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뭉치돈 '조폭'은 또 왜?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8.09.3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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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직원이 1백80억원 떼일까 봐 무리수 "상속받았다" "비자금 아니다" 아리송
▲ CJ그룹측은 이재현 회장이 상속받은 재산은 없었다고 밝혔다. ⓒ시사저널 임영무
지난 3월 새 정부 출범 직후. 대한민국 전역을 뒤덮었던 ‘삼성 비자금 폭로’ 파문은 특검 수사의 마무리와 함께 서서히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서울 태평로 삼성그룹 본사가 한숨을 돌리는 순간, 이웃한 한편에서는 여전히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은 채 숨죽이며 특검과 검찰의 행보를 예의주시하는 눈빛이 있었다. 남대문로의 CJ 본사 건물이었다. 특검 사무실 주변에서는 특검 수사 종료 후 검찰이 추가 수사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그 타깃이 범삼성가(家)에 해당하는 CJ와 신세계 등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성 비자금의 저수지가 방계 그룹으로까지 뻗어 있는 정황을 포착했으면서도 특검이 수사 범위의 한계를 이유로 더 이상 수사를 확대하지 않고 있다는 비난이 비등했다.

특히 주목받는 곳은 CJ였다. 범삼성가에서 CJ가 갖는 위상 때문이었다. 숙질 간인 삼성 이건희 전 회장과 CJ 이재현 회장을 은근히 경쟁 삼아 대비시키며 이른바 ‘삼성 왕조’의 적통을 논하는 세간의 이야기꾼들이 부풀린 탓도 있지만, 알게 모르게 재계 주변에서 양측 간의 긴장 관계는 하나의 실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이 장자인 이맹희씨 대신에 삼남인 이 전 회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넘겨준 탓에 삼성가는 두 개의 봉우리가 생겼다. 대외적으로는 그룹을 승계한 이 전 회장과 그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적통으로 통하지만, 집안 내에서는 여전히 이맹희씨의 장남 이재현 회장이 장손으로서의 위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병철 회장의 장례식 때 영정 사진을 들고 앞장 선 사람도 이재현 회장이었다.

“고 이병철 회장이 적지 않은 재산 주었을 것” 소문

지난 삼성 특검에서 드러난 상당한 재산의 성격을 두고 이 전 회장이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상속 재산이라고 주장하면서, 눈길은 자연스럽게 이재현 회장에게도 쏠렸다. 고 이병철 회장의 성향이나 장손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감안했을 때 드러나지 않은 상당한 유산이 장자의 몫으로 넘어갔을 것이라는 추측에서였다. 경영권을 놓친 보상 심리가 작용했다면 상당한 액수가 될 것이라는 소문도 불거졌다. 그런 성격의 돈이 실제 CJ그룹 내에서 비자금 성격으로 보관되고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무성했다. 하지만 당시 CJ측은 이런 소문을 강력하게 부인했다. “창업주와 이맹희씨 사이에 관계가 나빠진 탓에 상속받은 유산은 전혀 없다”라는 입장이었다. 특검 수사 당시 시민단체들은 “이맹희·이재현 부자나 이명희 신세계 회장(고 이병철 회장 차녀) 등을 소환해 조사하면 이병철·이건희 회장 부자의 비자금 조성 규모나 방법 등이 드러날 것이다”라며 조사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런 목소리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거대한 둑은 때로는 전혀 예상치도 않았던 엉뚱한 곳에서 조그만 균열에 의해 터지기도 한다. 특검 수사 종료와 검찰의 무대응으로 남대문로 역시 긴장의 끈이 완연히 풀리던 4~5월 무렵. 검찰이 아닌 경찰에서 CJ의 계좌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CJ의 한 직원이 조폭에게 청부 살인을 의뢰했다가 실패했다는 첩보가 입수된 것이다. 오랜 기간 수사를 펼치던 서울지방경찰청은 9월24일 “CJ의 재무담당 부장급 인사인 이 아무개씨가 투자 명목으로 회사 자금 약 1백80억원을 조폭 출신인 박 아무개씨에게 건넸다가 돈을 떼일 위기에 처하자 다른 조폭을 동원해 박씨를 두 번씩이나 살해하려 한 정황이 드러났다”라고 밝혔다. 문제는 이 돈이 바로 이재현 회장의 개인 돈이라는 것이다.

▲ 삼성 특검을 이끌었던 조준웅 특검(맨 오른쪽)이 한남동 특검 사무실에서 '삼성 비자금 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시사저널사진
CJ측은 뜻하지 않은 악재 돌출에 비상이 걸린 모습이다. 모든 역량을 “회사의 비자금은 아니다”라는 쪽으로 집중하고 있다. CJ의 한 관계자는 “그 돈은 삼성가의 장손인 이회장이 고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주식 형태로 상속받은 것이다. 회사 자금이 아닌 이회장 개인 돈이기 때문에 비자금은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물론 이런 해명도 지난 특검 당시 “상속분이 전혀 없다”라고 했던 주장과 정면 배치되지만 현재로서는 그 상황까지 염두에 둘 겨를이 없는 듯하다. 이 관계자는 “회사 차원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지난 7월께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투자 실패인 줄 알았다. 이씨가 그 전부터 자신의 선에서 투자한 돈을 다 회수하려고 모색하다가 조폭까지 끌어들이는 무리수를 쓰면서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하지만 우리도 엄연히 이씨로 인해 돈을 잃은 피해자의 입장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런 CJ측 주장에 공감하는 분위기는 별로 없어 보인다. “설사 이회장이 선대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이라 하더라도 국세청에 신고해서 세금을 내지도 않고 감춰온 돈이라면 비자금과 다를 것이 뭐가 있느냐”라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개인 견해라는 전제 하에 “그 돈이 그룹 직원들의 명의로 수십 개의 차명계좌로 존재해왔고, 회사 재무팀의 팀장이 관리해온 점으로 볼 때 전형적인 기업 비자금의 성격과 유사하다. 수사가 시작된 이후인 지난 8월에 CJ측이 서둘러 세무당국에 신고하고 세금을 납부한 점도 의심이 가기는 마찬가지이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에 대해 CJ측은 “신고는 원래 지난 삼성 특검 이후에 하려고 했으나 준비가 좀 늦어지면서 8월에 하게 되었다. 차명계좌로 존재한 것은 일종의 관례적 성격이 있다”라고 해명했으나, 역시 군색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의혹은 이씨의 회사 내 위상에도 쏠린다. 이씨가 아무리 재무팀의 부장이라고는 하나 사건 당시 30대 후반의 나이에 임원도 아닌 일개 부장으로서 어떻게 회장 개인 소유라고 하는 그 많은 돈을 혼자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CJ측은 이번 사건을 철저히 한 부도덕한 직원의 공금 유용 욕심으로 몰아가려는 분위기이다. CJ측은 “항간에 이상한 루머가 떠도는데, 이회장과 이씨는 절대 혈연 관계도 아니고 아무런 특수 관계에 있지 않다. 다만 미국 유명 대학의 MBA 출신으로 이회장의 신임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신임을 믿고 이씨가 말도 안 되는 욕심을 낸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일개 부장이 그런 거금을 주물렀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과연 이회장이나 회사측에서 전혀 몰랐을까 하는 점이 의문으로 떠오른다. 아무리 이씨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관리한다고 해도 계좌에서 돈이 들고 나가는 것이 나중에 뻔히 드러날 텐데 이씨 혼자서 독단적으로 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돈의 성격을 간파한 이씨가 회사에서 함부로 못할 것으로 알고 대담하게 개인적으로 유용한 것이 아닌가 보고 있다. 사건에 대한 의문점도 계속 제기되는 상황이다. 돈을 찾는 것이 급선무가 되어야 할 이씨가 왜 박씨를 그토록 집요하게 개인 돈 수억 원을 써가면서까지 살해하려 했는가 하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혹시 이씨 입장에서는 돈을 찾는 목적보다는 그 돈의 성격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폭로하겠다’라며 협박을 일삼은 박씨를 죽이려 한 것이 아니냐”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재계 서열 20위권인 CJ는 그 규모 면에서는 삼성과 비교가 안 되지만 비교적 순탄한 성장과 무난한 행보를 보인 탓에 “오히려 삼성보다 더 ‘삼성스러울’ 정도로 조직 관리가 뛰어나다”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지나친 자만이 화를 낳았을까. 이회장은 바로 밑에 있던 최측근에 의해 허를 찔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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