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남편이 바람을 핀다
  • 이재현 기자 (yjh9208@sisapress.com)
  • 승인 2008.10.07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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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 손질해주던 종업원이 말했다, “향수 코너에 있다”라고

▲ 감독 : 다이안 잉글리시 / 주연 : 멕 라이언, 아네트 베닝, 캔디스 버겐

친구라는 단어는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다. 부모에게 할 수 없는 말도 친구에게는 할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서양에서는 나이를 가리지 않고 친구가 된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친구는 거의 다 동창생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만난 친구가 가장 오래 간다. 순백의 사춘기 시절에 아무것도 가리지 않는 동갑내기들에게 친구는 그가 누구이든 상관없다. 지난 2001년에 개봉해 대박을 친 영화 <친구> 역시 모두 고교 동창생들이다.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냅다 뛰는 장면이 아직도 관객들의 뇌리에 남아 있는 <친구>는 나중에 유오성과 장동건이 조폭이 되면서 불행으로 다가간다. 친구이지만 경쟁자이기도 한 둘 앞에서 양보는 없었고 그러다 장동건이 “많이 먹어서” 죽고, 유오성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나중에 <친구>가 진짜 조폭 이야기를 담았다는 구설에 올라 좀 찜찜해지기는 했지만 우리 영화사에 길이 남을 수작임에는 틀림없다.

남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 영화

<내 친구의 사생활>의 원제는 <The Women>이다. 수많은 여자들이 나온다는 뜻이다. 말마따나 이 영화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주연·조연을 포함한 14명의 배우가 나타나 영화를 끌고 간다. 영화는 제목을 잘 지어야 장사가 된다는데 <내 친구의 사생활>은 도무지 영화 내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고 있다. 전업 주부인 멕 라이언에게 무슨 사생활이 있다고 하나. 남편 잘 만나 집에서 아이들 키우며 우아하게 사는 메리(멕 라이언 분)에게는 세 명의 친구가 있다. 패션지의 편집장으로 위아래를 프라다 같은 명품으로 도배질하는 실비(아네트 베닝 분), 아들을 낳을 때까지 아이만 낳겠다는 에디, 남자보다 차라리 여자 애인이 더 좋다는 동성연애자 알렉스가 그들이다.

손톱 손질을 하러 간 실비는 수다쟁이 종업원에게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향수 코너의 종업원 하나가 메리의 남편과 눈이 맞았다는 것이다. 독신인 그녀에게 친구 남편의 바람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입이 근질근질하지만 차마 메리에게 말을 못하는 사이 메리가 알아버렸다. 손톱 손질 코너의 그 여종업원 입을 통해. 일한다고 날마다 나가서 자던 남편이 바람을 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메리를 비롯한 네 명의 친구는 먼저 여자를 찾아가 포기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녀는 남자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남자가 포기하지 않는 한 자기는 계속 만날 것이라고 말한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아류라고 보기에는 소재가 너무 진부하고, 영화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네 여자의 수다로 점철된다. 아이들 걱정을 하다가 이혼을 결심하고 그때부터 전업 주부가 아닌 당당한 나로 태어난 여자 어쩌구…. 늙은 멕 라이언과 아네트 베닝이 오히려 더 중후해 보인다. 10월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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