지 내에서 고용인과 피고용인이던 업주들과 아가씨들의 관계도 달라졌다. 업주와 아가씨가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인 ‘파트너’ 관계로 바뀌었다. 업주와 아가씨의 분배 구조는 5 대 5가 보편적이고, 업주들의 수입은 4분의 1 수준으로 토막났다. 국내 최대 집결지 중 하나인 파주 용주골에 있는 업소의 수익 구조를 살펴보자. 현재 용주골에는 총 1백20개 업소가 있으나 제대로 영업을 하는 업소는 64곳 정도이다. 업주 서 아무개씨는 2층 건물을 월세로 임대해서 아가씨 2명을 두고 있다. 아가씨 1인당 하루 평균 40만원의 수익을 올리는데 한 달에 26일을 일한다. 서씨가 운영하는 업소의 한 달 총 수입은 2천80만원이다. 아가씨와 5 대 5 수입 분배 원칙에 따라 1천40만원을 주고 나면 나머지 절반이 남는다. 여기에다 월세 2백만원, 부식비 100만원, 주방 이모 월급 100만원, 기타 비용 100만원을 빼면 서씨가 가져가는 돈은 5백40만원 정도라고 한다. 물론 자기 건물을 소유하고 있느냐와 아가씨의 숫자에 따라 수입은 달라진다.

▲ 지난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후 경찰이 집결지를 급습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으로 2년 뒤에는 전국에 있는 집결지 중 절반 이상이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집결지가 있는 지역 대부분이 재개발 지역으로 확정되면서 철거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성북구 하월곡동(미아리 텍사스촌) 일대 5만㎡는 기존 성매매 업소들이 철거되고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 청량리 588과 천호동 텍사스는 균형발전촉진지구(뉴타운)로 지정되어 2010년까지 단계적으로 철거된다.

여성단체들은 “성매매 집결지의 개발 이익을 건물주와 업주가 가지면 안 된다. 개발 이익을 환수하는 법안을 마련하라”라고 촉구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업주ᆞ여성들 “다시 성매매업 하겠다” 이구동성

그렇다면 집결지를 떠난 업주들은 어디로 흘러갈까. 업주들과 성매매 여성 종사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10명 중 9명은 다시 성매매와 관련된 일을 한다. 이번에 경찰이 성전을 벌였던 진원지였던 서울 장안동의 안마시술소 업주들 가운데는 ‘청량리 588’에서 돈을 번 업주들이 많았다고 한다. 결국 집결지로 모여들던 성매매 관련 자금이 신·변종 업소들로 분산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상 성 산업 규모는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음성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집결지가 개발 지역으로 탈바꿈하고 폐쇄되어도 업주들과 아가씨들은 장소를 옮겨 성매매에 종사할 것이 뻔하다. 이들 중 일부는 새로운 집결지를 찾아가기도 하겠지만 대다수는 신·변종 성매매업에 종사할 것으로 보인다. 기자가 만난 집결지 업주들과 성매매 여성들도 한결같이 “다시 성매매업을 하겠다”라고 말했다.

한터전국연합 이차성 천호지부장은 “2000년 이전에는 집결지에서 돈을 번 업주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모두 빠져나갔다. 그 업주들이 시내로 나가서 안마시술소나 사행성 오락장 등을 차렸다. 영세한 업주들은 자금이 덜 드는 이발소나 마사지 업소 등을 여는 경우가 많다. 아가씨들은 안마시술소 등으로 옮겨가기도 하지만, 요즘에는 오피스텔이나 고시텔을 전세나 월세로 들어가서 인터넷을 통해 성매매를 한다”라고 말했다.

전통적인 집결지가 쇠퇴하면서 지하 경제도 새로운 시장으로 옮겨갔다. 서울 시내에서 안마시술소나 룸살롱을 창업하려면 10~50억원은 있어야 한다. 강남 지역의 경우 연간 1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안마시술소나 룸살롱이 수두룩하다. 이들 룸살롱의 경우 보통 100여 개의 룸과 80~200여 명의 접대 여성들을 거느리고 있다. 여기에서는 소득 누락 등의 방법으로 공공연하게 탈세가 이루어진다. 룸살롱에서 성매매(2차)를 하기 위해서는 술값과는 별도로 보통 20~30만원을 지불해야 한다. 집결지 성매매 여성들이 한 달에 5백~6백만원을 번다면, 룸살롱에서 일하는 접대 여성들은 최소 1천만~2천만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경찰은 이번 성전을 벌이면서 룸살롱이나 일부 호텔 사우나 같은 기업형 업소는 전혀 손을 대지 못했다. 안마시술소나 사행성 오락실 등도 일부 지역에서만 단속이 이루어졌다. 그나마 업주들이 ‘소나기 피하기’ 식의 휴업으로 맞서 변죽만 울린 꼴이 되었다.

동대문 장안평만 보더라도 단속이 가장 심했던 지역인 장안평역 5번 출구 인근에 있는 ㅆ안마는 9월23일에도 불을 훤히 밝힌 채 영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출입문을 지키고 있던 직원은 “영업하느냐”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한다”라고 답했다. 주변에 있는 룸살롱이나 마사지 업소는 환하게 불을 밝힌 채 손님을 받고 있었다.

서울 강남도 단속의 허점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지난 9월24일 저녁 8시께 강남구 역삼동 르네상스 호텔 뒤의 명암은 극명하게 달랐다. 대형 안마시술소인 ㅁ·ㅎ·ㅇ·ㅋ 안마 등은 경찰의 단속을 의식해서인지 불이 완전히 꺼져 있었다. 이들 안마시술소의 출입문에는 ‘내부 수리 중’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내부 수리 중’이라는 말은 ‘곧 문을 열겠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지상은 암흑을 방불케 하는 데 반해 지하 룸살롱은 여전히 성업 중이었다. 일명 ‘나가요 걸’로 불리는 접대부들이 쉴새없이 들락거렸고, 손님들의 발걸음도 여전했다. 큰길 모서리에 자리 잡은 관광호텔급의 ㅌ호텔에는 검은 승용차들이 20~30분 간격으로 멈추었다가 빠져나갔다. 승용차가 멈출 때마다 남녀가 나와 호텔로 들어갔다. 인근 룸살롱에서 2차(성매매)를 나가는 손님과 접대부들이다. 이들은 주위를 크게 의식하지 않고 곧바로 호텔로 향했다. 이런 현상은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영등포 당산동에 있는 마사지 업체들은 편법으로 영업을 하고 있었다. 손님이 없을 때는 영업을 알리는 회전등을 켜놓았다가 손님이 들어가면 회전등을 끄고 문을 잠궜다. 서울 시내에 있는 신·변종 성매매 업체들도 대부분 경찰의 단속을 비웃기라도 하듯 영업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경찰의 주먹구구식 단속에 결국 이명박 대통령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이대통령은 “무차별적 단속으로 인한 민생 피해가 없도록 하고, 조직폭력 등 민생사범 단속에 주력하라”라고 지시했다. 이대통령의 이같은 말은 ‘단속 중지’가 아닌 ‘수위 조절’을 주문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성매매 단속을 지속하되 생계형보다는 기업형을 단속해 자금줄을 차단하라는 뜻이다.

경찰 관계자 “갑작스레 전쟁 벌이게 되어 우리도 당황스럽다”

경찰은 당초 성전을 벌일 계획이 없었다. 이중구 동대문경찰서장이 관내 안마시술소와 사행성 오락장을 집중 단속하고 시민들의 높은 호응을 받자 갑자기 전선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일선 경찰서 여성청소년계 담당자들도 “동대문경찰서가 성매매 단속을 집중적으로 하기 전에는 상부의 지침이 따로 없었다. 갑작스레 성매매와의 전쟁을 해서 우리도 당황스럽다”라고 말했다. 쉽게 말해 경찰의 성전은 국지전이 전면전으로 확대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전략이 없는 상태에서 전술이 앞선 꼴이 되었다.

김강자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객원교수(전 서울 종암경찰서장)는 “전국적으로 성매매 단속을 하기에는 경찰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최초 성매매 전쟁이 단추를 잘못 꿰는 바람에 음성적인 성매매 업소만 늘어났다. 집결지와 같은 개방형 성매매 업소를 먼저 칠 것이 아니라 술집, 퇴폐 이발소, 룸살롱 같은 음성적인 성매매 업소를 단속해야 했다”라고 말했다.

경찰도 자체 사정을 강화해야 한다. 최근 5년간 뇌물수수로 징계받은 경찰관 6명 중 1명은 성매매나 유흥업주로부터 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단속 정보를 미리 알려주고 뇌물을 받았다. 안마시술소에 지분을 투자하고 업주와 이익금을 나눠 가진 경찰관도 있었다. 경찰은 그동안 제 식구 감싼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뇌물을 받은 경찰이 있다면 자기 살을 도려내는 심정으로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성을 사고파는 행위는 없어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정부의 무원칙·무대책 단속은 성매매를 없애기는커녕 오히려 단속 사각지대만 확대시키고 말았다. 정부는 김강자 교수의 말에 귀를 귀울여야 한다. 음성적 성매매를 차단하고 집결지 여성들에 관한 대책을 세웠어야 한다. 앞뒤 가리지 않고 전시 효과를 노린 단속은 전국 주택가를 성매매로 오염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찰도 음성적으로 이루어지는 기업형 성매매 업소에 대한 단속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기업형 성매매 업주들과 결탁한 폭력 조직과 사채업자들의 자금줄을 차단하는 것도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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