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상황 극복 못하면 공멸할 수도”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8.10.0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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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민 사태 ‘불똥’ 식품업계 전반으로 확산 소비자 불안 심리 지속돼 매출 큰 폭 하락
▲ 멜라민 사태 이후 대형 마트의 과자 코너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사진 유종현

중 국산 멜라민 사태로 촉발된 먹을거리 파동이 일파만파로 확산되자 식품업계 CEO들이 진화에 나섰다. 박승복 식품공업협회 회장(샘표식품 회장) 등 주요 식품업체 CEO들로 구성된 ‘CEO 특별위원회’는 지난 10월2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긴급 회동을 갖고 대책을 논의했다.

이상욱 식품공업협회 홍보출판팀장은 “참석 CEO들은 멜라민 사태가 소비자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파장이 더 커지지 않도록 회의 자리에서 다양한 방안을 논의했다”라고 설명했다.

사실 중국산 유해 식품 논란이 벌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거의 해마다 한 건씩 터지고 있는 ‘중국발’ 식품 파동에도 식품업계가 중국산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이를 수입하는 국내 기업의 사정과 깊은 관련이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식품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국산을 사용하지 않으면 수지가 남지 않는다고 앓는 소리를 한다. 식품업계가 중국산 식품의 위험성을 감수하면서까지 집착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멜라민 사태가 터지면서 일부 식품업체들이 중국산 원료의 수입을 중단하거나, 현지 공장 철수를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를 보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같은 조치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라고 지적했다.

식품업계가 그동안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던 데에도 이같은 ‘원죄론’이 작용하고 있다. 괜히 나섰다가 더 큰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현재로써는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라고 토로했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우리 회사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중국산 분유와 무관하다. 그러나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어 적극적인 홍보를 자제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식품업계에 최근 변화의 기운이 감지되고 있다. 더 이상 수수방관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로 치달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 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식품업계에는 현재 상황을 최대의 위기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경우는 과거와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해태제과(미사랑 카스타드), 동서식품(리츠 샌드위치크래커 치즈) 등 쟁쟁한 대기업 제품이 논란의 한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중국산 과자는 우리 실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CEO 위원회 “업계 공동으로 부적합 제품 회수 시스템 만들겠다”

▲ 10월2일 멜라민 사태 해결을 위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는 식품업계 ‘CEO 특별위원회’. ⓒ사진 유종현

일부 쌀과자 제품의 경우 프리미엄급의 가격을 내세운 국내 한 회사의 제품을 빼고는 거의 모두 중국산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제품일 정도로 중국 의존도는 높다. 대기업 제품을 신뢰해왔던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만큼 배신감이 더할 수밖에 없다. 향후 식약청 조사에서 추가로 멜라민 식품이 나올 경우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질 전망이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멜라민에서 촉발된 소비자 불신이 수입 제품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중국산 유가공 제품뿐만 아니라 위탁 생산 제품까지 대대적인 불매 운동에 휩싸이지 않을까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업계의 한숨소리는 식약청 조사 목록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더해지고 있다. 식약청은 처음 멜라민이 검출된 지난 9월24일까지만 해도 중국산 분유가 함유된 가공 식품으로 조사 대상을 한정했다. 그러나 현재는 중국 이외의 국가에서 수입한 유가공품이나 국산 분유, 심지어 중국산 분리대두 단백(콩단백질) 가공 식품에까지 조사를 확대하고 있다.

식약청측은 “국산 분유의 경우 처음에는 검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잠재우는 차원에서 검사를 진행한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같은 식약청의 태도에도 적지 않은 불만을 내비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불신감이 팽배한 상황에서 검사 항목을 늘릴 경우 소비자 불신만 키울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한결같은 목소리이다. 식약청의 조사 리스트가 ‘살생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국내 식품업계의 매출 하락률이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다. 롯데마트의 경우 멜라민 사태가 터진 지난 9월24일 이후 매출이 20% 가까이 감소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스낵류나 비스킷류의 경우 판매 감소율이 30%에 육박하고 있다. 이마트나 홈플러스 등 나머지 할인점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공식적인 집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매출이 10~15% 가까이 하락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 대형 마트의 자체 상품 가운데서도 일부는 중국산 위탁 생산 제품이어서 타격이 불가피할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과자류를 찾는 손님들이 포장 뒷면의 원산지 표기와 성분 표기를 유심히 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문제될 소지가 있는 제품은 이미 수거해 판매가 중지된 상태이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의 불안 심리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라며 울상을 지었다. “이대로 간다면 업계가 공멸할 수도 있다”라는 경고마저 나온다. 단가 맞추기에 급급한 채 제품 질 관리를 등한시했던 업계의 행태가 결국, 소비자의 불안을 키운 셈이다.

그래서일까. 지난 10월2일 회동에서는 소비자 신뢰 회복을 위한 조치가 발표되었다. 업계에서는 우선 회원사와 관련 유통업체 및 대리점 등이 연합한 긴급 회수 체계를 만드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지금과 같은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업계가 공동으로 부적합 제품을 회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라고 밝혔다.

외국에 공장이 있거나 OEM 방식으로 생산된 제품을 수입하는 상황과 관련한 대책도 내놓았다. 위원회는 해외 생산 공장에 대한 사전 관리를 위해 중국 등 현지에 정부 공인 민간 검사 기관을 설립할 예정이다.

영세 수입 업체 많은 탓에 해결 실마리 ‘묘연’

그러나 이에 대해 실효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영세한 수입 업체가 난립해 있는 상황에서 시스템이 정착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수입 업체의 수는 9월 현재 2만여 곳으로 집계되고 있지만, 대부분 직원 수가 1~2명에 불과한 영세 업체이다. 향후 시스템 정착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예상된다”라고 지적했다. 또, 이번사 건에서 드러났듯 업자의 이해와 소비자의 이해가 완전히 다름에도 ‘정부 공인 민간 검사 기관’ 설립이 관련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나오고 있다.

이번에 멜라민 사태가 터지자 해태제과나 동서식품은 직원들을 총동 원해 제품 수거에 나섰다. 그러나 소규모 수입 업체의 경우에는 사실상 이런 일을 기대하기 어렵다. 식약청도 최근 국내에 수입된 커피크림에 대해 검사를 실시하기 위해 수입 업체를 찾아갔다. 그러나 상당수 업체가 이미 폐업을 했거나 사무실을 비운 상태였다고 한다.

식약청 안팎에서는 폐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현재의 신고제를 허가제로 돌려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식품 제조업도 포함시켜야 하기 때문에 이마저도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국회에서도 여러 차례 입법을 추진했지만 업계 반발로 인해 번번이 물거품이 되었다. 황선옥 소비자시민모임 이사는 “단순히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대책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정부와 업계가 머리를 맞대 중국산 유해 식품에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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