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는 많은데 볼 것이 없네
  • 이은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08.10.07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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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마다 벌이는 지역 축제, 관 주도에 민간 참여 막혀 다수가 활기 없는 행사로 전락

▲ 10월1일부터 시작한 남강 유등축제는 7억원 가까운 수익을 올리고 있다.

지역 축제가 가장 많이 열리는 10월이다. 문화관광체육부(이하 문광부)가 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1천1백76개 축제 가운데 28%에 해당하는 3백29개가 10월에 열린다. 하지만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가며 기다리고, 없는 시간을 쪼개어 가보고 싶은 축제는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그동안 지역 축제의 문제점은 숱하게 지적되어 왔지만 개선이 미비한 탓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우수한 축제로 뽑은 ‘문화관광축제’마저도 문제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문광부는 1995년부터 우수한 축제를 선정해 최고 3억5천만원까지 국비를 지원하고 있다. 올해 문광부가 ‘문화관광축제’로 선정한 축제는 총 54개이다. 그 가운데 10월에 개최하는 10개 축제의 운영 실태를 알아보았다. 

지역 축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이 축제가 주민의 참여 없이 관의 주도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강경 젓갈축제를 비롯한 6개 축제가 관에서 파견된 공무원과 지자체에서 선정한 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구성했다(표 참조). 1년에 3~4번 정도 간헐적으로 열리는 위원회 회의에도 주민들의 참여는 불가능하다. 남강 유등축제와 부산 자갈치축제, 김제 지평선축제, 풍기 인삼축제만이 비영리재단을 설립해 민간의 상시적 참여 기회를 확보했다.

전국 축제 수효, 1천1백76개

지역 축제 평가위원으로 활동하는 한양대 관광학부 이훈 교수는 “축제가 생겨난 초기에는 관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축제가 자리를 잡고 난 이후 어떻게 민간으로 권한을 이양시키고 자생력을 키워가느냐 하는 점이다. 상당수의 지역 축제가 끝까지 관에 의존하다 무너져버린다”라고 현실을 꼬집었다. 관에 의해 운영되는 축제는 예산도 국비나 시·도 지원금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재정 자립을 이룰 여지도 없다. 축제 기간에 운영되는 프로그램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울주 외고산 옹기축제 관계자는 “수익 사업을 진행하면 상업성이 부각되어 축제 분위기가 흐려진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지역 축제가 국가 재정으로 운영되면 민간의 참여가 현저히 줄어들어 생명력을 지닐 수 없게 된다. 문화연대 축제모니터링단 류문수 전 운영자는 “100% 지원금에 의존해 축제가 진행되면 돈은 돈대로 들고 창의성은 떨어지게 된다. 실패할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지역 축제가 수익을 내거나 기업 협찬을 통해 자립도를 높여나가야 하는 이유이다.

남강 유등축제의 경우 소망등 만들기 행사 참가비와 남강 위의 부교(횡단할 수 있게 임시로 만든 다리) 통행비 등을 통해 7억원 가까이 수익을 올린다. 여기에 기업에서 2억원을 또 협찬받는다. 총 예산 21억원 가운데 9억원이 자치자금으로 충당된다. 문광부가 3년째 유등축제를 최우수 축제로 선정한 이유도 재정자립도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풍기 인삼축제는 예산의 절반을 기업 협찬금으로 메운다. 부산 자갈치축제는 부산 수산물 시장 3곳에서 8천만원 정도를 모아 재정에 보태고 있다.

이훈 교수는 재정 자립이 이루어지면 ‘난립하는 지역 축제를 통폐합해야 한다’는 잘못된 지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교수는 “축제가 많아야 창의성을 확보할 수 있다. 미국은 텍사스에만 1천개가 넘는 축제가 있으며, 일본에도 1만개가 넘는 축제가 있다. 통폐합보다 현저히 낮은 재정 자립도 문제가 먼저 지적되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축제 재정을 관에 의존하다 보니 실적 부풀리기도 뒤따른다. 다음해에 더 많은 예산을 받아내기 위해서이다. 지역 축제가 경쟁적으로 규모 확대에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비판받는 축제가 지난 5월에 개최된 함평 나비축제이다. 문광부가 지정한 최우수 축제로 올해 엑스포로 격상되었다.

“함평 나비축제, 지출은 줄이고 수입은 뻥튀기”

시민단체인 행의정감시연대는 함평군이 지출은 줄이고 수입은 뻥튀기하고 있다며 지난 3월 감사원의 감사를 청구했다. 행의정감시연대 이상석 운영위원장은 “2002년부터 4년간 지출 결의서를 조사한 결과 함평군이 공개한 집행액보다 매년 평균 2억4천만원 정도 더 많이 지출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함평 나비축제만의 문제가 아니다. 감사원의 감사를 청구한 것도 이번 일을 계기로 경종을 울리고 싶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감사원은 공익을 크게 해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감사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단체 이외에 어떤 시민단체도 지역 축제를 감시하고 있지 않다. 

10월에 개최되는 축제 가운데 공주·부여 백제문화제가 올해 대폭 규모를 키웠다. 문화재 관계자는 “공주와 부여가 객년제로 개최하던 것을 지난해부터 통합해 매년 개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2010년부터는 엑스포 형식을 띄는 대백제전을 개최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이교수는 이천 도자기엑스포를 예로 들며 부작용을 경고했다. 그는 “축제가 10~20년 안에 끝날 것이 아니라면 100년 정도는 꾸준히 지켜보면서 조금씩 규모를 확대해나가는 것이 옳다. 예산 규모를 10배 정도 늘려 엑스포를 개최했다고 치자. 다음해에 본래 규모로 돌아오게 되면 외부 사람들 눈에는 그 축제가 왜소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축제의 대형화는 필연적으로 전문적인 콘텐츠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이 없이 비슷비슷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것이 지역 축제의 현주소이다. 류문수씨는 “지방자치단체는 지역 축제가 지역 경제를 살려준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킬러 콘텐츠 없이 이벤트 회사에 맡겨서 일회성으로 진행해서는 결코 경쟁력이 생길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광주 김치대축제의 경우 2006년까지 이벤트 대행사를 통해 행사를 진행하다 축제 업체 선정 과정에 문제가 생겨 2007년부터는 광주시가 축제 업무를 담당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 축제는 문광부로부터 김치 관련 체험 프로그램이 다양하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문광부 관광산업과 송만호 사무관은 “평가 작업을 하다보면 지역 축제가 대동소이하다는 지적이 가장 많이 나온다. 핵심 프로그램을 개발해 개성을 부각시키는 고민이 좀더 필요한 때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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