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이고 또 꼬이고 도무지 답이 없네
  • 조홍래 편집위원 ()
  • 승인 2008.09.30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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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파키스탄 자살 폭탄 사태로 ‘테러와의 전쟁’ 곤혹

지난 9월20일 토요일 저녁 8시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 중심가에 있는 메리어트 호텔에서 큰 폭발이 일어나 53명이 죽고, 2백여 명이 부상했다. 대량의 폭약을 실은 트럭이 호텔로 돌진하는 바람에 주로 외교관과 요인들이 애용하는 5층 호텔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일설에는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파키스탄 신임 대통령이 이 호텔에서 각료들과 함께 만찬을 할 계획이었으나 마지막 순간에 일정을 바꿔 화를 면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파키스탄 정권이 붕괴될 뻔했다. 자살 폭탄 테러는 도처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미국계의 메리어트 호텔 체인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마치 7년째로 접어든 ‘테러와의 전쟁’을 조롱하는 것 같다. 부시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테러와의 전쟁은 성공도 실패도 아닌 미궁에 빠져든 셈이다.

▲ 미국이 파키스탄 내 테러와의 전쟁에서 실패한 이유는 민심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위는 성조기를 태우는 파키스탄 국민. ⓒEPA

파키스탄 정보국과 경찰은 사건 배후로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지목했다. 이들의 목적은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 협조하는 파키스탄 정부를 무력화시킨 후 북부 아프가니스탄 접경의 부족 지역에서 동조 세력을 확대하고 궁극적으로 미국을 궁지로 몰아넣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미국에 9·11에 버금가는 치욕을 안겨주려는 속셈이다.

탈레반은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이 소련군을 몰아내는 데 이용하려고 만든 무장 저항 조직이다. 이 당시 인도와 긴장 관계에 있던 파키스탄은 인도를 견제하기 위해 탈레반 탄생을 지원했다. 바로 그 조직이 오사마 빈 라덴이 만든 테러 조직 알카에다와 결탁해 미국 호텔을 공격했다. 이 기구한 역사의 아이러니 앞에서 미국과 파키스탄은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알카에다 건재 과시하는 메시지

메리어트 호텔 공격은 부시에 대한 경종이다. 또한 알카에다의 건재를 과시하는 대담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폭탄 트럭이 미국의 목표물을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라고, 이슬라마바드 주재 미국 대사관 대변인은 말했다. 그러나 메리어트 호텔이 미국을 상징하는 호텔 체인점임을 감안하면 간접적으로 미국에 대한 증오를 드러낸 것이다. 경비가 심하지 않았다면 미국 대사관을 노릴 수도 있었다. 이 사건은 또한 자르다리 대통령이 1주일 후 뉴욕에서 유엔총회에 참석하던 중 부시 대통령과 만나기로 되어 있었던 일정과 무관하지 않다.

자르다리는 취임사에서 전임 무샤라프 대통령의 정책을 이어받아 파키스탄 북부에서 준동하는 알카에다와 탈레반에 대한 소탕 작전을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이것만으로도 테러 조직의 미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부시는 기름을 붓는 조치를 취했다. 부시 행정부는 8월 중순부터 파키스탄에서 테러 조직 섬멸을 위한 특수 작전을 시작했다. 사전에 파키스탄 정부와 협의하지 않고, 미국 독단으로 파키스탄 북부 지역에서 대테러 작전을 벌였다. 9년간의 군사통치 끝에 가까스로 등장한 파키스탄 민간 정부는 이를 묵인했다. 공습과 지상 전투가 병행된 전투에서 테러 분자보다는 민간인 피해가 더 많이 났다. 미국의 전쟁 때문에 애꿎은 파키스탄 사람들이 죽었다.

외교관들은 이 특수 작전을 미국의 파키스탄 ‘침공’으로 표현한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 이어 세 번째 침공인 셈이다. 그럼에도 테러와의 전쟁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미국은 9·11 이후 무샤라프 정부에 100억 달러를 지원하면서 알카에다와 탈레반 소탕을 부탁했다. 그러나 무샤라프는 돈을 받고 테러 소탕은 하는 척만 하다가 부패와 폭정에 따른 탄핵 위기에 몰려 8월 중순 사임했다. 부시 행정부는 후임 자르다리 정부에 다시 75억 달러의 원조를 제공해 대테러 작전을 독려할 예정이다.

미국의 파키스탄 침공은 1970년대 캄보디아 침공을 연상시킨다. 캄보디아 작전은 베트남 전쟁이 교착되었을 무렵 캄보디아를 통하는 호치민 루트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루트를 통해 들어오는 무기 등 군수품 보급만 중단시키면 승리할 줄 알았다. 캄보디아 진격은 미국이 세운 친미 정권의 붕괴와 그에 뒤이은 대량 학살 ‘킬링필드’로 비극적 막을 내렸다. 지금의 상황은 이름이 캄보디아에서 파키스탄으로 바뀌었을 뿐 여러 면에서 너무나 흡사하다. 파키스탄 내에서 미국의 특수 작전으로 나온 결과는 극심한 반미감정과 자르다리 정부의 정치적 위기 그리고 현지 근본주의자들의 세 확장이 전부이다. 무샤라프 전 대통령 시절, 부시는 미국을 대신해 테러 조직 분쇄를 당부하면서 만일 여의치 않으면 미군이 직접 파키스탄에 들어가 그 일을 하겠다고 협박했다. 그 협박이 지금 현실로 나타났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오바마와 매케인도 같은 입장이다.

파키스탄 군부 “침공 계속되면 미군에 총부리” 위협

▲ 자살 폭탄 테러로 불타고 있는 메리어트 호텔. ⓒEPA
미국의 입장에서는 직접 파키스탄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절박한 사정이 있기는 하다. 아프가니스탄 내 미군과 나토군은 아무리 탈레반을 소탕하려 해도 이들이 파키스탄 내 안전 지대로 도피하는 바람에 더 이상 추격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나온 것이 파키스탄 침공이다. 그러나 40년 전의 캄보디아 침공처럼 당초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불행한 결과만 나오고 있다. 파키스탄 군부는 미군이 다시 일방적 작전을 벌이면 미군을 향해 발사하겠다고 위협한다. 이것이 본심인지 국내 여론 무마용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자칫하면 미군과 파키스탄 간에 무력 충돌도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부시가 파키스탄 내 특수 작전을 승인한 심중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뉴욕타임스에 의하면 마이크 뮐렌 미 합참의장은 이달 초 특수 작전 말고는 아프가니스탄 작전을 성공시킬 수 없다고 고백했다. 파키스탄군의 지지부진에 대한 그의 실망감은 이해될 만하다. 그러나 부시와 그의 참모들은 파키스탄 사정을 먼저 고려했어야 했다. 이들의 오판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 메리어트 호텔 폭파이다. 파키스탄 정부와 국민들의 마음을 먼저 얻었어야 한다는 말이다. 특수 작전을 통해 탈레반이나 알카에다 수괴들을 체포했다면 일각의 비난은 감수할 만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파키스탄 내 테러작전은 파키스탄에 맡기고 미국은 파키스탄의 경제 건설 지원 등에 주력해야 옳았다는 것이 미국 여론이다. 만일 특수 작전을 계속하다가 파키스탄 국경 양쪽에서 민간인 피해가 더 늘어나면 반감을 품은 다수의 사람들이 탈레반이나 알카에다 조직에 동화될 수 있다. 이런 사태는 겨우 한 달 전에 출범한 자르다리 정부를 약화시켜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그는 민선 대통령이기는 하나 정치 경험이 부족하고 부패에 연루되어 국민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얻지는 못했다.

9·11 7주년을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설상가상으로 금융 위기까지 겹쳤다. 테러와의 전쟁을 반드시 승리로 마감하겠다는 부시의 약속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유일 초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의 위상은 마구 흔들린다. 심지어 이대로 가다가는 약 100년 후에 미국이 망할지도 모른다는 예측도 나왔다. 바로 이 순간에 알카에다는 미국의 상징물을 공격했다. 9·11과 미국의 금융 위기를 동시에 연결시켜 보면 하나의 답이 나온다. 즉, 미국의 가치와 이익이 이 세상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논리는 환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빈 라덴은 시커멓게 탄 메리어트 호텔을 보고 웃을 것이고, 지하의 마르크스는 월스트리트의 붕괴를 보고 웃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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