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 태산인데 자리는 아슬아슬
  • 일본·임수택 편집위원 ()
  • 승인 2008.09.30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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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소 신임 총리, 경제 살리기 외에도 현안 산적…총선 결과에 따라 희비 갈릴 가능성

▲ 일본의 아소 다로 신임 총리가 내각 인사들과 함께 관저를 나서고 있다. ⓒAP연합

지난 9월22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네 번의 도전 끝에 아소 씨(68)가 67%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총재로 선출되어 9월24일 제92대 일본 총리에 임명되었다. 후쿠다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이후 고이즈미 전 총리가 지원한 고이케 전 방위청 장관 등의 선전을 기대하는 여론도 있었으나 일찌감치 아소 씨의 승리가 확정되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보았을 때 아소 총리의 주변 환경은 압승의 분위기를 맛볼 여유가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현안이 산적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경제 살리기이다. 아소 총리 자신이 “일본 경제는 전치 3년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경제 문제가 심각하다. 따라서 그는 향후 정국 운영에서 경제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아소 총리는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도 경기 활성화를 주장해 재정 건전화를 주장한 다른 후보와 정책적으로 분명히 차별화했다. 그리고 감세 정책을 통해 내수를 활성화시켜 경기를 진작시키겠다고 표명했다. 현재 처해 있는 경기 침체를 극복하고자 하는 즉각적인 조치이다. 그는 “미국은 대공황에 필적하는 금융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일본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국내 수요를 일으켜야 한다”라고 말했다. 즉, 경기를 살린 후 재정을 재건하고 경제 구조를 개혁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혁이 후퇴하는 인상을 주어 일본 주식 매도 러시와 더불어 정치 혼란이 심각해진다면 일본 경제는 1990년대 버블 붕괴처럼 장기 침체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제 문제 이외에도 농약에 오염된 쌀의 불법 유통 문제, 연금 기록 누락 문제, 후기 고령자 의료 제도, 인도양에서의 해상자위대 급유 활동 문제, 공조 체제가 원활치 못한 공명당과의 관계 등 문제가 산적해 있다. 정국 운영에서 난맥상을 보이는 자민당을 향해 야당인 민주당은 임시국회를 벼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당면 문제보다도 근본적이며 심각한 문제는 바로 정치 불신이다. 아베·후쿠다 전 총리들의 총리직 중도하차로 자민당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과 불신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내년 9월까지 1년 정도의 잔여 임기가 남은 아소 총리가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할지 여부는 다가오는 총선 결과에 달렸다. 아소 총리가 이번 자민당 선거에서 총재로 선출된 이유는 총선에서 민주당의 오자와 후보를 대적할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심할 정도는 아니다. 이번 선거 후 자민당 내부에서는 총재 선거를 통해 자민당이 국민에게 크게 다가가지 못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자민당의 한 관계자는 “지금 당장 선거에 나서면 이길지도 모르겠고 질지도 모르겠다”라며 불안감을 나타냈다. 이에 반해 과거 어느 때보다도 정권 교체의 가능성이 커진 민주당은 오자와 이치로 대표를 다시 선출해서 정권 교체를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아소 총리로서는 국회 해산과 총선거 실시는 피할 수 없는 문제이며 정면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총선거는 임시국회 후인 11월 초에 실시될 가능성이 크다. 오는 총선거는 그 의미가 과거 어느 때보다 크다. 일본은 의원내각제이기에 국민이 국회의원을 선출할 수는 있지만, 직접 총리를 선출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번 총선거에서는 국민이 총리를 교체할 수 있는 기회이다. 이는 메이지 유신 이래 일본 헌법상 처음 있는 일이다. 과거의 정권 교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1947년 카타야마 사회당 정권이나 1993년 호소가와 비자민당 정권은 총선 후 작위적인 연립에 의해 이루어졌다. 즉, 유권자가 직접 지명한 것이 아니었다. 오는 총선거에서 아소 총리가 승리하면 안정적으로 정권을 이어갈 수 있겠지만, 패배하는 경우 자민당 정권은 민주당으로 교체되고 민주당에서 총리가 나온다.

총선에서 패배하면 민주당으로 정권 넘어가

아소 총리가 자민당 총재로 선출된 후에도 그리 환한 미소를 짓지 않았던 이유는 다가오는 중의원 선거에서 과반 확보에 실패할 경우 본인의 총리직은 물론 자민당의 존망과도 이어지는 위기를 맞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승리한다면 안정적인 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

사생결단을 위해 당과 내각의 진용도 선거 체제로 짰다. 당의 경우 선거 박사로 통하는 호소다 히로유키 씨를 간사장으로 임명했다. 후쿠다 시절의 주요 당직을 가능한 한 유지해 당내 계파 간 불협화음을 사전에 차단했다. 내각에서는 경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기 위해 일찍이 아소 총리를 지지해온 측근인 나카가와 쇼이치 의원을 금융 겸 재무 장관으로 임명해 경제 및 금융에 대해 전권을 부여했다. 세습 정치인들과 여성 정치인 기용도 눈에 띈다. 특히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의 딸인 34세의 오부치 유코를 소자화(少子化 : 아이를 적게 낳는 것) 담당상으로 전격 발탁해 여성과 젊은이들의 표심에 기대를 걸고 있다.

아소 총리는 산적한 국내 문제와 11월에 있을 총선거로 인해 당장은 외교 문제에 신경 쓸 여력이 없어 보인다. 그는 그동안 “창씨개명은 한국인이 원한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문제 삼는 나라는 한국과 중국뿐이다”라는 망언으로 우리들의 분노를 샀으나, 외무장관이 된 이후에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중지하고 양국의 우호 관계를 배려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번 내각 조각에서는 친한파인 나카소네 히로후미 의원을 외무장관으로 발탁해 한국과 주변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인사를 하기도 했다. 나카소네 외무장관은 “미·일 동맹을 축으로 해서 한국과 중국 등 주변 국가와의 관계를 중시해 가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7월 중학교 새 교과서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 문제’를 넣어 마찰을 일으켰던 일본 정부는 10월 고교 교과서 해설서에도 같은 내용을 포함시킬 것으로 보여 아소 체제의 한·일 관계가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게다가 자민당의 제2인자인 간사장 호소다 히로유키 씨가 그동안 독도 영유권 주장에 앞장서온 시마네 현 출신으로 한·일 간의 영토 문제 불씨는 언제 다시 발화될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아소 정권 하의 한·일 관계를 쉽게 예단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오는 11월 예상되는 총선거의 향배에 따라 일본 정국은 물론 주변국과의 관계도 크게 소용돌이 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바야흐로 자민당과 민주당의 ‘적벽대전’의 막이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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