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 소개비로 배 불리는 교수들
  • 김지혜 (karam1117@sisapress.com)
  • 승인 2008.10.14 12:5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부 음대 교수들, 악기상과 짜고 커미션 챙겨 불법 레슨비도 액수 커 학생들 부담 가중

▲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주변의 한 악기상점에서 고객이 악기를 고르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바이올린 4천만원, 활 5백만원에 교수 레슨비 매달 80만원…. 바이올린 전공을 위해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에게 이 정도는 기본 경비에 속한다. 명문대를 지원하는 학생들 사이에는 1억원짜리 바이올린을 구입해 쓰다가 실기 시험을 전후해서는 2백만~3백만원의 대여료를 주고 더 나은 바이올린을 찾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렇다 보니 웬만한 재력이 없으면 음악을 전공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특히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와 같은 현악기들은 너무 비싸 보통 학생들은 범접조차하기 어렵다.

악기 값은 왜 이리 비싼 것일까? 음대에 진학하려면 왜 이렇게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하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음대 교수들이 악기상에게서 받는 커미션에 적지 않은 원인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사저널>은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물고 있는 악기 가격 거품의 실체를 추적해보았다. 서울 시내 악기상들에 따르면 음대 교수들의 절반은 악기 가격의 10% 이상을 커미션으로 챙기고 있다. 교수들은 초·중·고생에게 고액 입시 레슨을 하면서 자신의 단골 가게에서 악기를 사라고 압력을 넣고, 거래가 성사되면 악기상으로부터 커미션 명목으로 악기 가격의 10~30%를 돌려받는다는 것이다. 취재 결과 교수들은 불법 레슨비와 커미션을 챙기고 액수도 일반적인 예상보다 엄청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1억원짜리 바이올린 사라는 교수에 시달린 모녀

한 악기상은 음악을 전공하는 고객의 하소연을 전해주었다. 중학생인 최 아무개양과 어머니는 끈질기게 고가의 악기 매입을 권유하는 레슨 교수 때문에 한동안 정신적으로 시달렸다. 교수는 “악기가 나빠서 콩쿠르에 나가기 어렵다. ㅅ악기상에 1억원짜리 바이올린을 구해놓았으니 사와라”라고 했다고 한다. 최양의 어머니는 가격도 터무니없이 비싸고 아이에게 적합한 제품도 아닌 것 같아 평소 보아둔 상점에서 원하는 악기를 샀다. 이때부터 교수는 콩쿠르를 준비하는 딸의 레슨 날짜를 차일피일 미루었다. 악기상은 그 교수가 족히 1천만원은 되는 커미션이 날아가자 심술을 부린 것 같다고 했다. 최양은 다른 학생과 차별을 받자 의기소침해졌고, 엄마는 콩쿠르 심사의원들과 관계가 돈독한 교수에게 찍혔다고 생각하자 두려워졌다. 나중에 대학입시에서까지 불이익을 받는 것이 아닌가 해서 암담했다. 결국 내키지 않지만 교수가 쓰던 활을 2천만원에 사고 나서야 정상적인 레슨을 받을 수 있었다.

콩쿠르나 입시를 앞둔 학생과 학부모는 이들 레슨 교수의 밥이나 마찬가지이다. 학부모들은 약자이기 때문에 교수의 말을 거역하기 어렵다. 교수들은 ‘악기를 바꾸면 실력이 훨씬 좋아진다’ ‘실력에 비해 악기의 질이 떨어진다’ ‘○○ 악기사에 너한테 잘 맞는 악기가 있다’라는 등 온갖 구실을 대며 악기 교체를 요구한다고 한다. 간혹 자신의 소장품을 내보이며 외국에서 가져온 좋은 악기이니 사라고 강권하기도 한다. 이때 눈치껏 처신해야 입시나 콩쿠르에서 불이익을 피할 수 있다.

 기자가 레슨을 받으려는 학생으로 가장해 학부모들에게 조언을 구하자 한결같이 “교수에게 레슨받기 전에 믿을 만한 악기점에서 아예 좋은 악기를 사야 한다”라고 신신당부했다. 이유는 이러했다. “교수가 가게를 지정해주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훨씬 좁다. 레슨 중에 악기를 권유하면 시세보다 비싸고, 마음에 안 들어도 울며 겨자먹기로 사야 한다.”

불법 레슨을 하는 교수들과 악기상들의 관계는 그야말로 은밀하다. 점잖은 교수들이 ‘촌스럽게’ 커미션을 요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교수가 보낸 학생이 악기를 사면 악기상이 ‘알아서 챙겨드리는’ 식으로 거래가 이루어진다. 관행적으로 악기 가격의 10~20%를 현금이나 수표로 보내는데 ‘밝히는’ 교수로 분류되면 30%까지도 보낸다. 친한 가게끼리는 명단을 공유하는데, 이 가운데는 명문대 교수들도 상당수 있었다. 물론 악기상이 커미션을 포함시키다 보니 악기 값은 비싸질 수밖에 없다. 

ㅇ악기사의 조 아무개 사장은 “교수들에게 빌붙어 연명하는 현악기업계를 변화시키겠다”라며 검찰에 거래 교수들에게 제공한 커미션의 사례와 함께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는 “대학강사인 남편을 ‘큰 선생’으로 두고 ‘새끼 선생’인 부인이 학원과 악기 가게를 겸하면서 악기를 강매한 경우도 있다. 이들은 1천만원 정도 되는 바이올린을 3천만원을 넘게 받고 세 대나 판매했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 악기상의 진정서를 토대로 불법 레슨을 한 교수들의 비리를 수사 중이다.

악기 가격이 커미션 명목으로 두배 넘게 부풀려지기도

유럽산 악기를 수입해 팔고 있는 ㅈ악기사의 정 아무개씨는 “한국에서 거래되는 악기의 가격이 커미션 때문에 부풀려져 있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라고 말한다. 정씨는 3천만원에 팔린 바이올린의 브랜드와 제작 연도를 알려주며 예상 가격을 묻자 놀라운 답변을 내놓았다. 그는 “1998년에 제작된 호르농(HORNUNG)은 유로화가 1천9백원인 현재 시세로도 1천5백만원에서 2천만원에 거래된다. 엊그제 출장에서 호르농 제작자를 만나 가격을 물었기 때문에 확실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이 악기를 2006년께에 직수입했다면 유로 환율이 1천3백일 때라서 1천만원대 초반이면 살 수 있는데  커두 배 넘게 부풀려진 셈이다.

악기상들 사이에서 사채까지 써서 물건을 확보했다가 레슨 교수에게 외면당해 망한 서 아무개씨의 사례는 유명하다. 서씨는 서울 시내 한 대학 음대 교수와 거래를 하기로 하고 그로부터 “1억원짜리 바이올린을 팔아주겠다”라는 제의를 받았다. 그는 사채로 3천만원을 빌려 보증금만 내고 1억원짜리 바이올린을 구입했다.  그러나 교수는 서씨 말고 다른 악기상들에게도 같은 제의를 했고, 자신에게 커미션을 더 얹어주겠다는 상점의 악기를 학생에게 사도록 했다. 서씨는 이후 사채 이자를 물어주어야 했고, 남은 7천만원의 악기 값을 구하지 못해 자금난에 시달리다 결국, 가게 문을 닫아야 했다.

취재 과정에서 양심적인 악기상과 교수들을 상당수 만났지만 이들은 모두 익명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를 원했다. 또, 불법 레슨과 커미션을 주고받는 관행은 너무 뿌리가 깊어서 도저히 못 고친다는 무력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불법으로 레슨을 하며 교수들이 챙기는 커미션은 결국, 학생과 학부모들이 떠안게 된다. 이는 악기 값을 부풀리고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터무니없이 많은 경제적 부담을 안기게 되는 것이다. 한 음대 교수는 “학생 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워 좋은 악기를 못 샀다. 그래서 비싼 악기 값 때문에 힘들어 하는 학생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다. 악기상들이 제공하는 커미션은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악기 거래 과정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커미션’의 배경이 된 밀실 고액 과외 현장

음대 교수들의 밀실 레슨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학생들은 불법임을 알지만 ‘얼굴 도장’을 찍으러 유명 교수를 찾아간다.

지난 10월7일 오후 3시 서울 압구정 신현대아파트 1층. 며칠을 기다려서 불법 레슨으로 명성이 높은 서울 인근 대학 김 아무개 교수의 레슨현장을 목격했다. 그는 9월 말까지 자신의 연주회 준비 때문에 레슨을 쉬다가 예중, 예고, 대학 수시 입시 전형일이 가까워지자 레슨을 재개했다고 학부모들은 전했다. 레슨비는 한 번에 15만원에서 20만원으로 다른 교수들과 비슷한 편이라고 한다.

다른 교수들에게도 레슨을 원하는 학생으로 가장해서 전화하자 ‘(실력이 어떤지) 오디션부터 보자’ ‘입시철이라 (다른 학생들 레슨으로) 바쁘다. 기회가 되면 하자’ ‘외국에 자주 나가서 (규칙적으로) 못 해준다’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밀실 고액 과외는 입시 부정으로 연결될 소지가 다분하다. 한 학부모는 “고3까지 최대한 실력을 키우고 안 되면 차선책으로 교수들과 관계를 돈독히 해둘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