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박주영이 다른 대륙으로 건너가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사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기를 바랐던 일이지만, 지금도 완전히 늦은 것은 아니다.
박주영에게는 분명 재능이 있다. 특히 ‘터치’에서만큼은 괄목할 만하다. 한국 축구의 두드러진 약점들 가운데 하나가 선수들이 볼을 받을 때 평균적으로 볼이 멀리 튀어나간다는 것임을 감안하면, 박주영은 이 땅에서 적어도 얼마간은 ‘희소 가치’를 지닌 선수이다.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해온 그의 골 사냥 실적과는 별개로, 센스와 시야라는 재능 또한 사그라지지 않았다.
물론 박주영에게는 약점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것들 중 일부는 틀림없이 이 땅의 축구 환경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한국의 ‘학원 축구 문화’로부터 말이다. 간단히 말해 박주영은 어려서부터 ‘특별한 선수’였다. 그 특별함이란 ‘팀의 나머지 10명의 선수가 박주영 한 사람을 위해 플레이하도록 만드는’ 바로 그런 의미의 특별함이다.
상급 학교로의 진학 및 학교의 명예를 빛내는 트로피가 모든 것을 말하는 문화 속에서, 동료들은 기꺼이 ‘특별한 선수’를 위해 볼을 따내고 볼을 공급한다. 그러면 그 선수는 여러 명의 상대 수비를 알아서 처리한 후 골을 넣는다.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측면도 없지 않지만, 어쩌면 이는 학원 축구의 모든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서 학교가 좋은 성적을 올리게 되면 특별한 선수뿐 아니라 나머지 동료들도 진학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된다. 사실 이것은 선수들의 일생이 걸려 있다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문제이다.
‘학원 축구 문화’에서 기인한 약점 떨칠 기회
이같은 문화는 그 특별한 선수의 ‘수비 가담’이라는 부문을 자연스레 약화시킨다. 그러한 플레이가 몸에 스며드는 것을 방해한다. 경기당 평균 한 골 이상을 터뜨릴 수 있는 그 선수는 학교와 동료들을 위해 언제나 골을 넣을 준비만을 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려서부터의 ‘특별한 선수’ 박주영은 바로 이 수비 가담이라는 부문에서 약점을 지녀온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 ‘수비 가담’이 ‘몸싸움’과 동일한 것으로 인식되지는 말아야 한다.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 박주영의 몸싸움 솜씨는 사람들이 지니기 쉬운 막연한 인상-호리호리한 박주영이 몸싸움에 무조건 약할 것이라고 느끼는-보다는 좋다. 정상급 파이터로 분류될 만한 선수는 결코 아니나, 적어도 아시아권 축구에서의 몸싸움에서 쉽사리 밀려나는 선수도 아니다. 실제로 박주영은 강인한 K리그에서의 몸싸움도 곧잘 해내곤 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수비 가담’이란 몸싸움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라기보다, 공격수가 얼마나 수비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인드를 가지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가를 의미한다.
프랑스에서 뛰게 된 박주영은 지금까지의 이러한 약점을 감소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다. 아니, 감소시켜야만 한다. 수준의 고저-유럽의 모든 리그, 모든 팀들이 최고의 수준인 것은 아니다-를 막론하고 ‘공격수에 대한 수비 가담 요구’는 현대 유럽 축구의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을 잘 지켜야만 생존 가능성이 커지는 법이다. 물론 박주영은 프랑스로 건너간 첫 경기부터 이러한 생존의 법칙을 1백20% 충족시키는 빼어난 올라운드 플레이를 보여준 바 있다.
박주영이 늦게라도 유럽으로 건너가 매우 잘 되었다고 말하는 데에는 이러한 축구 기술적 이유 말고도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다. 무엇보다, 박주영이 새로운 환경과 맞닥뜨리며 심기 일전해 자신을 담금질할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박주영을 둘러싼 문제들 가운데는 ‘박주영은 그래도 박주영’ 현상으로부터 기인한 것들이 많았다. 간단히 말해 소속 클럽에서의 활약상, 대표팀에서의 활약상이 줄어들어도 한국에서 ‘박주영은 그래도 박주영’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박주영 자신의 발전에 긍정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자신의 마음에 그리 즐거운 일도 아니었을 성싶다. 예를 들어 요즈음과 같은 ‘열린 여론’의 시대에, 컨디션이 저조한 박주영이 올림픽 대표 또는 A대표팀에 승선할 때마다 결코 조용히 넘어가는 법이 없다. 아마도 박주영 자신이 들끓는 세간의 여론들을 가장 잘 알고 있었을 것이며, 그로 인한 괴로움도 경험했을 것이다.
우리의 감독들(그리고 축구 팬들까지)도 ‘그래도 박주영이 뭔가를 해줄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심리를 언제나 지닐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박주영 자신에게 그리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잘 나아가도 주목, 못 나아가도 주목을 받는 스타에게는 더욱 더 그러하다.
하지만 이제 박주영은 ‘박주영’이라는 이름 석자가 무조건적으로 통하지 않는 장소, 자신의 이름이 불필요한 방식으로 인구에 회자되지 않는 장소에서 경쟁하게 되었다. 팀에 꼭 필요한 선수라면 꾸준히 쓰일 것이요, 별로 필요치 않은 선수라면 그렇지 못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는 박주영의 능력과 활약상에 대해 좀더 엄밀한 데이터를 갖게 될 것이며, 감정적·심리적 이유로써 박주영을 비판 혹은 지지하는 일도 줄어듦이 마땅할 것이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뛴다면 ‘에이스’ 역할도
AS 모나코 입성 직후부터 박주영은 재능과 의욕이 적절히 결합된 플레이로써 자신의 진가를 빠르게 드러내기 시작했고, 적어도 지금까지 모나코에서의 그의 입지는 꽤 탄탄해 보인다. 우선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모나코의 공격진에서 박주영은 팀의 가장 다재다능한 공격수임을 증명하고 있다. 센터포워드 스타일의 프레데릭 니마니와 호흡을 맞추든, 윙포워드 스타일의 후안 파블로 피노와 호흡을 맞추든, 박주영은 동료의 움직임과 동선을 잘 이해하는 효율적인 플레이로써 팀 내 가장 요긴한 공격 옵션의 지위를 얻은 인상이다.
현실적으로 올 시즌 현재, 팀 득점력이 리그 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모나코는 ‘새로이 얻은 무기’ 박주영의 재능을 십분 이끌어내야 하는 실정이다. 특히 미드필드에서 양질의 창조적 패스를 뿌려줄 자원이 전혀 없다시피 해, 박주영을 아예 공격형 미드필더처럼 활용하는 방안을 구상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미 박주영은 그러한 역할을 경기 중 종종 수행하고 있지만 말이다. 직접 골을 터뜨리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겠으나, 팀 공격을 풀어 나아가는 ‘에이스’ 구실 또한 충분히 만족스러운 일일 것이다.
모나코가 2003/04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할 당시의 광채와는 거리가 먼 팀이 되어 있다는 것도 유럽에 처음 건너간 박주영에게는 어떤 의미에서 그리 나쁜 조건이 아닐 수 있다. 물론 이는 박주영이 주변의 수준급 도움을 받기 어려워, 매 경기 고군분투하는 형태의 플레이를 펼쳐야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별다른 ‘믿을 구석’을 지니고 있지 않은 모나코가 박주영을 철썩같이 믿어야 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는 까닭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나코를 기대치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만 있다면 박주영은 클럽의 ‘영웅’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그 반대 급부의 대가를 얻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한 가지 대담한 예측을 덧붙이자면, 올 시즌의 모나코는 고생은 하되 강등당할 것 같지는 않다.
박주영은 최근의 인터뷰에서 ‘더 큰 리그’로의 이적 같은 것은 현재로서는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으며 오로지 모나코를 위해 뛰는 데에만 전심 전력하겠다고 했다. 이적 초반의 플레이, 의욕, 그리고 인터뷰 태도에 이르기까지, 한국 축구의 틀림없는 재능들 가운데 한 명인 박주영에게 마침내 ‘진짜배기 희망’을 걸어보고 싶은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