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의 계절, 잘들 모였을까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08.10.06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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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국회, 여야 계파 따라 ‘어깨동무’ 한창…민주당은 영호남 대결 구도로 정체성 논쟁도

지난 9월29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서울 창천동에 위치한 한 식당을 찾았다. 당내 의원 모임인 여의포럼이 마련한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한동안 ‘칩거 정치’를 펼치기도 했던 박 전 대표는 자리를 함께한 초선 의원들에게 “국정감사에 최선을 다해달라”라고 당부했다.

▲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서울 창천동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친박계 연구 모임 ‘여의포럼’의 만찬에 참석해 의원들과 환담하고 있다. ⓒ뉴시스

다음 날인 9월30일에는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오랜만에 국회를 찾아 눈길을 끌었다. 총선에서 고배를 마신 후 대학 강단 말고는 모습을 잘 보이지 않던 김 전 장관은 이날 오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민주연대 발기인 대회에 참석했다. 김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는 반민주적 민간 독재 권력”이라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모임의 계절’이 돌아왔다. 대선과 총선을 연거푸 치르면서 어수선했던 정치권이 18대 국회가 서서히 자리를 잡자 ‘모임 정치’를 재개하기 시작했다. 지난 국회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던 모임들은 대부분 새로운 모임에 자리를 내주었고, 계파별 정치 성향에 따라 새롭게 ‘헤쳐 모여’를 시도하고 있다. 여·야가 뒤바뀌면서 모임의 성격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외부 강사를 초빙해 강의를 듣고 토론을 갖는 이른바 ‘공부 모임’ 열풍이다. 집권 여당의 의원으로서 현안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새로운 정책 개발에 머리를 맞대자는 것이 모임의 기본 취지이다.

하지만 구성원들의 면면을 살피면 여전히 계파 성격이 강한 모임들이 많다. 박 전 대표가 만찬에 참석했던 여의포럼은 총선에서 친박무소속연대로 당선되었다가 한나라당에 복당한 의원들이 주도하고 있다. 지난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박 전 대표의 공보지원총괄단장을 맡았던 유기준 의원과 김무성·이경재·이인기 의원 등 12명이 무소속 시절부터 모임을 가져왔으며, 한나라당에 재입당한 7월께에 여의포럼으로 확대시켰다. 이후 친박연대에서 복당한 의원들과 당내 친박 의원들까지 합류해 현재 23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한나라당은 외부 강사 초빙해 ‘공부 모임’ 열중

▲ 김근태 전 장관이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민주연대 발기인 대회’에 참석해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유정복 의원이 대표 의원으로 있는 선진사회연구포럼도 친박 모임으로 분류되고 있다. 포럼 관계자는 “친박 의원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목적은 애초부터 없었다”라고 밝혔지만, 경선후보 당시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유의원의 주도 하에 김선동·성윤환·이정현 의원 등 친박 의원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친박연대 원내대표로 있는 노철래 의원도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현재 정회원 17명에 준회원 22명을 더해 모두 39명의 회원이 활동 중이다.

그리스어로 ‘탁월함’을 뜻하는 ‘아레테’는 대표적인 친이명박 성향 의원들의 모임이다. 정두언 의원을 비롯해 강승규·성운·이춘식·조해진 의원 등 안국포럼 출신 11명이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출범한 안국포럼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대선 핵심 조직이다. 그런 만큼 아레테가 ‘인문학 공부’ 차원을 넘어 청와대와 당을 연결하는 정무 기능을 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친이계 최대 모임인 ‘함께 내일로’는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이 주도한 국가발전연구회 소속 의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심재철 의원과 최병국 의원이 공동 대표를 맡았고, 임해규·차명진의원 등 48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이 전최고위원과 김지사의 행보와 연관짓는 시각에 대해 두 공동 대표는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7월 중순 공식 발족한 모임은 9월21일 경기도 양평에서 1박2일간 워크숍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 채비에 들어갔다. 당내 최대 규모의 연구모임인 국민통합포럼은 상대적으로 계파색이 옅다. 지난 7월 중순 창립총회를 열고 공식 출범한 포럼은 안상수 전 원내대표가 회장을 맡고 있다. 현역 의원 83명과 원외 당협위원장 30명 등 총 1백13명이 가입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동안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 정종환 국토해양부장관 등 유력 인사들을 초청, 주요 현안에 대한 공개 토론회를 개최해 주목을 받았다.

강재섭 전 대표와 가까운 의원들이 모인 ‘동행’은 최근 공식적인 활동은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강 전 대표가 ‘정치적 휴식기’를 갖고 있는 상황이라 모임도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김성조 의원을 비롯해 권영세·이종구·이명규·정진섭·나경원 의원 등 강재섭대표 시절 주요 당직을 맞았던 인사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초선 의원들의 모임도 활발하다. 최근 종합부동산세 완화 문제를 놓고 정부 안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던 ‘민본21’이 대표적이다. 권택기·김영우·김성태 의원과 김선동·현기환 의원, 그리고 권영진·김성식·주광덕 의원 등 계파와 상관없이 개혁 성향의 초선들이 모였다. 민본21은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해 애정 어린 충고를 서슴지 않는다’라는 기조를 유지해나갈 계획이다.

초선 의원 모임은 이외에도 여럿 있다. 유일호 의원이 주축이 된 ‘이목회’는 박민식·안형환·유정현·정미경·홍정욱 의원 등 정치에 첫 발을 내디딘 전문가 출신 모임이다. 지난 7월에 결성된 후 매달 두 번째 주 목요일에 모임을 갖고 있다. 계파와 지역을 떠나 마음을 비우고 모이자는 취지로 결성된 ‘허심회’도 있다. 강성천·이범래·구상찬·김학용 의원 등 8명의 초선 의원이 참여했다. 일하는 초선들이라는 뜻을 지닌 ‘일초회’는 친이 성향의 초선 의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민본21’ 등 초선 의원들도 활발하게 움직여

민주당의 상황은 모임이 활발한 한나라당과 다르다. 대선과 총선에서 패배해 소수 야당으로 전락한 민주당에서는 그동안 계파성을 띤 의원 모임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단합하지 않으면 그나마 소수 야당의 역할도 하기 힘들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신주류로 분류되는 정세균 대표 체제에 대한 불만은 물밑에서 부글대고 있었고, 이는 민주연대 출범으로 표면화되었다.

민주연대는 구 주류인 정동영계와 김근태계 그리고 천정배계에 속하는 전·현직 의원 50여 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야당다운 야당’ ‘개혁색채 강화’를 기치로 내걸고 있어 ‘싸울 것은 싸우되 협력할 것은 협력하겠다’라는 정세균 그룹과 노선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여기에 친노계와 구 민주계 간에 영·호남 대결 구도마저 형성되고 있어 당내 정체성 논쟁이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친노 진영의 경우 안희정 최고위원, 이광재 의원 등 민주당 중심으로 세력을 강화하자는 측과 이해찬 전 총리,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 등 독자 정당을 만들자는 측으로 나뉘어져 있다. 영남 친노 정치인들의 모임 결성 가능성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구체화된 모습을 보이지는 않고 있다. 구 민주계의 경우 박지원·김충조 의원 등이 친노계의 ‘탈 호남’ 주장에 반발하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한편으로는 중도 성향 의원들이 모임을 결성해 당내 화합을 위한 완충 역할을 맡으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의 재선의원들로 구성된 10인회는 최근 모임을 발족시키며 ‘노선의 융합’을 추구하고 나섰다. 우윤근·전병헌 의원이 모임을 주도하는 가운데 김우남·박기춘·양승조·최규식 의원 등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창일 의원을 비롯해 이낙연·김성곤·신학용 의원 등 52년 용띠 모임도 지난 9월초 첫 모임을 갖고 당의 안정을 위해 적극 나서기로 의기투합했다.

이와 같은 ‘모임 정치’가 기지개를 켜는 데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당내 분란의 불씨가 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가 하면, 침체된 당에 활력소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시각도 있다. 황인상 피앤씨(P&C)정책 개발원 대표는 이런 흐름을 통해 “한나라당의 경우 정권의 실세 그룹이 자연스럽게 부각될 것으로 보이며, 민주당은 야당으로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지 여부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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