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와 은행들, ‘큰 보따리’ 챙겼다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8.10.14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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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4강 외교’ 수행한 경제인들, 무엇을 얻었나 / LG·롯데도 러시아에서 ‘성과’

▲ 지난 9월 29일 모스크바 월드트레이드센터에서 열린 한-러 비지니스 포럼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가운데) 등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대통령의 외국 순방에는 으레 공식 수행원과 경제인들이 대거 동행한다. 대통령이 외국 정상과 회담을 갖는 동안 경제인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동분서주하며 현지 경제인들과 접촉한다. 물론 대통령 순방 이전에 사전 조율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현지에서 의외의 성과를 올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실용주의 노선을 표방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인들의 형식적인 수행보다는 CEO들의 실속 있는 동행을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현지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거나, 향후 글로벌 비즈니스를 계획하고 있는 기업인들 위주로 경제 수행단을 꾸리고 있다.

이대통령은 올해 들어 미국·일본·중국·러시아와의 ‘4강 외교’를 일단락지었다. 여기에도 당연히 기업인들이 동참했다. 그런데 이대통령과 함께 순방길에 올랐던 기업인들이 귀국길에 들고 온 ‘보따리’는 저마다 그 크기와 무게가 달랐다. 이대통령이 아무리 의전상의 수행을 원하지 않는다 해도, 아무 성과 없이 돌아온 기업인이 있는가 하면, 제법 ‘묵직한 보따리’를 들고 돌아온 경우도 있었다. 러시아 순방을 끝으로 4강 외교가 일단락된 시점에서 어느 기업이 어떤 실속을 챙겼는지 들여다보았다.

러시아 방문(9월28일~10월1일) 때 이대통령을 수행한 기업인은 조석래 전경련 회장 등 경제 4단체장과 정몽구 현대·기아차 그룹 회장 등 모두 33명이었다. 청와대가 무역협회의 추천을 받아 중국 현지에서 사업을 진행 중이거나 앞으로 비즈니스를 계획하고 있는 기업인들을 주축으로 꾸렸다. 수행 경제인 가운데 대기업 대표로는 정몽구 회장을 비롯해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 등 4명이 포함되었다.

수출입은행도 2억 달러 규모 신용 공여 합의

이대통령은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한반도 횡단 철도 연결을 통한 ‘철(鐵)의 실크로드’ △석유·가스 개발 협력을 통한 ‘유라시아 에너지 실크로드’ △연해주 조림 산업과 농업 플랜테이션 조성을 통한 ‘녹색 실크로드’ 등 ‘3대 신(新) 실크로드’를 러시아측에 제안했다. 그리고 ‘한·러 비즈니스 다이얼로그’를 창설해 ‘신 실크로드’ 구상을 구체화할 방침이다. 특히 방러 기간 중에 무려 26건에 달하는 경제 관련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이번 러시아 방문 기간 중 LG와 현대차, 롯데, 수출입은행 등이 ‘두둑한 보따리’를 챙겨왔다고 분석하고 있다. LG의 경우, 광업진흥공사·한국전력 등과 함께 러시아 우라늄 개발 사업에 참여하는 길이 열렸다.

현대차도 울산대 공대와 함께 러시아 자동차 기술 인력 양성을 지원하기로 했다. 현대차는 그동안 러시아에서 조립 생산 방식으로 자동차를 판매해왔는데, 지난 6월에 연산 10만대 규모의 완성차 공장 착공식을 가졌다. 따라서 이번 러시아 수행을 통해 기술 인력까지 자체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되어 러시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안전판을 마련한 셈이다. 롯데는 러시아 칼루가 주에 제과 공장을 건설하기로 합의했고, 수출입은행은 러시아 대외경제개발은행과 2억 달러에 달하는 전대 금융 신용 공여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대통령은 지난 5월 중국을 국빈 방문한 바 있다. 당시 수행한 경제인은 경제 단체장을 포함해 모두 36명이었다. 이대통령의 올해 4강 순방을 수행했던 경제인 숫자로는 가장 많은 규모였다. 중국이 우리나라의 1위 무역 상대국인 점이 감안된 것이다. 정몽구 회장도 처음에는 중국 순방 명단에 포함되었으나,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기소된 사건 항소심이 파기 환송되면서 자진해서 빠졌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지난 9월29일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조석래 전경련 회장(오른쪽)과 쇼킨 러시아 산업기업가연맹 회장 등이 ‘한·러 비지니스 다이얼로그 협력 의정서’를 체결하고 있다. ⓒ연합뉴스

방중 당시 이대통령은 경제 외교에 ‘올인’했다. ‘한·중 투자 포럼’ 등 경제 일정으로 빼곡히 채워졌다. 특히 중국 내륙 지역 개발에 우리 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물꼬를 트려고 했다. 이대통령이 내륙 지역인 쓰촨 성 대지진 현장을 방문하고, 경제인들이 3억여 원의 구호 성금을 전달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 조치들이다. 또한, 금융과 정보기술(IT) 분야 시장 개척에도 역점을 두었다. 중국과의 양적인 협력에서 질적인 협력으로 바꿔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중 양국 정상은 △금융 협력 △IT 협력 △에너지·환경 협력 △과학 기술 협력 △교역 규모 확대 등에서 합의를 보았다.

중국 순방에서는 중견 금융 기업들이 알토란 챙겨

중국 순방에서는 러시아 방문 때처럼 당장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하지만 중국의 향후 시장 개척에는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고 보고 있다. 산업연구원(KIET) 신태용 선임연구위원은 “양국 정상 간에 합의를 이루었다고 해서 곧바로 실질적인 사업으로 진전되고 궁극적으로 좋은 결실을 맺는다는 보장은 없다. 물론 양국 정상 간에 합의를 이루었으므로 경협 과제로서의 우선 순위는 확보되었으며, 사업 추진도 그만큼 탄력을 받게 되었다”라고 분석했다.

재계에서는 중국 순방에서는 대기업보다 중견 금융 기업들이 실속을 챙겼다고 보고 있다. 특히 수행 경제인 가운데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을 비롯해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 등이 향후 중국의 금융시장 개척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미래에셋의 한 임원은 “중국 시장에서 성공하면 세계 시장을 잡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우리 회사가 중국에서 운용사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때마침 대통령의 중국 순방이 이루어져 절묘한 타이밍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에 비해 중국 방문 당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신동빈 부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은 현지 사업장을 둘러보는 일정이었고, 이수빈 삼성 회장과 구본무 회장은 대통령의 공식 방중 일정에 몰두했다. 

미국과 일본 방문(4월15~21일)에 동행했던 경제인은 미국의 경우 26명, 일본은 22명이었다. 첫 해외 순방길에 동행한 경제인들은 실무 중심의 금융 CEO가 대거 포함된 것이 특징이었다. 당시 청와대는 “새 정부의 실용주의 노선에 따라 과시성 동원을 배제하고 실무 중심의 소규모 수행단을 구성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방미 기간 중 있을 투자 설명회를 감안해서 금융인을 대거 포함시켰다.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 김남구 한국투자증권 부회장,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강정원 국민은행장, 하영구 한국시티은행장, 박해춘 우리은행장 등 7명이 금융인을 대표해서 이대통령과 동행했다.

그러나 현재 미국발 금융 위기가 세계 경제를 휘청거리게 하고 있다. 이에 경제 전문가들은 “올해의 4강 외교가 제대로 빛을 보기 위해서는 앞으로 상당 기간이 경과해야 할 것이다”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외교를 통한 실리 추구에 암울한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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