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무엇이 그녀의 등을 떠밀었을까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8.10.0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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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씨의 자살로 온 국민이 충격에 빠졌다. 절절한 연기로 시청자들을 울리고 웃겼던 그녀는 왜 죽음을 선택했을까. 고 최진실씨의 죽음을 추적했다.
ⓒ연합뉴스

지 난 2005년에 방영된 KBS 2TV 드라마 <장밋빛 인생>의 장면들은 아직도 대중의 기억에 선하게 남아 있다. 이혼 후 암에 걸리면서도 악착같이 살아가는 ‘맹순이’ 역에 사람들은 푹 빠져들었다. 어쩌면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사람들도 맹순이를 보고 삶에 용기를 가졌을지 모른다. 극 중 최진실씨는 그렇게 절절한 연기로 안방 시청자들을 울리고 웃겼다.

그런 ‘맹순이’ 최진실씨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지난 10월 극 중에서 암에 걸려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최진실씨의 자살 소식을 접한 대한민국은 충격 그 자체였다. ‘믿을 수 없다’ ‘정말 충격이다’ ‘최진실씨가 자살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너무 슬프다’ 같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시공을 넘나들었다. 최진실씨의 미니홈피에는 접속자가 폭주했다. 방명록에는 수만 명의 팬이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을 남겼다.

그녀는 왜 자살을 선택한 것일까. 많은 사람이 최진실씨의 자살 배경에 물음표를 던졌다. 온갖 억측도 난무했다. 검찰은 이례적으로 반대하는 유족들을 설득해 부검을 실시했다. 경찰은 유족과 매니저 등 주변 사람들의 진술, 최씨의 메모, 자살 직전의 통화 내용 등을 종합해 ‘충동적인 자살’로 잠정 결론지었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는 공인으로서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평소에도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시신을 화장해 산에 뿌려달라고 말해왔다”고 한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을 보면 최진실씨는 평소에도 생과 사를 넘나들며 고민했던 흔적이 역력하다. 성장 과정에서 불우했던 가정 환경, 결혼과 이혼, 여기에 각종 루머까지 겹치면서 우울증에 시달려온 듯하다. 거기에다 절친한 사이였던 정선희씨의 남편 안재환씨가 자살하자 충격을 받았고, 그 죽음의 배경에 ‘최진실이 있다’는 루머가 퍼지면서 세상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삶에 대한 비관이 절정에 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안재환씨의 사망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병원에 달려온 이도 최진실씨였고, 고인의 발인까지 곁에서 정선희씨를 지켜준 이도 그녀였다. 최씨는 자신과 관련된 악성 댓글을 읽고는 “세상 사람들에게 섭섭하다. 사채니 뭐니 나와는 상관이 없는데 왜 이리 괴롭히는지 모르겠다. 정말 억울하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 10월2일 새벽 사망한 탤런트 최진실씨의 빈소가 삼성의료원에 마련되었다. ⓒ시사저널 박은숙

연기자로 살아온 지난 20년 동안 숱한 시련 겪어

최근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고, 숨지기 직전 에는 지인에게 ‘아이들을 잘 부탁한다. 미안하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것이 고 최진실씨가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메시지였다. 경찰은 최씨의 최근 행적과 주변 인물들의 진술을 토대로 정확한 자살 동기를 조사하고 있다. 팬들로서는 안타까운 죽음이다. 나이 마흔이 되어도 변함 없던 최진실씨의 청순 발랄한 모습은 이제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었다.

최진실씨가 건너온 인생 역경은 한 편의 드라마이다. 최씨는 가난하고 불우한 가정 환경 속에서 자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가사를 책임지기 위해 곧바로 연예계에 뛰어들었다. 그때가 서울에서 올림픽이 개최되던 해인 1988년이다. 하이틴 스타로 데뷔하면서 일약 국민 배우로 성장했다. 출연하는 드라마나 CF마다 성공을 거두었다.

‘최진실’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영화나 드라마 흥행의 보증수표가 될 정도였다. 기자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최진실씨와 동명이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호기심의 대상의 된 친구도 있었다.

최씨는 스타가 된 뒤에도 자신의 불우했던 시절을 숨기지 않았다. 방송에 나와 “어린 시절에 너무 가난해서 매일 수제비만 먹었다” “어머니가 포장마차를 끄는 것이 부끄러워 친구들 몰래 숨은 적도 있다”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 쥐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라는 말을 해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똑순이 같은 그녀의 모습에 국민은 감동하고 힘찬 응원을 보냈다. 이후 그녀는 ‘수제비 소녀’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러나 최씨의 화려한 조명 뒤에는 늘 어두운 그림자가 따라다녔다. 연예인으로서는 국민 배우로 추앙받으며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여자로서는 불우했다. 연기자로서 살아온 지난 20년 동안 숱한 시련과 위기가 넘나들었다.

최진실씨에게 첫 시련이 찾아온 것은 1994년이다. 전 매니저 배병수씨가 로드 매니저 전용철씨에게 살해되는 일이 일어났다. 당시 배병수씨는 연예계에서는 ‘히트 제조기’로 불릴 만큼 큰손으로 군림했다. 최씨를 대스타로 키운 것도 그였다. ‘스타 최진실’ 주변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은 국민적 관심사였다. 그런 만큼 갖가지 루머가 떠돌았다. 최씨가 전씨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면서 극에 달했다. “전씨의 뒤에는 최진실씨가 있다” “최진실씨가 전씨를 사주했다”라는 등의 루머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다. 최씨는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고, 연예 생활에도 위기가 찾아왔지만 잘 이겨냈다. 1998년에는 괴한으로부터 납치를 당할 뻔했다. 촬영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가던 중 30대 중반의 괴한이 칼로 위협하며 납치를 시도했다. 다행히 매니저에게 발견되어 극적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이혼 후 방송 출연 없다가 <장밋빛 인생>으로 화려한 재기

최진실씨는 결혼과 함께 제2의 인생을 꿈꾸었다. 지난 2000년 12월5일에 5살 연하의 미남 야구선수 조성민씨(당시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와 전격 결혼했다. 최고의 배우와 최고 야구 스타의 결혼이었기에 젊은 여성들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신혼의 단꿈이 채 깨기 전에 파경을 맞았다. 결혼생활은 고작 2년밖에 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조성민씨의 폭행 사실이 드러나면서 최씨는 치명타를 입었다.

최진실씨는 법정 공방 끝에 2004년 9월 조성민씨와 협의 이혼했다. 이혼한 최진실씨와 조성민씨 사이에는 여덟 살 난 아들 환희와 여섯 살 난 딸 준희(개명 전 수민)가 있다. 두 사람이 이혼한 후 아이들의 친권은 지금까지 최씨가 갖고 키워왔다. 지난 1월 말에는 법원에 자신의 두 자녀가 최씨의 성과 본을 쓸 수 있게 해달라는 신청서를 냈고, 5월 두 자녀에 대한 성 변경 허가를 받았다. 그녀는 아이들을 누구보다도 지극 정성으로 키웠다.

▲ 최진실씨의 자살 소식을 듣고 빈소를 찾은 정선희씨가 오열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결혼 실패는 최씨의 인생을 극과 극으로 바꾸어 놓았다. 단순히 ‘이혼녀’라는 수식어만 붙은 것이 아니었
다. 그동안 쌓은 성공도 반쪽으로 갈라놓았다. 대중은 그녀를 외면했고, 연예계 활동도 뚝 끊겼다. 사람들은
‘스타 최진실’을 더 이상 국민 배우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심각한 우울증 증세에 시달렸다고 한다. 지인들은 “자녀 양육 걱정과 인기를 유지해야 하는 중압감이 컸다. 불면증이 겹치면서 술과 수면제에 의존하기도 했다”라고 전했다. 연예인으로서, 두 아이의 엄마로서 고뇌를 많이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녀는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2005년 KBS드라마 <장밋빛 인생>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그 뒤 지난 아픔과 상처를 보듬으며 옛날의 명성을 되찾았다.최근에는 MBC 특별기획 드라마 <내 생에 마지막 스캔들>에 출연해 ‘줌마렐라’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했다.

최진실씨는 유서를 남기지 않았다. 죽음을 암시하는 메모와 지인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그리고 그동안의 고뇌를 담은 수첩 일기장이 전부이다. 경찰이 최씨의 집에서 발견한 수첩 일기장에는 ‘나는 외톨이, 왕따…도무지 숨을 쉴 수가 없다’라는 삶을 비관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그녀가 키우던 두 자녀에 대한 양육권과 재산 상속도 관심사이다.

현행법상 아이들의 양육권은 친아버지인 조성민씨에게 갈 것으로 보인다. 만약 조성민씨가 양육권을 포기하면 자연스럽게 외할머니가 친권자가 된다. 또, 최진실씨의 재산 상속은 고인의 두 자녀가 우선 순위이다. 만약 친권자인 조성민씨가 친권을 행사해서 아이들을 양육할 경우 재산 관리는 친권자가 하게 된다. 하지만 유족측에서 친권 상실 심판 청구 및 후견인 변경 청구를 할 때에는 재판을 해야 한다.

최진실씨의 자살 소식을 접한 팬들은 “아이들은 어떡하라고…”라며 안타까워했다. 최씨의 미니홈피에도 아이들에 대해 걱정하는 글이 많았다.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한 번쯤은 참으시죠. 애기들이 너무 불쌍해요”(신정숙) “야속해요 언니, 엄마를 사랑하는 환희랑 수민이를 보니 언니가 미워집니다. 무엇이 그렇게 힘드셨나요. 사랑하는 아이들을 보며 조금만 참아주시지 하며 계속 생각해봅니다. 하늘 나라에서 환희랑 수민이를 지켜주세요”(신수희) 등의 글이 올라 있다.

배우로서 그 누구보다 화려한 삶을 살았던 최진실이지만, 여자로서는 그 누구보다 어두운 생을 보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최씨는 이제 ‘비운의 연기자’로 남게 되었다.

 


▲ 고 최진실씨의 미니홈피.
최진실씨가 자살한 배경에는 악성 댓글(악플)이 있다. 안재환씨의 자살 원인으로 40억 사채 의혹이 제기되자 인터넷에는 최진실씨가 고인에게 사채를 빌려주었다는 루머가 나돌았다. 안재환씨의 부인 정선희씨와 절친한 최씨가 수십억 원의 사채를 안재환씨에게 빌려주었다는 것이다. 또 최씨가 바지 사장을 내세워 사채업을 한다는 것이 확대 재생산되었다.

지금까지 연예인들은 악플러의 주요 공격 대상이 되었다. 공인을 공격함으로써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려는 심리 때문이다. 악플러는 또 살아 있는 자나 죽은 자를 가리지 않는다. 지난해 교통사고후유증으로 숨진 개그우먼 고 김형은씨에 대해서도 악플이 달렸다. 고인의 죽음에 대해 ‘쌤통이다’ ‘얼씨구 좋다, 좋아. 풍악을 울려라’ ‘지옥이나 가라. 얼굴도 못생긴 게’ 같은 욕설이 난무했다.

악플러는 또 탤런트 김태희씨의 ‘임신설’, 노현정씨의 ‘이혼설’ 같은 괴소문을 퍼뜨렸고, 트랜스젠더 가수 하리수·개그우먼 이경실·가수 비 씨 등에게 상처를 주었다. 악플의 피해자에게는 치명적 상처가 남는다. 증오감과 공포감에 시달리는 등의 정신병적 후유증도 앓는다. 최진실씨도 악플 때문에 큰 상처를 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네이버와 다음 등의 포털 사이트는 최진실씨 사망 관련 기사에 악플을 달지 못하도록 댓글 기능을 완전히 차단했다. 정작 추모의 글을 남기고 싶은 네티즌들은 표현을 하지 못했다. 탤런트 최진실씨 자살 배후로 악플이 지목되면서 인터넷상에서는 도를 넘는 악플에 대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악플은 ‘간접 살인 행위’라는 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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